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

제목[리딩 R&D] 상보적 과학은 능동적 규범적 인식적 다원주의의 표현이다. (《물은 H₂O인가?》 발제)2023-07-03 23:2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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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자신의 입장을 능동적 규범적 인식적 다원주의로 정의한다. 이는 다양한 분야에서 다수의 실천 시스템들을 보유하는 것의 혜택을 인정하는 것에 기초하여 다원성을 육성하기로 결심하는 능동적 태도다. 관용적 다원주의는 다양한 시스템들의 공존을 허용하고, 그 시스템들이 서로를 존중하게 한다. 그 다양한 시스템들이 어떻게든 상호작용해야 한다는 요구는 없으며, 심지어 각 시스템의 실천자들은 완강한 일원주의자여도 된다. 관건은 각각의 시스템이 존재하면서 자신의 잠재적 성공을 추구하는 것이 허용된다는 점이다.

 

 

다원성의 혜택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관용의 혜택이고 다른 하나는 상호작용의 혜택이다. 다수의 시스템들을 동시에 허용하면서 각 시스템이 지닌 한계를 완화하고 주어진 목표를 여러 방식으로 달성할 수 있다. 또한 시스템들의 경계를 넘나들며 이로운 요소들을 들여와 쓰거나 시스템 사이의 생산적 경쟁을 유발하기도 한다. 저자가 다원주의를 옹호하는 가장 근본적인 동기는 바로 겸허함 때문이다. 우리는 자신의 특수한 경험을 너무 많이 일반화하지 않는 법을 배워야 할 뿐만 아니라, 더 많은 협력자들과 함께 코끼리의 다양한 부분들에 도달하려 노력해야 한다.

 

 

조지프 프리스틀리는 멋진 이미지를 떠올렸다. “빛의 원이 커질수록, 그 원을 둘러싼 어둠의 경계도 더 커진다.” 지식이 늘어나면, 무지도 늘어난다. 우리가 자각하는 무지의 범위도 늘어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더 많은 빛을 얻을수록, 우리는 더 많이 감사해야 한다. 이런 식으로 우리는 만족스러운 관조의 범위를 확장하니까 말이다. 시간이 지나면 빛의 경계는 더욱더 확장될 것이며 신의 본성과 창조물들의 무한함을 근거로 삼아서 우리는 그것들에 대한 우리의 탐구가 끝없이 진보하리라고 우리 자신에게 약속해도 된다. 이것은 참으로 숭고하고 영광스러운 전망이다.” 이것이 어쩌면 헛될지라도 기꺼이 노력하기 위해 분투하는 많은 이들이 이 문장에서 힘과 위로를 받았으면 좋겠다.

 

 

놀랍게도 이 책에 대한 첫 세미나에서 했던 질문에 대한 대답이 실려있었다. 다원주의와 상대주의의 차이는 무엇인가? 상대주의는 판단과 결심의 포기를 적어도 어느 정도 동반하는 반면, 다원주의는 그런 포기를 동반하지 않는다. 성숙한 다원주의적 태도를 지닌 사람은 자신이 동의하지 않는 것과 생산적으로 관계 맺는다. 다원주의에서의 관건은 다수의 시스템들이 공존할 때 얻어지는 혜택이며 어떤 것이든지 좋다가 아니라 많은 것들이 좋다를 의미한다.

 

 

동일한 삶의 영역에 다양한 조언을 제공하는 다양한 과학 시스템들이 있다면, 과학 지식을 사용할 필요가 있는 사람들은 선택할 수 있고 선택할 것이다. 과학에서의 다원성은 기회를 제공할 것이며 다양한 시스템들이 존재하는 덕분에 다양한 가치들과 목표들이 모두 충족될 수 있고, 다양한 사람들이 개인적 우선순위에 따라 다양한 실천 시스템들을 선택할 수 있다. 다원성은 앎을 풍부하게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를 통해 관찰적 지식의 풍요를 산출하고 관찰들을 계속 더 많이 생산함으로서 능동적 실재주의의 목표에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고 상보적 과학에 이를 수 있다. 상보적 과학은 역사적 철학적 탐구를 통해 과학 지식에 기여한다. 현재의 전문화된 과학에서 배제된 과학적 질문들을 제기한다. 이것의 출발점은 명백한 것을 재검토하기, 교육받은 이들의 상식이 된 기초적인 과학의 진리들을 우리는 왜 받아들일까 하고 묻기다. 전문화된 과학에서는 많은 것들이 질문과 비판으로부터 보호받기 때문에, 그 과학의 입증된 효율성은 또한 불가피하게 어느 정도의 교조주의와 초점의 편협함을 동반하고 그로 인해 실제로 지식의 상실이 발생할 수 있다. ‘상보적유형의 과학사와 과학 철학은 회복, 비판적 의식, 새로운 발전에 기여한다.

 

 

이제는 계속 능동적 실재주의다원주의’, 그리고 상보적 과학의 무한 도돌이에 직면하게 된다. 물의 초기 역사부터 상보적 과학 프로젝트에 이르기까지 기나긴 여정을 말해 왔지만 이젠 우리 모두가 물은 단순히 H2O가 아님을 의식하는 것과 과학자들이 그 믿음에 도달한 미묘하고 정교한 이유들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정당화하기 어려운 과거의 과학적 결정들을 우리가 발견할 때 우리는 비판적 의식을 북돋아야 한다. 다양한 가능성을 지닌 생각들을 묵살하지 않고 배척된 상황들의 드러나지 않은 잠재력을 탐구하기 위하여 그것을 집어들고 참신한 제안을 하자. 우리 함께 백 송이 꽃이 피어나도록, 더 나아가 타가수정까지 하도록, 밧줄의 섬유들이 충분히 많고 밀접하게 연결되도록. 우리가 자각하는 어둠은 더 많아지겠지만 그래서 우린 더 감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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