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

제목[과학읽기] 앞으로 나아가는 이유2023-11-07 18:4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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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자신이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이유가 과학을 사랑하고 배우는 과정을 사랑하기 때문이라 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앞으로 나아가는 우리 역시 각자만의 이유가 있지 않을까. 다양성이나 포용성이라는 단어 아래 숨겨져 있는 각자의 삶의 실체와 실상을 묻어두고 여기, 이렇게, 또 모여, 이러한 책을 읽으며 공감하고 비판하면서 오늘을 살아냈고 또 내일을 살아갈 그런 이유 말이다. 입자물리학을 연구하는 최초의 흑인 여성 교수라는 타이틀을 달고 인종차별과 성차별, 강간뿐만 아니라 자신을 만든 그 모든 이야기들을 풀어내는 것조차 나는 부럽다. 이 부러움의 탓이 저자의 개인적 능력 때문만은 아니다.

 

 

저자는 과학계에서 생존하고 있다. 구성원의 인간성을 조금도 고려하지 않는 사회를 살아내고 있으며 그들이 원하는 공정성에 우리를 맞추도록 요구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는 사람들로 가득한 사회이다. 인종차별, 성차별, 동성애 혐오, 계급 차별에 보통 무관심한 사람들이 가득한 환경으로 여기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그 누구도 다른 사고 방식이나 다른 존재 양식을 가르쳐 주지 않는다. 배타적이고 때로는 물리적으로 폭력적인 현상을 유지하려고 상당히 노력하는 환경에서 적응하며 살아가려 노력한다. 개인이 성공했다고 해서 구조적 차별과 불평등이 없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서 행동을 취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이는 지식 경제에 인간의 가치를 묻는 체계를 거부하는 행동이자 선택한 소수가 누리는 사치 대신 피부색, 젠더 정체성, 성 정체성, 민족, 성적 지향, 로맨틱 지향, 장애 여부, 종교 등에 상관없이 모두가 이 우주에 한발 다가가 우주를 즐기고 우주에서 기쁨을 찾는 행동이다.

 

 

작가는 자신의 성 정체성을 모른다라고 말한다. 젠더와 성에 대한 이해가 늘 유동적이기 때문에 스스로 정체성을 표현하는 방식도 시간이 지나면서 변해 갈 것이라고 생각한다. 여성임을 의심해 본 적 있는가. 대부분의 사회에서는 나를 여성으로 보지만, 그것에 대해 나 스스로 성에 대한 정체성을 부여해본 경험은 전무하다. 게다가 작가는 가부장제를 논할 때 여성, 시스젠더 여성만 언급하는 데에 불편함을 느낀다. 트랜스젠더 남녀, 복잡한 성 정체성을 지닌 남녀, 논바이너리의 존재 등이 고려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물리학계의 LGBT 환경>이라는 보고 자료에 따르면, 물리학계의 트랜스젠더와 논바이너리는 올바른 인칭대명사 사용을 거부하는 행위, 즉 상대를 부정하고 괴롭히는 관행인 잘못된 성 표현(misgendering)’을 하는 지도교수와 동료에게서 젠더 차별을 받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당신이 누군가의 인칭대명사를 존중하지 않는다면, 이는 무엇이 중요하고 중요하지 않은지에 대한 신념을 보여주는 것이다.(영어를 말하는 것이 더 어려워질 것 같다... ;;;;)

 

 

가부장에 반하는 해결책의 하나로 성소수자다움(queerness)’이 있다. 성소수자의 구성 요소뿐만 아니라 이를 설명하기 위해 사용하는 언어조차 계속 변화해야 한다. 피터 카바가 언급한 트랜스젠더 정치에는 보편적 해방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이해하려면 집단 해방을 방해하며 지속적으로 장벽을 형성하고 있는 불의에 어떻게 잠식되어 있는지 우리는 인식해야만 한다.

 

 

10<과학을 살리는 사람들>11<강간은 과학 일대기의 일부이다>라는 각각의 저 제목들에 과학 대신 들어갈 수 있는 말들이 매우 많다. 대체될 수 있는 수많은 말 속에 관심조차 없는 소수자들의 삶과 지워버리고 미처 알지도, 기록되지도 않은 수많은 일대기들이 존재할 것이다.

 

 

작년 12, (대한민국) 대통령 소속 국가교육위원회는 ‘2022 개정 교육과정을 심의하면서 교육부가 지운 성평등’, ‘재생산권’, ‘성소수자용어에 섹슈얼리티용어까지 지워 의결했다. 섹슈얼리티가 성인데 성이라는 말을 쓰지 않고 성교육을 해야 하는 난제가 학교 현장에 던져진 것이다. 이쯤 되면 남학생들은 축구하라고 내보내고 여학생들만을 대상으로 생리대 깔끔하게 처리하기를 가르쳤던 내 어린 시절의 성교육에 비해 무엇이 나아졌는지 질문하지 않을 수 없다. 2022 개정 교육과정 심의 및 의결은 신호탄이었을까? 성평등 및 성교육 강사들을 대상으로 한 일부 보수 및 학부모 단체들의 집단 압력이 날이 갈수록 세를 불리고 있다. 일부 지역에서는 이런 단체들이 공공도서관에 성평등 및 성교육 관련 도서의 폐기를 요청하는 민원을 지속적으로 넣고 있다.

이러한 사회 속에 살고 있는 나에게 저자가 말하는 인칭대명사의 이야기와 시스젠더, 트랜스젠더, 논바이어리까지 갈 길은 까마득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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