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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푸코/의학권력] 규율권력의 작동과 정신의학 담론의 형성 2024-04-26 10:1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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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의학의 권력>3강4강 발제_0426 아라차 


규율권력의 작동과 정신의학 담론의 형성


3장. 광인이 된 왕은 헤라클레스같은 몸집의 시종에 의해 제압당한다. 왕은 자신의 오물을 뿌리며 저항해 보지만 시종의 막강한 신체는 왕을 온순하게 만든다. 왕관과 화려한 의상으로 주권권력을 뽐내던 왕은 광인이 되어 이렇게 규율권력의 전략 속에 편입된다. 푸코가 주목한 규율권력은 이처럼 “최말단의 수준에서 신체에 닿아 거기에 파고들어 몸짓, 행동, 습관, 언행을 (…)변화시키거나 관리하는 방식”으로 작용한다. 정신의학의 메커니즘은 이 규율권력의 작동방식으로부터 이해할 필요가 있다. 


주권권력은 군주와 신민을 비대칭적 관계에 따라 연결시키는 권력이다. 생산물과 노동력 등의 징발과 지출로 이뤄진 체계다. 신민은 순종과 충성을 서약하고 군주에 헌신할 것을 약속한다. 주권권력에는 복식이나 경례같은 의례적인 표식이 따른다. 부가적 폭력 또는 일정한 폭력적 위협도 필요하다. 이는 이 관계를 활성화시키고 유지케 한다. 농노와 영주, 가신과 군주, 성직자와 평신도 관계처럼 주권 관계는 차별화되는 관계다. 왕 개인의 신체에 그 권력이 있는 것이 아니다. 왕이 서거해도 다음 왕이 그 자리를 차지하듯 개인 내지 신체의 단일성에 적용되는 권력이 아니다.


규율권력은 “생산물의 포획이 아닌 신체의 포획이고, 용역의 포획이 아닌 시간의 총체적 포획”이다. 이에 대한 예시를 푸코는 17세기말~18세기 초 군대 규율의 출현에서 찾는다. 필요에 따라 징집하고 보수를 약속했던 체제에서 병사를 병영에 입영시키는 군대, 병사를 점유하는 군대가 출현한 것이다. 군대는 군사를 평화 시에도 점유하고 극단적인 경우에 인생이 끝날 때까지 점유한다. 군대 규율이 신체, 시간, 생명을 총체적으로 몰수하는 것이다. 모든 규율체계는 이렇게 개인의 시간, 생명, 신체의 점유를 지향한다. 규율체계 내에서 우리는 누군가의 지배 아래 놓이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누군가의 시선 아래 놓이거나 적어도 보이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 


18세기부터 군대 내의 신체적 훈련이 출현한다. 신체적 훈련은 신체의 훈육이다. 규율에는 문서기록이라는 도구가 사용된다. 일어나는 모든 일, 개인이 행하는 모든 것, 개인이 말하는 모든 것을 적고 기록한다. 이후 위계에 따라 이 기록은 아래로부터 위로 전달된다. 이 정보들을 언제나 입수 가능한 것으로 만들어 완전히 가시성을 확보한다. 신체의 가시성과 문서기록의 지속성은 짝을 이루어 어떤 효과를 발생시킨다. 예를 들어, 직업훈련학교의 견습생은 교사 혹은 감독관의 눈 앞에서 평가되고 그 기록은 상부로 전달된다. 문서기록은 견습생의 모든 행동을 코드화하게 되고, 결국 견습생의 적격/부적격 여부를 상부(중앙집중)에서 정의한다. “문서기록에 의한 포위, 코드화, 이전, 중앙집중화, 요컨대 도식화되고 중앙집중화된 개별성의 구축”이 나타난다. 경찰 규율도 이런 식으로 도식화되고 개별화된다. 


규율 관계의 이면은 처벌이며, 처벌을 향한 아주 미세하고 연속적인 압력이 존재한다. 작업장에서 노동자의 품행은 상호감시되고 세심하게 규정되어 있다. 분류하고 감시하며 위계화하는 규율체계는 분류불가능한 자들, 감시를 피해가는 자들, 분배체계 내에 들어올 수 없는 자들을 마주할 때 차질을 빚는다. 예를 들어 탈영병은 규율화된 군대가 있기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정신박약이 출현하는 것도 학교 규율이 있고 나서부터다. 규율권력은 예속된 신체를 만들어내고 그것들을 배열한다. 규율권력에는 주체-기능, 신체의 단일성, 지속적인 시선, 문서기록, 극미한 형벌의 체제, 영혼의 투영, 마지막으로 정상과 비정상의 구분으로 이뤄지는 어떤 계열이 존재한다. “규율은 개인을 표적과 상대물 그리고 권력관계 속에서 마주하는 것으로 만드는 권력의 최종적이며 모세혈관적인 형태”이다.


규율권력의 주체-기능, 영혼의 투영, 규범화보다 앞서 개인이 존재한다고 말할 수 없다. 신체가 규범화됐기 때문에 개인 같은 어떤 것이 출현한 것이다. 개인의 타고난 권리같은 것을 주장하는 것은 역사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오류이다. 개인은 규율 테크놀로지에 의해 실제적으로 구축됐다. 심리학, 사회학 등의 인간과학이 제시하는 인간은 바로 규율적 개인이다. 


