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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아나키즘] 8장 발제 :: 외관상 무질서가 후진성의 징표는 아니다2020-05-20 09:4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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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0 [국가처럼보기] 8장 발제



외관상 무질서가 후진성의 징표는 아니다


 

온대기후 산업화된 서구의 가설이 다른 환경에서 제대로 작동할 리 없다. 자기 패러다임 바깥에서 만들어진 지식을 인정하거나 수용하지 않음으로써, 하이 모더니즘 농업은 실패를 자초할 수밖에 없었다. 


단순 작물 경작, 기계화, 비료와 살충제 이용, 자본 집약으로 특징되는 근대적, 산업적, 과학적 농업이 초래한 농업의 규격화 수준은 역사적으로 유례가 없을 정도다. 작물의 획일화가 날로 증가하게 된 원인 중 하나는 경쟁적인 대량 시장에서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강도 높은 상업적 압박이다. 거대한 슈퍼마켓 체인의 성장과 유통 포장 및 진열이 표준화되면서 농산물의 크기, 모양, 색상의 획일화가 불가피하게 강조되었다. 이런 압박의 결과, 기준을 충족하는 소수의 품종에만 집중되고 나머지는 모두 버려지게 되었다.

식물공학이라고 명명된 식물 품종 개량 분야는 자연을 기계화 과정에 부응시키기 위해 탄생했다. 기계는 작물을 수확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사실은 기계로 수확하도록 작물을 개량해야 한다는 것이 식물공학자들의 생각이었다. 경작지에 맞춰 개량된 식물이 기계화에 맞춰 다시 개량되었다. 수확의 기계화는 작물과 경작지 모두를 변형시키고 단순화하는 데 강력하게 작용했다. 농업과학은 결국 정교하게 개간된 농경지, 획일적 관개, 성장을 통제하는 영양소, 균일한 건강 상태를 유지하기 위한 잡초 제거제, 살충제와 살균제의 자유로운 사용과 품종 개량이라는 이상적인 농업을 만들었다. 그러나 의도하지 않은 결과가 기다리고 있었다.

유전적으로 단일한 식물은 양호한 환경과 모든 종류의 병해로부터 확실히 보호받을 경우 생산성이 매우 높다. 하지만 외부적 요건이 불리한 경우 치명적인 기생균으로 인해 그 결과는 처참할 수밖에 없다. 모든 식물은 유전적으로 특정 병원체에 아주 취약하다. 단일 경작지는 그것을 먹고 사는 병원체의 돌연변이 또는 변종을 확산시키는 유전자의 최상의 조건이다. 살충제 이용은 이런 유전적 취약성에서 비롯된 불가피한 현상이었다. 옥수수처럼 개량 변종은 너무나 동일해 질병 앞에 매우 취약하다. 이런 개량 변종을 위한 무균 경작지는 살충제의 무차별 사용을 통해 만들어진다. 단일 개량 변종 작물의 성장은 살충제 시장의 성장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여러 세대에 걸쳐 살충제에 노출될수록 저항력 있는 변종이 새로 나타날 가능성도 커진다. 토양, 지하수 수질, 인간 건강까지 살충제 사용이 새로운 질병을 만들어가면서 곡물 질병도 가일층 악화시키는 장면은 지금 목격되고 있는 현상이다. 결국 문제 해결의 탈출구를 만들어낸 것은 오랜 역사를 거치는 동안 유전적 다양성을 발전시킨 비전문가들이었다,

서아프리카의 토속 농업인 다양한 혼합농 시스템의 예를 보자. 서구인의 눈에 그 시각적 효과는 무질서하고 조잡한 것이었다. 그들은 더 이상 경험적으로 조사해볼 생각도 하지 않은 채 농작물의 외견상 무질서를 기술적 후진성의 징표로 간주했다. 그러나 외견상 드러나는 혼란은 한층 심오한 논리를 감추기도 한다. 한 경작지에서 더 많은 품종이 있을수록 생산력과 회복력이 더 좋다. 혼작이 토양 개량에 한결 좋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으며 기후와 병충해 피해에 대한 저항력 역시 강하다. 서아프리카의 혼작 체계 논리는 원시적이라고 오랫동안 무시되었지만 마침내 공인을 받기에 이른다. 다양한 형태의 혼작은 서아프리카 경작지의 80퍼센트를 차지한다. 대부분의 서아프리카 농부들은 혼작과 이동경작을 병행했다. 이동 경작 또한 그것을 실행하는 토양, 기후 및 사회적 조건에서 볼 때 합리적이고 효율적이며 지속 가능한 기술임이 밝혀졌다.

이동경작은 인종에 상관없이 농업의 근대화를 꾀하는 모든 사람을 불편하게 만들었다. 주권 국가나 국가가 위임한 개발 관리자의 관점에서 잘 읽히지 않기 때문이다. 서구의 관점에서 교육받은 사람들에게 서아프리카 농부들의 다소 쉬워보이는 농사 관행은 말그대로 후진적인 것이었다. 하지만 적절한 평가는 눈으로 보기에 ‘선진적’이냐 ‘후진적’이냐가 아니라, 해당 환경에서 잘 작동하는가 여부에 달려 있다. 서아프리카 농부들은 항구적인 저지대 경작법과 그것보다는 한층 취약한 구릉지나 고지대, 혹은 숲 속에서의 화전 방식을 결합했다. 이는 그들이 더 좋은 것을 몰랐다기보다 자신들이 신중하게 선택한 농사 기술의 범주였다. 최근에는 많은 전문가들이 토착적 농업 지식이 아직까지 미처 활용하지 않은 유일하게 가장 큰 지적 자원임을 인정하고 있다. 

왜 현장의 실용적 지식에 대해 ‘비과학적’ 경멸을 하는 것일까? 저자는 세 가지를 이유를 든다. 첫째는 ‘전문성’이다. 일반 경작자들이 더 많이 알수록 전문가와 그가 속한 제도의 중요성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 두 번째는 하이 모더니즘의 단순한 반사작용이다. 과학자는 항상 현대적이고 근대주의와 연관이 있는 반면 토착 농민은 근대주의에 의해 사라지게 될 과거와 연관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과학자는 농민에게서 배울 것이 거의 없다고 느낀다. 세 번째 이유는 농민의 실행지가 과학적 농업 기준에 부합하지 않은 형태로 분류되고 대표되기 때문이다. 과학의 편협한 시각에 의하면 확실히 통제된 실험을 통해 증명하지 않으면 그 어떤 것도 공인받지 못한다. 그러나 농업에서 모든 가능한 변수를 통제한다는 것이 가능한 일일까. 과학적 근대주의의 제국주의적 허세는 실험적 방식이 만들어놓은 구멍을 통해 도달한 지식만을 인정한다. 관습이나 민속적인 격언에서 비롯된 전통적 관행은 검증은 말할 것도 없고 주목조차 할 필요 없는 것으로 간주한다. 하지만 살펴보았듯이 농부들은 곡물 생산, 해충 통제, 토양 보전 등의 측면에서 유용한 결과를 잉태시킨 수많은 기술을 고안하고 완성해왔다.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지만 농업에서는 “관행이 이론보다 한참 앞서왔다.” 실제로 이처럼 동시다발적으로 상호작용하는 변수를 포함하는 성공적 농업기술을 과학 기술을 통해서는 결코 완전히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하이 모더니즘이 줄곧 무시해온 지식의 한 종류, 실행지(메티스)에 대해 살펴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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