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

제목[신유물론] 실재와 현상은 분리될 수 없다2024-03-15 10: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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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유물론X페미니즘] 2. 새로운 질문들: 물질과 과학기술 발제_0311_아라차


실재와 현상은 분리될 수 없다


페미니즘이 과학기술학과 만나면 ‘여성주체’에 대한 논의는 ‘젠더’ 관련 논의보다 더 복잡해진다. 과학기술학에서는 여성 외에도 다양하고 이질적인 인간 및 비인간 존재들이 개입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양자역학으로 “자연의 객관성 혹은 인식가능성”에 대한 믿음마저 와해되었기 때문에 인식론적 단계에서부터 새로운 개념이 필요해졌다. 그런 의미에서 신유물론 페미니즘 연구자 캐런 버라드가 정립한 개념들이 관련 연구를 탐독하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캐런 버라드는 양자역학과 이에 기반한 현대물리학을 통해 물질이라는 개념의 재개념화를 시도한다. 물질-에너지 등가 법칙(E=mc²)의 발견과 원자 폭탄의 실행은 더 이상 물질을 수동성, 부동성, 불활성에 묶을 수 없게 만들었고, 물질과 의미가 분리된 요소가 아니라 풀릴 수 없을 만치 뒤엉켜 있음을 드러내 주었다. 버라드는 “물질”이라는 용어를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대상의 내재적이고 고정적인 속성이 아니라 현상의 물질화를 지칭한다고 보았다. 


캐런 버라드에게 존재의 기본 단위는 독립된 사물이 아니라 현상이다. 버라드는 이미 독립된 존재들을 전제하고 있는 상호작용과는 달리, 현상 속의 성분들이 반복적인 “내부-작용”을 통해서 물(物, matter)이 된다고 설명한다. 인간과 비인간, 그리고 사이보그와 같이 이전에 행위자로 불렸던 존재들 역시 특정한 성분들의 내부-작용을 통해서 구성되는 물(物)들이다. 물은 행위성을 소유하는 존재로 선험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반복적인 물질화 혹은 ‘행위성의 응결’을 통해 사후적으로 드러난다(96p). 


행위성이란 행위할 수 있는 능력을 뜻하는 말로, 이 뜻에 충실하게 ‘행위능력’이라 번역할 수 있다. 어떤 행위에 대해서 행위 이전에 주체와 그 의도가 주어지거나, 행위를 통해 구성되는 것이 아니라 행위와 행위자 사이의 관계와 연결이 강조된다. 상호 작용이 행위 뒤에 존재하는 독립적인 행위자 사이의 것이라면, 내부-작용은 행위 또는 행위성 사이의 관계로서 행위자는 이에 대해 사후적으로 구성될 뿐이다. 


이렇듯 세계가 인간 주체가 아니라 인간과 비인간을 아우르는 행위성으로 이루어져 있다면, 아니 실재가 행위성 자체요 실재가 곧 행위성이라면, 이는 실체나 주체 등의 개체가 ‘실체’나 ‘주체’라는 이름으로 주어져 있고 이로부터 행위와 작용이 도출되는 고전적인 도식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음을 뜻한다. 개체 또한 오직 개별화 과정을 통해 사후적으로만 주어진다. 이것이 캐런 버라드의 “행위적 실재주의”의 핵심 논제이다. 


행위적 실재주의는 인간적 주체를 인간 또는 비인간의 행위성으로 대체함으로써 인간주의와 인류중심주의를 넘어서서 포스트휴머니즘과 조우한다. 포스트휴머니즘은 자연과 문화, 물질과 담론처럼 고정되고 본질적이라 여겨졌던 범주들을 비판하고, 일상적인 사회적 실천, 과학적 실천, 인간을 포함하지 않는 실천 등을 포함하는 자연문화적 실천에서 비인간이 중요한 역할을 함을 근본적으로 인정하는 입장이다. 이는 행위적 실재주의와 양립 가능하며 나아가 양자가 서로를 뒷받침하는 관계에 있다(130p).


버라드에게 시간과 공간, 물질과 그 의미들도 반복적 수행 또는 반복적 재배열의 결과이다. 물질은 본래적으로 주어져 있지도 고정되어 있지도 않으며, 내부-작용하는 행위성들이 계속해서 구체화되고 물질화되는 과정에 있다. 이 과정에는 담론적 실천도 개입하는데, 이 실천 역시 순수하게 언어적 과정이 아니라 그 자체로 물질적인 과정이다. 실체-주체 중심의 개별주의 전제에서 벗어나면 양자역학에도 역설이 발생할 일이 없다. 현상은 그 자체로 얽혀서 주어져 있다. 얽힘은 역설이 아니라 그 자체로 현상 즉 실재의 행위성을 드러내는 양태인 것이다. 


우리는 현상 배후의 실재를 전제하고 탐문하는 것에 익숙하다. 캐런 버라드는 이 전제가 오류임을 여러 개념을 통해 보여주었다. 실재와 현상은 분리될 수 없다. 실재는 얽힘과 만남의 결과이자 과정이다. 버라드에게는 세계와 우주, 그리고 공간성과 시간성도 내부-작용의 역동성에 의해 끊임없이 재구성되는 현상이다. 과거와 미래 또한 서로를 통해 거듭 재형성된다고 본다. 매 순간이 새로운 생성의 가능성들에 열려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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