후기

제목[푸코+] 민주주의, 플랜테이션, 식민지 (<죽음정치> 1장 발제)2026-06-19 1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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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정치: 증오의 정치에 관하여1장 민주주의로부터의 이탈

 

모든 지식은 보편적이지 않다. 담론은 필연적으로 지방적이며, 개념은 불가피하게 지역적이다.(23) 자신들이 쌓아 올린 근대성의 제단을 파괴하며 20세기 유럽 지식인들이 이미 했던 사유들이다. 21세기까지 이어지는 이 근대성비판은 유럽과 북미 지식인들이 도달할 수밖에 없었던 반성적 결론이다. 또한 아프리카와 아시아계 지식인들에게는 전 지구적관점으로 세계와 자신을 바라보려 할 때 중요한 전제이기도 하다.

 

아프리카에서 태어나 유럽에서 공부한 이 책의 저자 음벰베에게도 현재 우리가 봉착한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이런 관점이 꼭 필요하다. 음벰베가 우리 시대의 특징(혹은 문제)으로 짚는 부분들은 모두 제국주의나 식민지와 관련이 깊다. 제국주의는 세계를 축소하고 지구를 재인구화하며, 대량 이주를 통해 자본주의를 팽창시켰다. 근대성은 문명화가 아닌 노예무역과 식민화를 통해 달성되었고, 플랜테이션은 노예라는 인종적 몸을 생산했다.

 

16세기부터 19세기까지 이어진 노예무역과 식민화는 세계의 자원과 인구를 재분배하며 중심과 주변으로 분할했다. 분할은 본국에서도 인간을 유용성으로 구분하여 불청객을 식민지로 배출하는 방식으로 이어졌다. 전쟁과 박해, 역동적 순환과 디아스포라, 무역과 생태적 재난은 문화적 이동과 구분되지 않았다. 이동은 인간을 넘어 모든 행위자(, 공기, 미생물, 곤충 등)로 확대되며, 문제는 인간의 조건에서 지구의 조건으로 확대되었다.

 

이 지점에서 음벰베가 짚어내는 우리 시대의 다른 특징들은 인간 개념의 재정의로부터 촉발된다.(31) 디지털 주체의 도래 등으로 인간은 더욱 가소적(변형되기 쉬운) 인간이 되며, ‘인간의 고유성이나 진짜 인간에 대한 믿음은 약화된다. 예측과 연산을 위한 도구와 기계가 인간 생활 전반에 도입되며, 인간 종을 변형시키는 능력과 자본 권력이 유기적으로 결합한다.(32, 33) 시장의 취약성과 불안정성이 증가하는 동시에 시장의 파괴적 힘도 증가한다.

 

시장이 전쟁에 기반하여 작동하는 오늘날 지구의 위기를 민주주의는 해결할 수 있을까? 음벰베는 공동체의 민주적 이상을 찬양하기 전에 그 민주주의적 원칙에 내재한 우연성과 잠재된 폭력성을 보라고 권한다. 민주적 이상은 그런 자신의 기원을 문제 삼으며 개방을 보장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할 때만 가능해진다. 근대 민주주의는 (폭력의 은닉과 은폐를 넘어) 자신의 형식뿐 아니라 사상과 개념을 재발명/발견하는 역량을 통해서만 힘을 가질 수 있다.(35)

 

음벰베에게 미국은 단지 민주주의 국가가 아니라, ‘노예제 민주주의국가이다.(36) ‘노예제 민주주의내부에 존재하는 이중적 질서는 이 공동체가 인종 편견에 기초한 분리의 공동체일 수밖에 없음을 보여준다. 나아가 음벰베는 플랜테이션과 식민지가 인구 및 자원을 이동하게 하는 역할을 넘어 민주주의 확립에도 기여했음을 확인한다. 서구의 시민적 평화는 식민지 전쟁과 학살에 의존했으며, 행성적 규모의 불평등한 지배체제를 공고화했다.(42)

 

플랜테이션과 식민지, 민주주의 질서는 결코 서로 떨어질 수 없으며, 친밀한 동시에 억눌린 팽팽한 관계 속에 있다. 유럽의 근대적 지식을 체득한 동시에 인종적 몸을 가진 음벰베의 정동적 시선으로 포착한 이 통찰을 우리는 결코 부정할 수 없다. 오히려 하나도 새롭지 않은 이 통찰이 아프리카나 아시아에서마저 주류의 시선이 아니라는 사실에 놀라워한다. 자신의 인종적 몸과 불화할 수밖에 없는 시선을 가진 채로 우리는 자신이 타자임을 확인한다.

 

식민지 정복 전쟁은 비대칭적 인종 전쟁이었다.(52) 또한 식민지 정복을 통해 민주주의는 법 밖의 영역을 만든다. 식민지에서는 국가 폭력이 무고하다고 여겨지며, 식민지 권력은 합법과 불법을 구분할 수 없게 한다. 폭력은 있지만 규범은 없는 비어 있는 힘이 이렇게 식민지 체제에서 구성된다. 민주주의의 산물인 식민지 세계는 민주적 질서의 안티테제가 아닌 분신이었다.(56) 민주주의는 식민지를 자신의 외부가 아닌 내부에 품고 있다.(57)

 

민주주의 내부에서 잠재된 폭력을 의식하지 못하게, 나아가 민주주의의 기원과 이면에 질문을 던지지 못하게 하는 일도 민주주의의 작업에서 일부를 차지한다. 민주주의 질서의 재생산은 신화를 통해 보장된다. 신성성이 소진될 때까지 신화는 폭력 안에서 해방적 힘을 찾는다. 서구의 기독교적 믿음(재출발/종말)은 기술-신학적 의미를 품은 정치적 폭력으로 변모한다. 그러나 인류에게 서구의 신화만 존재하지는 않는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음벰베는 아프리카의 전통 속에서 서구와는 다른 경향의 신화를 발견한다. 그 신화는 존재 자체가 아니라 관계와 상호적 연루에 관한 질문, 살이 다른 살을 발견하고 인식하는 일에 관한 질문으로 이어진다. 정체성은 실체에 관한 질문이 아니라 가소성에 관한 질문, 공동 구성에 관한 질문, 열림과 상호성에 관한 질문이다.(59) 아무도 예측할 수 없음, (사건의) 놀라움이 세계를 가능하게 함을 서구의 시간성과 다른 방식으로 받아들여야 한다.(60)

 

음벰베가 보는 주권은 삶의 가장자리 내지는 삶의 바깥쪽 테두리에서 사는 존재들을 대량으로 생산하는 권력이다.(74) 죽음정치의 권력은 죽음을 증식시키면서도 그 죽음들이 비극적으로 보이지 않도록 만든다.(75) 이 권력은 식민지와 함께 확장되고 발전하였다. 그렇기에 죽음정치의 동인은 인종주의이다. 인종주의의 힘으로 우리는 끊임없이 분할되고, 가해자와 피해자의 구분은 희미해진다. 단순한 통합과 병치만으로는 이 증오의 관계에서 벗어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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