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없이는 존재하지 않는 세상> 20240213 발제_아라차
마음의 물리적 기원을 찾아서
양자역학으로 마음-정신/의식-이 어떻게 출현했는지 알 수 있을까. 양자물리학자 카를로 로벨리는 양자역학이 이에 대해 직접적인 해답을 주진 않는다고 말한다. 그러나 양자의 발견으로 물리적 세계와 물질에 대한 우리의 개념이 바뀌었기 때문에 간접적으로 뭔가 가르쳐 줄 수 있을 것이라 낙관한다. 이미 출현한 마음으로 온갖 의미부여의 성을 쌓고 살아가는 인간은 회귀적인 방법으로 마음의 원류를 추론할 수 있을 뿐이다. 인간은 의미의 세계에 살고 있다. 순전히 물리적인 측면에서 의미의 세계란 무엇일까? 로벨리는 ‘정보’와 ‘진화’라는 개념을 통해 이에 대한 답에 다가가고자 한다.
클로드 섀넌의 정보이론에는 ‘상대적 정보’라는 개념이 있다. 하나의 플라스틱 조각에 붙어 있는 동전의 뒷면은 상관관계가 있다. 두 동전은 ‘서로의 뒷면에 대한 정보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상대적 정보’라는 개념은 이처럼 물리적 개념으로, 양자 얽힘 구조를 고려하면 물리적 세계를 설명하는 핵심 개념이다. 상대적 정보는 세계를 구성하는 상호작용들의 직접적인 귀결인 셈이다. 또 생물학적 ‘진화’의 발견으로, 생물권이 생명의 지속을 위해 유용한 구조와 과정으로 이루어져 있음을 알게 되었다. 변이와 자연선택의 방식으로 생물학적 구조가 계속 진화하고 있는 것이다.
정보는 생물학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예를 들어 DNA 분자는 정보를 암호화해 전달한다. 유기체의 내부와 외부 사이에는 생존과 번식에 유리한 상관관계가 있다. 나의 시각계가 주변 환경을 뇌의 신경 과정과 연관시키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위험에 대비할 수 있다. 만약 이 상관관계가 없거나 적절하지 않으면 나는 위험에 처하거나 죽게 된다. 이는 생존과 관련된 물리적 상관관계다. 이러한 유관한 상관관계의 존재로부터 의미 개념의 물리적 원천을 찾을 수 있다.
물론 우리는 일반적으로 생존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다양한 맥락에서 ‘의미’라는 말을 하고 산다. 시를 읽는다고 해서 생존이나 번식 확률이 높아지진 않는다. 생존과 관련된 정보로 직접 환원할 수는 없지만 의미의 풍부한 스펙트럼은 물리적 뿌리를 가진 무언가로부터 시작되어 진화했다. 정보라는 개념은 정신적 세계의 의미와 물리학 사이의 사슬 전체는 아니겠지만 첫 번째 고리가 될 수 있다.
우리는 양자역학을 통해 물리적 세계의 본질을 상관관계의 네트워크로 이해할 수 있게 됐다. 즉 상호적인 정보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는 내부에서 1인칭으로 정신 활동을 경험하고, 물리적 세계는 외부에서 기술한다고 생각해 왔다. 그러나 세계가 양자역학에서 말하는 것처럼 관계적이라면 세계를 외부에서 바라본 기술은 존재하지 않는다. 가능한 세계의 기술은 모두 내부로부터 나온 것이다. 오직 서로를 비추는 부분적이고 내부적인 관점들만이 존재할 뿐이다. 세계는 관점들의 상호반영인 것. 관점을 다 버리고서는 사실의 총체를 구성할 수 없다.
최신 신경과학에서 발견한 중요한 사실이 하나 있다. 대부분의 신호가 눈에서 뇌로 이동하는 것이 아니라 뇌에서 눈으로 이동한다는 사실. 뇌는 이미 알고 있는 것을 바탕으로 예견된 상을 만들고 예상했던 것과 다른 것이 감지될 때만 뇌로 신호를 보낸다. 예상과 불일치한 정보만 전달하는 것. 이미 알고 있는 것을 또 보내면 에너지가 낭비되기 때문에 아주 적은 에너지로 상을 만드는 방법으로 진화한 것이다. 이 사실은 우리가 보는 것과 세상 사이의 관계에 대해 뭔가를 말해 준다. 우리가 주변을 둘러볼 때 우리는 실제로 ‘관찰’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이미 알고 있는 것을 바탕으로 세상의 이미지를 만들고, 무의식적으로 불일치를 탐지하여 필요한 경우 수정하는 것이다.
인간의 모든 지식은 이러한 방식으로 만들어졌다. 불일치에 대처하면서 현실을 더 잘 읽어내려고 노력해 왔다. 어떤 불일치는 우리가 세계를 생각하는 방식의 개념적 문법 자체를 건드렸다. 양자역학이 그런 경우다. 우리는 이제 세계가 사물로 이루어져 있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세상의 구체성은 녹아내렸다. 현실은 거울들의 놀이 속에서 풀어헤쳐져 버렸다. 기초물리학을 끈기 있게 연구해온 결과가 이런 실체성의 해체라니.
실재는 상호작용의 그물망을 짜는 사건들로 가장 잘 묘사될 수 있다. ‘개체’는 이 그물망의 일시적인 매듭에 불과하다. 개체의 속성은 이러한 상호작용이 일어나는 순간에만 결정되며, 다른 것들과의 관계 속에서만 결정된다. 사물은 다른 사물 속에 비친 것일 뿐이다. 스스로 완전히 독립적이고 완전히 자유롭다고 믿었던 자아조차도, 결국 네트워크들의 네트워크 속의 잔물결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실체없이 파편화된 세계.” 현재로서는 세계와 가장 잘 어우러지는 의미부여이자 이 책의 결론.
당황하셨어요? 자, 기운을 내세요. 뭔가 새로운 불일치를 향해 나아가는 수밖에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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