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정치: 증오의 정치에 관하여》 2장 증오의 사회, 3장 죽음정치 음벰베는 ‘인류의 보편적 민주주의’에 대해 회의적이다. 그에게 민주주의는 항상 동류의 공동체이자, 분리의 원이었다. 민주주의의 내부에는 언제나 곧 쫓겨날, 권리를 박탈당한 자들이 있었다. 국가의 정치는 시민과 비시민을 구분하며 작동하고, 동류는 동류 아닌 자를 배제한다. 분리, 혐오, 적대의 시대에 자유민주주의는 이미 자본과 과학기술, 군국주의로 힘을 잃고 전도되기 시작한다. 자유민주주의가 적을 만들어 파괴하려는 체제로 변모했다는 말이다.(83~84쪽) 외부의 위험에 맞서 자신의 안전을 확보하려는 환상은 끊임없이 적을 발명하고, 또 그 적을 정복하려는 욕망에 사로잡히게 만든다. 과거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아파르트헤이트는 오늘날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점령으로 나타나며, 더욱 정교한 기술로 대규모의 폐허를 생산한다. 모든 포섭이 분열적일 수밖에 없다면, 분리 역시 언제나 불완전할 수밖에 없다.(88쪽) 불가능한 통제는 질식에 가까운 분리, 육탄전과 다름없는 점령으로 이어진다. 음벰베에게 식민지는 애초부터 분리의 원칙과 함께 시작된다.(90쪽) 자아를 세상 방위의 영점으로 놓고, 다른 한편에 타자들을 놓는 분리의 관계가 이렇게 시작되었다. 물론 이 분리 작업은 식민지 정착민들이 느낀 절멸 불안을 드러낸다. 수적 열세에 있으나 강력한 파괴 수단을 가진 정착민들은 불안을 폭력으로 표현한다. 아파르트헤이트의 실패는 식민지 기획의 한계를 보여주는 동시에 타자가 우리 밖이 아닌 안에 있었음을 치명적으로 노출한다.(92쪽) 식민지 정착민들은 이 과정에서 토착민에게 상상적 이미지를 덧씌우며 심리적 대상이라는 지위를 부여한다. 토착민은 자기 자신을 망각하도록 강요받으며, 자신의 자아와 이 심리적 자아를 구분하는 문제에 봉착한다. 이런 ‘식민 자아’의 구성은 식민지 질서의 심리적 기능이 지속되도록 뒷받침한다. 음벰베에게 이 자아는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이다. 나쁜 대상과 자아는 완전히 하나가 될 수도, 완전히 분리될 수도 없는, 주체이면서 대상인 존재이다.(93쪽) 적을 만들어 죽이는 일이 주체화와 정치 참여로 연결된다면, 자살(특히 적을 죽이는 희생을 동반한) 역시 자신과 적의 해체를 통한 정치 행위가 될 수 있다. 이 자살은 몸의 폐기를 통해 실체를 해체하고 적을 무력화하는 동시에 적으로부터의 위험과 전염을 피하는 역할을 한다. 이제 열성적 신앙과 이성적 지식은 더 이상 대립하지 않으며, 신화에 대한 욕망은 대중적 도덕성을 승리로 이끈다. 주체는 파괴의 방식으로 주권의 긍정을 경험한다.(99~101쪽) 안전 국가로 변모하려는 노력 속에서 자유민주주의 국가는 위대한 신화적 총체에 의지하며, 전쟁의 열정에 호소한다. 테러는 ‘주문형 애도’를 만들고, 국민 앞에는 눈물에서 무기로 향하는 길이 준비된다. 민주주의는 적 없이 존재하기 어렵고, 적의 존재를 확신하게 된 순간부터 내부의 타자를 배제하려는 내전이 시작된다. 안전 국가는 불안정 상태를 토대로, 자유의 신화를 동력으로 삼아 ‘적대의 중지’가 불가능한 영구적 전쟁의 기획 속에 몰두한다. 음벰베의 표현대로 우리는 오락적 욕구를 위해, 지루함과 단조로움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신보다 약한 자를 조롱하며 ‘나노인종주의’를 실천한다. 이제 어떤 사회도 단일한 피부색으로 구성될 수 없으며, 단일한 세계의 중심도 존재할 수 없다. 세계는 복수형으로, 복수 속에서만 경험된다.(120쪽) 소통이 불가능한 존재와의 갈등은 인간 멸종으로 치닫지만, 재시작을 가정하는 이 아포칼립스적 욕망은 환상일 뿐. 세계는 거주도, 횡단도 불가능한 공간으로 변모한다. 푸코와 아감벤의 사유를 이어받은 음벰베는 주권을 죽이는 힘으로 이해한다. 죽음은 주체의 구성과 주권의 창출을 인식하고 활성화하는 문제에서 중요하게 작용한다. 특히 아프리카의 경우 이 주권은 국가의 고유한 힘으로 이해되지도 않는다. 아프리카에서는 자국에서마저 국가가 폭력이나 강제력을 독점할 수 없다. 생존과 권력은 복잡하고 유동적인 관계 속에서 행위 주체성으로 이해되기도 한다. 권력의 편재성을 감안하면 자살 역시 저항이자 권력의 방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