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

제목[푸코/권력] 인간에 관한 학문으로서 의학 (<임상의학의 탄생> 9, 10장 발제)2024-04-05 07:4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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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상의학의 탄생9. 볼 수 있는 비가시성, 10. 열병의 변화, 결론

 

이 책의 8장에서 푸코는 근대의학 안에서 병리해부학과 임상의학이 만나 변형되는 과정을 상세하게 기술했다. 이 과정을 거치면서 근대의학은 죽음을 새로운 형태로 받아들인다. 죽음 이후 인간 신체는 의학적 시선 앞에 더 많은 가시성으로 나타난다. ‘개인의 죽음이라는 가시성을 넘어 근대의학은 다시 과거에 활용했던 생리학적 방식을 재활용하기 시작한다. 질병에 관한 인식은 곧 인간에 관한 인식이기 때문이다.

 

병리해부학자 비샤에게는 질병의 종류가 아니라 질병의 성격이 중요했다. 병리학자들은 질병에 특정 경로가 있다고 믿었고, 신체의 변형을 지켜보면서 질병을 예측하려 했다. 유기체가 성장하고 변화하듯이 질병도 유기체 내부에서 성장하고 변화한다. 질병은 이제 생명을 위협하는 존재라는 개념에서 벗어나 병리적 생명체로 다시 정의된다.(257) 이때 질병은 분류가 아닌 생명이라는 텍스트 이해 방식으로 다루어진다.

 

생명에 대한 이해는 질병을 분류하는 방식을 넘어 증상 안에서 진리를 찾는다. 생명은 순간적이며, 인식 가능한 대상이고, ‘살아있지 않음에 저항한다. 생명에 대한 이해는 곧 생명을 구분하는 근거인 죽음과 연결된다. 과거의 질병이 건강과 연계되었다면, 이제 질병은 죽음과 연계되면서 진리에 개방된다. 질병의 경로를 예측하려던 비샤에게 죽음은 병리적 차원의 현상인 신체의 변성으로 이해되기 시작한다.

 

유기체는 종종 노화처럼 저항할 수 없는 외부의 힘과 마주치며, 이 힘에 의한 변성은 곧 죽음과 맞물린다. 고유한 수명을 가진 생명이 거기서 이탈할 가능성이 질병이고, 죽음은 이들의 기원으로 존재한다. 병리해부학적 인식은 여기서 임상의학의 가시성을 무시하고 징후에 관한 판단을 달리한다. 징후는 신체 상태와 연결되지만, 병리학적 본질을 알려주지는 않는다. 이제 의학적 지각은 인위적 기술을 통해 징후를 해석해야 한다.

 

이때 타진법처럼 시체를 대하던 방식이 청진기 같은 인위적 기술로 변형되어 의학에 등장한다. 의학적 시선은 말 그대로 시선을 넘어 촉각과 청각의 영역으로도 확장된다. 시선을 넘어 감각이 중요해질수록 의학에는 죽음 역시 중요해진다. 생명은 질병의 본질이라는 진리를 가리지만, 죽음은 진리를 드러내기 때문이다. 죽음을 통해 의학은 신체의 개별성을 받아들이고, 의학의 언어는 신체를 비교하는 언어로 굴절된다.

 

9장의 마지막에서 푸코는 죽음에 대한 새로운 개념화와 언어가 개인의 포착을 가능하게 했다고 설명한다. 근대의학이 임상의학을 통해 과거의 형이상학적 의학과 결별하고 유기체를 관찰하며 찾아내려 했던 진실은 이렇게 생명죽음이라는 다소 추상적인 지점으로 되돌아왔다. 푸코의 지적대로 의학(을 포함한 과학)이 강조하는 실증적 방식 역시 철학의 방식과 다르지 않으며, 인식론적 토대를 공유하기 때문이다.

 

10장에서 푸코는 비샤와는 다른 질문과 결론에 이르렀던 의학자들을 살펴본다. 비샤가 무시했던 질병 분류에 여전히 관심을 가지며, 질병의 종류가 성격을 규정한다고 본 이들이다. 분류학적 사고에 힘을 부여하는 이런 관점의 전제는 질병의 자리를 정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분류학을 무시한 비샤와는 달리 라외넥은 질병분류학이 임상해부학에 도움이 된다고 보았다. 질병분류학은 이처럼 해부학에도 질서를 부여하기 시작했다.

 

열병은 공통적 증상을 의미하지만, 원인은 다양했다. 열병 치료를 위해서는 라외넥의 말대로 분류의 방법이 필요했다. 열병이 발생하는 위치가 중요하다고 생각한 이는 피넬이었다. 피넬은 질병 그 자체가 아니라 징후를 보았다. 이런 판단은 질병이 구조를 암시할 뿐 결정하지는 못한다는 브루세의 관점으로 변형되어 이어진다. 병리해부학은 열병 증상의 다양성을 통해 모순과 잡음 속에서 새로운 해석을 해나갔다.

 

18세기 말부터는 과거의 임상의학 교육과정을 이수한 학생들이 군대에서 근무하면서 기존의 질병분류학에 병리해부학의 방법을 끌어들였다. 과거의 의학과 급격한 의학적 도전이 만나는 곳에서 브루세는 하나의 통합된 모델을 만들었다. 브루세는 특수한 증상-국부적 병변’, ‘일반화된 증상-전체적인 변화라는 이항 대립을 분리하여, 유기체 안에서 질병의 위치결정이 질병분류학의 배치와 관계가 없다는 결론으로 나아갔다.

 

브루세를 통해 질병분류학이 현실적인 질병과 연결되면서, 과거의 생리학이 다시 소환된다. 염증의 정체를 밝히는 데는 생리학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이제 생리학은 추상적인 생명체가 아니라 기관을 가진 생명체에 관해 말하며, 각 기관 사이의 영향을 고려하면서 관찰한다. 여기서 질병은 유기체가 자극에 반응하는 조직의 운동이다. 본질적인 질병이나 질병의 본질이라는 명제는 더 이상 타당하지 않게 된다.

 

열병처럼 유사한 증상의 상태를 구분하는 일은 유기체의 통증을 해부학적인 동시에 생리학적으로 이해하는 방법이다. ‘통증이라는 개념이 자극을 대체하면서 의학적 시선은 질병의 공간을 새롭게 이해한다. 질병의 공간이란 곧 유기체의 공간이다. 질병을 인식하는 일은 이제 신체를 인식하는 방법의 하나가 되었다.(310) 근대의학이 인간 신체를 다루면서 인간을 학문의 대상으로 인식하게 만들었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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