4장. 규율장치는 오래 전부터 있었다. 이 장치는 오랫동안 주권장치의 한복판에 뿌리내리고 거기서 기능하고 있었다. 푸코는 수도사 공동체 속에서 규율장치를 발견한다. 수도원에서는 닫힌 공간 내에서 바깥 세계와의 관계를 최소화한 채 금욕적 수련이 이루어진다. 금욕적 수련에는 원리가 있다. 수련을 개인이 자기 자신에게 행사하는 것이라 하더라도 항시 인도자나 보호자에 의한 지도 아래 행해진다는 것이다. 교수와 학생도 마찬가지다. 수도원적이자 군대적이라 할 수 있는 조직이 예속지배의 도구 역할을 한다. 이런 규율적 도식은 식민지 민족에 대한 예속지배에도 적용된다. 푸코는 식민지 주민의 규율화는 노예제에 대항하는 것으로서 행해졌다고 생각한다. 식민지에 자신들의 규율을 이식시키고 변형시킨 것도 수도회였다. 방랑자, 걸인, 유랑자, 창녀 등에 대한 예속지배의 유형도 종교적 제도에서 파생됐다. 


17세기 말과 18세기에 종교적 거점을 갖지 않는 규율 장치가 출현한다. 바로 군대이다. 군대 다음으로 노동계급에서도 규율장치가 부과되기 시작한다. 광산 도시, 제련산업, 탄광에 최초의 노동자 거주촌이 출현한다. 동시에 노동자의 규율을 위해 노동자 수첩이 부과되고 개인의 노동 일대기가 기록된다. 노동자들을 공간 내에 고정시키고, 신체적 통제와 착취, 지속적인 감시와 즉각적인 처벌을 행하는 권력이 구축된 것이다. 규율 장치의 확산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인간의 축적으로 이어져 잉여노동자가 많아지고 급여 삭감이 쉬워지는 구조를 가능케 한다. 규율은 신체, 시간, 노동력을 분배하는 기술이 된다. 


푸코는 1791년 쓰여진 제러미 벤담의 『판옵티콘(일망감시체제)』에서 규율권력의 상징적인 지표를 발견한다. 일망감시체제는 감옥을 위한 모델이지만 병원, 학교, 작업장, 고아원 등을 위한 모델이기도 하다. 일망감시체제의 진정한 효과는 아무도 보고 있지 않을 때조차 독방 안에 있는 개인이 하나의 시선에, 그것이 거기 있는지 없는지는 중요하지 않는 시선에 자신이 보이는 상태라는 것을 언제나 경험하게 된다는 데 있다. 감시탑이 완전히 비어있어도 이 권력은 행사된다. 일망감시체제는 모든 것이 언제나 감시된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여기서 실행되는 권력이 완전히 광학적 효과라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물질성이 결여된 권력이다. 


일망감시체제의 마지막 특징은 이 권력이 끊임없이 지식의 추출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개인은 자신의 독방에서 하고 있는 일을 규준화하고 평가한다. 이 지식을 축적해 개인을 특징짓게 되는 계열을 구성하는 것이다. 이렇게 기록되고 중앙에 전달되어 일종의 개인성이 형성된다. 


주권의 도식이 우세했던 중세에도 규율 유형이 존재했듯이 현대 사회에서도 여전히 주권권력 형태를 발견할 수 있다. 바로 가정이라는 제도에서다. 가정에서는 아버지가 권력을 행사하는 주권권력의 양상이 보이고 감시는 보충적이 요소다. 하지만 가정은 규율체계의 본질적인 한 부분이다. 가정은 규율 장치에 개인들을 항구적으로 고정시키고 그 안으로 주입한다. 가정이 있기 때문에 교육체계가 있고 군복무가 있고 노동의 의무가 주어진다. 규율장치들과 관련한 가정의 일차적 역할은 일종의 핀 꽂기, 즉 개인들을 규율장치에 고정시키는 것이라 볼 수 있다. 개인이 규율 체계로부터 내쫓길 때는 가정으로 내쫓긴다. 가정은 개인이 사회가 마련한 규율 체제로 들어갈 수 있는 지 없는지 결정하는 영역이었다.


19세기 유럽에 프롤레타리아트가 형성되던 즈음 가정은 재편성된다. 노동조건과 주거조건, 노동자의 이동, 아동 노동의 사용 같은 것들로 인해 점점 가족관계가 약화됐고, 가정의 구조가 무효화되어갔다. 사생아들, 버려진 아이들, 유아 살해 등도 날로 늘어가던 즈음이다. 행정당국은 노동자들이 세대를 이뤄 살 수 있는 방법을 강구했고, 고용주들은 재가정화를 위해 노동자 주택단지를 건설하기도 했다. 몇몇 도시 작업장에서는 정식으로 결혼하지 않고 거처를 갖는 사람들을 배제했다. 이는 대단히 규율적인 조치들이었다. 19세기 내내 이뤄진 재가정화는 가정이 규율체계를 확고한 것으로 만들기 위한 요소임을 보여준다. 고아원 등 사회복지 시설도 가정을 대체하거나 가정이 없어도 기능하는 일종의 규율조직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바로 가정을 규율적으로 대체하는 이런 조직들에서 정신의학, 정신병리학, 정신사회학, 정신분석학 등의 기능이 출현하는 것을 볼 수 있다. 학교 규율 내부에서는 교육 심리학이, 직장 규율 내부에서는 노동심리학이, 감옥 규율 내부에서는 범죄학이, 정신의학과 정신요양원의 규율에서는 정신병리학이 출현하게 된다. 심리학의 담론 중에서도 ‘가정의 담론’에 가장 가까운 것, 즉 정신분석학이 20세기 중반 이래로 모든 규율제도를 분석할 수 있는 진실의 담론으로서 기능하게 된다. 정신의학의 담론과 가정의 담론이 어떻게 연결되는지 좀더 살펴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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