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

제목[동아시아] 《조총과 장부》 변호와 프로파일링―글로벌 히스토리에 대한 중심과 주변의 시선2023-10-05 15:5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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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와 프로파일링글로벌 히스토리에 대한 중심과 주변의 시선

에레혼

글로벌 히스토리는 익숙한 듯 새로운 개념이다. 이 연구 방법론은 ‘세계사(world history)’의 비판자 역할을 자처한다. 글로벌 히스토리를 논하는 연구자들은 ‘세계’라는 단어조차 협소하다며 ‘지구적’, ‘전지구’ 등의 단어를 동원하여 ‘새로운 역사’, ‘거대한 역사’를 쓸 것을 제창한다. 《조총과 장부》 역시 이러한 글로벌 히스토리의 관점에 입각하여 16~17세기 동아시아 지역의 군사(‘조총’) 및 경제(‘장부’) 변화 양상을 살핀다.

글로벌 히스토리는 서구 중심적 사관을 비판한다. 여기서 ‘서구 중심’이라는 말에는 두 가지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 하나는 서구의 사학계를 중심으로 학문적 헤게모니가 구축되어 왔다는 이야기. 서구에서 출발한 학문적 방법론을 따르고, 그들의 학문적 분류 체계를 따르고, 그들이 제시한 비판 이론을 따라가고…… 글로벌 히스토리의 논자들은 서부 유럽과 영미권역에서 시작되는 목소리 이외에 다른 논의를 생산하려는 이들이다.

이들이 비판하는 ‘서구 중심의 세계사’란 당연하게도, 역사학의 주체이자 소재로 서구 문명 및 해당 지역 국가를 소환하는 작업 전반에 걸친다. 서구 과학 기술이 급속도로 발달한 15~17세기 이후 지구 모든 지역의 역사는 서구의 영향을 받은 역사 아니던가. 글로벌 히스토리에서는 이러한 영향 관계에 사라진 고리가 있었다고 주장하거나 대항해시대 이전에도 서구 이외의 지역에 고유한 역학 관계가 존재했다고 이야기한다. 《조총과 장부》에서 글로벌 히스토리의 접근 방식을 간단한 사례를 통해 살펴볼 수 있다.

“…과학기술 전문가들은 만약 중국 인도 이슬람 지역에서 기술을 전파하지 않았다면 유럽의 산업혁명이 발생할 수 있었을지 의문을 제기한다. 많은 사람이 아크라이트 방적기를 산업혁명의 상징으로 여기는데 이 기계는 중국의 물레방아 방적기와 깊이 연관되어 있다. 발명자인 리처드 아크라이트는 물레방아 방적기를 직접 본 적은 없지만 적어도 선교사를 통해 그림을 보았거나 여러 경로를 통해 영국에 전달된 부품을 보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경제 근대화를 ‘오로지 서양의 산물’이라고 볼 수는 없다._34

그렇다면 왜 《조총과 장부》의 저자는 16세기, 17세기를 글로벌 히스토리의 시각으로 서술하고자 하는가? (책을 앞부분만 펼쳐 본 상황에서 저자의 의도를 예측하는 것은 섣부르지만) 나는 리보중이 명나라 말엽(만명晩明)을 대안적으로 해석하려는 데에는 변호의 목적이 있다고 본다. 아시아 권역에서 중국과 일본의 위치가 서서히 뒤바뀌는 시점을 연구 대상으로 선택한 역사학자의 무의식에는 회한의 세월에 대해 중국인으로서 변호를 하고 싶다는 의중이 반영되어 있다. 고대 중국/아시아의 ‘글로벌함’을 언급하고 싶다면 시계를 더욱 앞으로 돌려도 된다. 아랍 상인이 수도에 드나들었다는 당나라(618~907), 해상 교역을 통해 많은 경제적 부를 축적했던 송나라(960~ 1279) 시기를 예시로 가져올 수는 없었을까? 물론 당송에 대해서 서술한다면 중앙 아시아 및 유럽과 중국-동아시아 권역의 관계사에 대해 더욱 자세히 서술할 수는 있었으리라. 하지만 명 말기 상황을 언급하는 일은 아시아가 한반도에서 맞부딪힌 사건, 임진전쟁에 대해 언급할 수 있으므로 ‘또 다른 말 할 거리’가 생긴다.

“…명나라 말기의 군사 문제는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어려운 주제였다. 이는 명 말이라는 시기의 특수성 때문이기도 했다. 이 시기에 경제 세계화가 이미 시작되었던 것이다. 만약 이 커다란 과정을 배재한 채 중국사를 연구한다면 ‘한나라를 모르니 위진을 이야기할 수 없다’는 함정에 빠지게 될 것이다._11~12

조공국에 불과했던 일본은 어떻게 군사 강국이 되어 대륙을 향해 총구를 겨눌 수 있었을까? 회한에 찬 질문의 답을 도출하기 위해서는 16~17세기 아시아의 판국을 들여다봐야 한다. 그리고 이 답을 풀기 위해 상업과 무역의 경로를 밟는 과정에는 글로벌 히스토리의 연구 방법론이 제격이다. 《조총과 장부》의 저자는 중국인으로서 들여다보기 고통스러운 시절이지만 동시에 새롭게 의미를 부여해야만 하는 시간선을 마주하고 있는 셈이다.

서두에 말한 것처럼 글로벌 히스토리는 익숙한 듯 새롭지만, 자칫 다시금 뻔한 학문 담론으로 향할 공산이 크다. 그리고 이러한 대안적 접근 방식의 키를 중국인이 쥐는 모습을 볼 때, 변방국 출신인 나는 괜스레 경계를 하게 된다. 글로벌 히스토리가 탈중심을 논한다 한들, 그들이 외치는 ‘기존의 중심축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구호가 ‘새로운 중심축을 찾아야 한다’는 원조 맛집 찾기 방식의 구호로 갈음되어서는 안 된다. 다극주의와 다자주의로 대표되는 중국의 대외 전략 모토는 마침맞게 글로벌 히스토리의 학문 정신과 호응한다.

이러한 의심병이 도지는 탓에 《조총과 장부》를 읽을 때에는 저자를 프로파일링 하듯 살펴보고자 한다. 저자가 유럽 중심 사관을 비판하면서 중국을 중심축으로 세우려는 작업을 하는 것은 아닌지. 서구 중심의 역사 서술에도, 그리고 중국의 역사학 연구 방식에도 소외되어 왔던 변방의 독자로서 조금 피곤한 방식으로 책을 읽어 나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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