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상의학의 탄생》 서론, 1. 공간화와 분류하기, 2. 정치적 의식 푸코는 서문에서 이 책이 공간과 언어와 죽음의 문제를 다룬다고 썼다. 푸코가 보기에 의학이란 공간과 언어와 죽음의 문제이며, 이는 곧 시선의 문제였다. 푸코는 사물과 개념의 영속성을 믿지 않는다. 모든 존재는 역사적이다. ‘인간’도 푸코에게는 역사적 존재이며, ‘의학’ 역시 마찬가지다. 푸코는 근대에 ‘의학’이 진보했다고 말하지 않는다. 다만 ‘의학’이 질병을 다루는 방식을 바꾸면서 의학 지식의 구조가 변형되었다고 말한다. 어떻게 이런 변화가 일어났을까? 푸코가 변화의 지점으로 꼽는 시기는 프랑스혁명(1789~)이 시작된 18세기 말이다. 1장에서 푸코는 질병을 배치하는 의학의 방식으로 공간화와 분류하기를 꼽는다. 질병의 근원과 배치를 결정하는 공간 중 하나는 인간의 육체였다. 질병의 공간화는 언어에서도 이루어졌다. 해부학의 언어 공간이 시선의 권력을 바탕으로 ‘질병의 배치’를 수행하면서 분류하기의 의학이 임상해부학을 가능하게 했다. 18세기 말 이전 의학의 규칙은 분류하기였다. 분류하기는 또한 공간화를 전제로 했다. 분류하기와 공간화를 통해 병리학적 표가 만들어졌는데, 이 표에서는 인간과 질병의 관계를 부각하기보다는 질병 간의 관계와 체계를 더 중요시했다. 당시 의학은 환자를 각 질병의 관계를 포착하게 해 주는 존재로 보았다. 여기서 공간화는 질병을 배열하고 서열화하면서 무엇을 질병으로 인식해야 하는가를 결정하는 중요한 자리였다. 공간화는 몇 가지 원칙 속에서 이루어진다. 18세기 의사들에게 공간화는 철학적 ‘지식’이 아닌 ‘역사적’ 경험으로 이루어졌다. 철학적 지식에 속하지 못했던 경험은 의학적 시선을 통해 ‘지식’의 형태로 변모했다. 유추의 방법으로 이루어지는 분류하기와 공간화는 유사성을 중요하게 취급한다. 유사성은 질병에 질서를 부여하는데, 이 질서는 우리가 삶에서 확인하는 합리성과 유사하기에 의학이 합리적이라고 느끼게 된다. 의사가 환자에게서 병리학적 사실을 알아내기 위해서는 특이성도 중요하다. 의사는 환자를 관찰하여 특이성을 추출하는데, 역설적으로 환자는 자신의 질병에 대해 외부적 존재에 불과하다. 분류하기의 의학은 질병의 치료보다는 질병의 종류와 성격을 분류하여 질병의 본질을 부각하는 데 집중한다. 분류하기는 ‘합리적’이고 선명해 보이는 의학 지식을 가능하게 하며, 동시에 비밀을 벗겨내는 방식으로 의학적 시선을 구성한다. 인간의 육체 역시 공간화의 중요한 영역이다. 질병과 유기체의 관계는 중요하지만, 인간 육체는 질병이 시작되는 공간일 뿐이다. 이 육체에서 질병의 질적인 요인이 드러난다. 18세기까지 육체를 관찰하는 의사의 시선은 증상의 빈도나 주기가 아니라, 한 질병과 다른 질병이 구분되는 특성에 주목했다. 의사는 자의적 경험에 근거하여 예리한 시선으로 질병의 변화를 포착하려 애쓰며 환자를 개별적인 사례로 받아들였다. 언어의 공간이 환자를 유사성으로 구분하고 육체라는 공간에서 개별성이 중요해진다면, 사회라는 공간에서는 질병에 경계가 생기고 의학적 투자의 대상이 된다. 지역과 계급은 빈곤과 노동 등 삶의 여러 조건과 맞물려 질병을 변형시킨다. 사회적 공간과 어울리지 않았던 질병은 이 제3의 공간화를 통해 합리적인 질서 아래 배열되기 시작한다. ‘건강’이 희소한 자원이 되기 시작하면서 부르주아 사회에는 점차 질병이 늘어난다. 문명과 함께 병원이라는 사회적 공간이 나타나고 의사의 역할에 대한 고전적인 논쟁도 계속된다. 논쟁과 동시에 질병과 빈곤의 순환이 사회적 문제로 부상한다. 이제 환자는 더 이상 가정에서 의사를 기다리지 않고 개방된 공간인 병원에서 의사를 만나게 된다. 이런 의학 정책을 일관되게 포괄적으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국가 차원의 움직임이 필요하다. 의사 자격 도입과 통제에서 볼 수 있듯 18세기 의학은 국가 차원의 구조 안에서 변화한다. 이런 변화는 18세기 말 전염병을 위한 새로운 의학적 조치에서 두드러진다. 그 이전 의사들이 개인의 질병에만 관심을 가졌다면, 이제 행정감독관의 관리 아래 의사들은 질병의 흐름을 파악하기 위한 체계를 만들고 운영해야 한다. 전염병 예방책은 먹고 입고 생활하는 전반의 규제와 권고를 포함하고, 경찰력에 의한 감시가 의학적 조치를 뒷받침했다. 지역주민의 건강은 검역감시관의 행정업무에 포함되었고, 비용 일체는 국가가 부담한다. 18세기 말 프랑스에서는 국가 차원에서 통제하는 의학의 중심에 왕립의학회가 있었다. 이 단체는 오래전부터 존재해 왔던 대학의 의학제도와 충돌을 일으킨다. 전염병 관리에 관련된 자료는 프랑스 혁명기와 그 이후 의료체계 개혁의 기반이 되었고, 새로운 의학적 시선은 임상의학을 낳았다. 푸코는 이 과정을 새로운 ‘지식 총체화’ 방법으로 설명한다. 의학 지식이라는 폐쇄된 지식은 더 개방되고 무한하게 연장되기 시작한다. 푸코는 의학적 공간이 사회적 영역과 맞물리면서 혁명기에 의학과 관련된 두 가지 신화가 생겨났다고 본다. 하나는 국가를 종교 대체제로 여기며 육체를 다루는 사제처럼 의사를 보는 신화이고, 다른 하나는 질병 자체를 없애겠다는 유토피아적 신화이다. 두 신화는 상반되지만, 어느 쪽이든 국가 차원의 의료 공공성 강화로 이어진다. 또 이 신화들은 의사의 역할을 개인의 질병 치료에서 정치적 차원으로도 확장한다.
이제 의학의 범위는 건강한 사람을 관리하는 영역으로도 확장되는데, 이 건강을 범주화하기 위해 ‘정상’이라는 이상이 작동한다. 인간을 다루는 지식이 된 의학은 ‘건강’과 ‘정상’을 결정할 힘을 발휘하기 시작한다. 푸코는 19세기부터 의학이 ‘건강’보다 ‘정상’의 문제에 더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고 지적한다. 인간과학은 생물학과 확장된 의학을 통해 개인의 건강을 넘어 사회적 차원의 ‘정상’ 문제를 다루기 시작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