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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과학읽기] 인간이 컴퓨터보다 더 틀에 박혀있음2024-03-05 13:2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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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읽기] 상자 밖에서 생각하는 법_0305 발제_아라차



인간이 컴퓨터보다 더 틀에 박혀있음



현 시점, 당신은 AI와 얼마나 친해졌는가. AI가 우리의 직업을 빼앗고 결국 인간을 지배해서 인류의 미래를 암울하게 만들 것이라고, 당연한 듯 받아들이고 있는 것은 아닌가. 이렇게 생각하고 있다면 당신은 신경전형인일 가능성이 크다. 이제 현 상황을 다르게 바라볼 가능성이 큰 신경다양인의 관점을 보자. 이 분은 자폐스펙트럼장애와 아스퍼거 증후군, ADHD(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 GAD(범불안장애)를 안고 있는 여성 생물학자이다. 그는 과학이라는 언어로 인간과 세상을 읽고 자신만의 인간사용설명서(한글판 제목 : 자신의 존재에 대해 사과하지 말 것)를 만들었다. 이 설명서는 우리가 옳다고 여기고 몸에 새기고 살았던 통념들이 적잖이 우리의 직관을 배반하고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컴퓨터가 알려주는 의사결정 방식들을 먼저 살펴보자. 우리의 직관은 컴퓨터의 의사 결정 방식이 더 체계적이고 구조화되어 있을 거라 생각하지만 사실은 정반대다. 알고리즘은 통일성이 없고, 복잡성과 무작위성 속에서 번성하며, 환경의 변화에 효율적으로 반응하는 능력이 탁월하다. 이와 대조적으로 순응적이며 단순한 패턴을 추구하는 경향은 아이러니하게도 인간의 사고방식에서 나타난다. 컴퓨터가 인간보다 더 쉽게 틀에 벗어나 사고한다는 사실을 이제 인정해야 할 때다(21p). 순응적이며 전형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인간과 변화에 효율적인 반응 능력을 지닌 컴퓨터. 과연 어느 쪽이 진화에 적합할까. 


컴퓨터의 머신러닝 방식으로 인간의 뇌를 가르치면 우리의 사고 패턴이 달라질 수 있을까. 머신러닝은 인공지능 분야의 하나이다. 패턴을 학습하거나 인지할 수 있는 알고리즘에 데이터를 대량으로 입력하여, 그 결과를 새로 입력되는 정보에 적용하는 것이다. 머신러닝을 통해 컴퓨터는 개와 고양이를 구분하고 질병의 특징을 연구하며, 체스 선수나 바둑 기사를 능가하는 성취를 이뤄냈다. 머신러닝의 가장 보편적인 기술 두 가지는 지도학습과 비지도 학습이다. 지도학습은 특정 결과가 나오도록 알고리즘을 프로그램하는 것이고, 비지도 학습은 알고리즘이 도출해야 할 정해진 답 없이 내재하는 패턴을 식별하도록 프로그램하는 것이다. 


우리가 의사 결정을 할 때 머신러닝과 비슷한 선택지가 있다. 결과를 정해놓는 하향식 방법을 택할 수도 있고(지도 학습), 상향식으로 증거를 쌓아 올려 결론이 유기적으로 달라질 수 있게 할 수도 있다(비지도 학습). 저자는 이 접근법을 각각 ‘상자 만들기’와 ‘나무 키우기’로 비유했다. 상자는 크기와 형태가 같고 일관되며 논리적이다. 상자 속 사고방식은 정돈되고 깔끔하기 때문에 선택을 분명하게 인지할 수 있다. 나무는 유기적으로 자라며 때로는 통제를 벗어난다. 수많은 가지가 자라나고, 나뭇잎에도 온갖 종류의 복잡성이 숨어 있다. 나무는 우리를 사방으로 이끌 수도 있지만 막다른 길이나 미궁으로 밀어 넣을 수도 있다. 어느 쪽이 나을까? 정답은 ‘둘 다’이다. 하지만 아주 많은 사람들이 상자에 틀어박혀 있는 것이 현실이며, 의사 결정 나무의 첫 번째 가지까지도 올라가지 않는다(26p).


과학은 우리에게 복잡한 현실을 수용하라고 가르친다. 얽히고설킨 것들이 사라지길 바라며 현실을 매끄럽게 다듬으라고 가르치지 않는다. 모순과 불가측성, 무작위성은 삶을 현실로 만드는 요소들이다. 우리는 조화를 이루지 않는 현실을 탐색하고 질문하고 수용한 뒤, 이해하고 결정해야 한다. 의사 결정을 내릴 때 더 과학적으로 하고 싶다면, 패턴을 감지하고 결론을 끌어내기를 바라기 전에 무질서를 수용해야 한다. 우리가 나무처럼 생각해야 한다는 뜻이다. 좋은 의사 결정은 보통 확실성을 가정하는 데서 나오지 않으며 혼돈, 다른 말로는 증거라는 것에서 나온다. 


과학에서 증거는 시험해야 할 대상이지, 전시해야 할 비석이 아니다. 가설을 세우는 이유는 가설에 의문을 제기하고 발전시키기 위해서다. 가설이 얼마나 굳건해 보이든 간에 절대적인 인생 안내서로 취급해서는 안 된다(42p). 과학은 오류를 딛고 번성한다. 오류는 기본 가설을 미세하고 조정하고 진화하고 실수를 바로잡게 해준다. 머신러닝에서 데이터는 노이즈로 가득하며, 데이터 집합 속에 들어있는 정보는 유용하거나 의미있는 군집을 만드는 데 실상 도움이 되지 않는다. 시스템 속에 있는 자연스러운 노이즈를 인정해야 해야만 빅데이터 그룹에서 작업을 쉽게 할 수 있다. 


일상에서 사람들이 활기를 띠는 순간은 오히려 일이 잘못되었을 때다. 이때 상자 속 사고는 모든 오류가 치명적이라 생각하고 ‘이생망’을 외치게 한다. 이는 문제를 적절한 맥락에서 보는 능력을 억누르며, 모든 오류가 치명적이라고 생각하게 한다. 이는 항상 옳고 그른 결정이 정해져 있다는 위험한 환상을 만들고, 그 사이에서 극단적인 결정을 해야 하는 어려운 상황을 만든다. 현실은 항상 미묘한 차이가 있으므로 결정에 이르는 우리의 기술도 마땅히 그래야 한다. 상자 속에서는 일이 어딘가 잘못되더라도 갈 데가 없다. 나무에는 대안이 될 나뭇가지, 나아가는 길들이 사방을 둘러싸고 있다. 경로를 바꾸기가 쉽고 더 효율적이다. 


머신러닝은 ‘실수’가 정상이며 실제 데이터에 그것이 내재한다고 가르쳐 준다. 실제로 이분법적 선택지는 거의 없으며, 모든 것이 패턴에 들어맞거나 반박할 수 없는 깔끔한 결론으로 수렴하지도 않는다. 머신러닝 관점이 유용한 이유는 이 관점이 무작위성과 불확실성을 걸러내는 게 아니라, 오류를 수용하고 예외에서 규칙을 만들며 더 잘 대비할 수 있게 돕기 때문이다. 여기까지 읽었다 하더라도 ‘인간’과 ‘컴퓨터’에 대한 우리의 전형적인 판단은 쉽게 바뀌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오류를 경멸하는 상자 속에 너무 오래 머물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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