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

제목[동아시아] 신을 믿지 않는 자들에게 (켄 리우 소설 발제)2023-06-08 11:5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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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들은 죽임당하지 않을 것이다<우수리 불곰>, <1비트짜리 오류>, <그 짐은 영원히 그대 어깨 위에>

 

신은 무엇일까? 인간이 인간 이외에도 큰 관심과 애정을 기울이는 존재가 있다면, 바로 그 존재는 신이리라. 그렇게 관심과 애정을 기울이면서도 신은 실재가 아닌 믿음의 영역에 존재한다. ‘이라는 단어를 알거나 쓰는 일은 신을 믿는 일과는 다르다. 신을 믿지 않거나 각자 다른 신을 말하면서도 이라는 단어를 쓴다. 신을 믿지 않거나 각자 다양한 신을 말하기에 그 믿음의 영역에 있는 존재를 이라 부르는 일이 오히려 편하다.

 

미국에 가본 적 없는 나에게 대중문화에서 접하는 미국은 좀 신기한 나라였다. 특히 기독교와 관련된 부분이 그랬다. 여행지의 숙소마다 침대 옆 서랍에 성경이 들어있고, 법정에서 성경에 손을 얹고 증인 선서를 하는 나라라니. 20세기 중반 누구보다 발 빠르게 원자폭탄을 만들었던 나라가 저렇게 신에 의지해서 살아간다고? 물론 역사를 보면 이해가 가지 않을 일도 아니었다. 종교 때문에 전쟁하고, 고향을 떠나 대륙을 옮겨 살았던 사람들이니.

 

문제는 개신교도들이 이주해서 만든 나라라기엔 이제 그들의 비중이 너무 줄어들었다는 점에 있겠다. 애초에 그들은 신의 이름으로 그 땅에 살던 선주민들을 죽이고 자기들의 나라를 시작하지 않았던가. ‘아메리칸 드림을 찾아 그 땅을 밟은 이들도 처음부터 그들과 같은 신을 믿지는 않았을 터. 어찌 됐든 그 땅에서 살기로 한 유색인종들은 유럽 백인들에게 침략의 간판이 되어주었던 그들의 신과도 더불어 살아야 할 상황이다.

 

과연 공생은 가능할까. 어쩌면 가능할지도. ‘이라는 단어와 연결할 수 있는 신이 너무나도 많기에. 그들이 자신들의 신을 말할 때 누군가는 같은 이라는 단어를 쓰면서 다른 신을 떠올릴 수 있으므로. 그들은 신이 유일하고 전지전능한 존재라고 말하지만, 신은 만물에 깃든 무엇이라거나 외계에서 온 존재라고 말하는 자들도 있기에. 그리하여 우리는 이라는 말을 남용하면서도 적당히 싸우며 살아가는 시대를 맞이하게 되었다.

 

켄 리우처럼 아시아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살아가는 이들에게 이런 현상은 색다르게 다가올 법도 하다. 과학의 시대에도 여전히 유일하고 전지전능한 신을 믿으며 살아가려는 이들은 아시아인의 눈에 한편으로 기이하고, 한편으로 온당하게 보인다. 아시아인들 대부분은 그들의 신을 전쟁과 함께 맞았다. 거대한 군함과 함포 앞에서 두려움에 떨던 아시아인들은 자신들의 손으로 자신들이 믿던 신을 죽였다.

 

<우수리 불곰>에서 화자인 일본 학자는 어릴 적 자신의 부모를 죽인 곰을 찾으러 만주에 간다. 그의 부모는 외국 군대의 압력과 기계를 도입하려는 천황을 피해 홋카이도를 개척한 이들이었다. 천황은 곰에게 한쪽 팔과 부모를 잃은 그에게 새로운 학문을 가르쳤다. 자신의 기술과 지식을 자신하던 그는 곰이 놓은 덫에 빠진다. 인간으로 변신할 수 있는 곰은 한때 그들의 신이었고, 지금은 살기 위해 그들의 기술과 지식을 빼앗으려 한다.

 

졸음에 겨워 흐릿해진 의식 속에서, 나는 기계 팔다리와 기계마로 무장한 곰사람 군대가 쉬지 않고 몰려오는 인간 무리에 맞서 싸우는 광경을 상상한다. 새로운 마법과 더불어 살아가는 법을 익히느라 태고의 마법을 잃어버린 이들을 상상한다. 그들을 동정해야 할지 아니면 두려워해야 할지, 나로서는 알 수 없다.

아이린의 살과 기계 팔의 금속은 하나로 융합할 것이다. 피로 진 빚처럼 얽히고설켜서, 거대 도시 도쿄처럼 아름다우면서도 기괴하게. 그곳에서는 아득히 오래된 미농지 등롱이 지금도 불을 밝히지만 이제 그 속에서 뜨겁게 타오르는 것은 조그마한 번개, 단자와 단자 사이를 건너뛰는 전류가 만들어내는 아크 방전이다.

나는 눈을 감고 잠을 청해 보지만, 나의 환상지는 죽기를 거부하는 태고의 마법 때문에 욱신거린다. (107)

 

그렇게 아시아인들이 자신들의 신을 죽이고 그들과 불화하게 만들고도 미국인은 여전히 자신들의 신을 믿는다. <1비트짜리 오류>에는 신을 믿지 않는 프로그래머 타일러가 등장한다. 타일러는 자신의 합리성을 신뢰하면서도, 그 합리성에 불만을 가지는 인물이다. 그 불만은 신성한 무엇에 대한 동경으로 이어진다. 신을 믿었던 연인이 죽은 후, 타일러는 스스로를 구원하기 위해 신을 믿어보려고 노력한다.

 

이 노력은 문제없이 작동하는 자신의 신경회로에 오류를 만들어내는 일로 묘사된다. 1비트짜리 작은 오류로 우리는 누군가를 천사로 착각할 수 있다. 착각은 돌이킬 수 없는 변화를 만들어낸다. 신의 세계를 마주한 경험은 내가 살던 세계를 다르게 보게 한다. 타일러는 이 설명으로 신을 합리적으로 이해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132) 오류를 합리적으로 이해하고 만들어낼 수 있듯 신도 합리적으로 이해하고 만들어내는 일이 가능하다.

 

<그 짐은 영원히 그대 어깨 위에>에서는 더 적극적으로 오류와 착각을 활용하는 방법이 묘사된다. 과거 문명이 번성했던 한 외계행성에서 문자가 기록된 석판이 발견되자, 사람들은 그 내용이 삶의 지혜가 담긴 서사시라고 추측한다. 인류학자인 남편을 따라간 회계사 제인은 그 내용이 세법이라고 주장하지만 무시당한다. 이후 제인은 세무서를 보수하면서 석판의 내용을 세무서 건물에 새기려 한다. 먼 훗날 사람들이 석판의 내용을 세법으로 이해하도록.

 

무엇이 오류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애초에 우리는 오류 없이 살아갈 수 없다. 오류를 회피하려는 합리성과 논리는 오류의 존재를 염두에 두어야만 가능하다. 가능한 오류를 줄여보자는 의미이니까. 우리가 그토록 진실과 완벽에 집착하는 이유도 오류 없이 살아갈 수 없음을 알기 때문이 아닐까? 1비트짜리 오류가 우리 삶을 바꾼다. 삶의 척도, 기쁨의 밀도, 욕망의 온도, 슬픔의 부피. , 즉 오류 없는 세계가 곧 우리에게는 지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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