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읽기] <자신의 존재에 대해 사과하지 말 것> 3장 완벽함에 집착하지 않는 법_0312발제_아라차
무질서를 수용하는 것이 최적의 과학이다
며칠 전 남편이 ‘자질구레함’을 샀다. 모든 자질구레한 것들을 담아놓을 서랍이다. 덩어리가 큰 가구나 물건은 정리가 쉬운데 자잘한 물건들은 어떻게 정리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하더니 일명 ‘자질구레함’을 구입한 것. 남편의 작업실은 이제 자질구레한 것들이 모두 정리되고 깔끔해졌을까? 아니다. 여전히 자질구레한 것들은 남아 있고 큰 물건만 하나 늘었다.(자질구레함이 꽉 차 있다는 사실은 덤.)
“개인의 질서 감각은 단순하지도 모호하지도 않고, 쉽게 흔들리지도 않는다”고 한다. 각자가 자신만의 “질서 있는 무질서” 감각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질서에 대한 감각 차이를 이해하지 않으면 집에서도, 직장에서도 갈등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다행히 우리 부부는 서로의 자질구레함을 어느 정도 용인하고 있다.
이번 장에서 신경다양인 과학자인 저자는 “어느 정도의 무질서는 필연적”임을 열역학으로 설명한다. 열역학은 고립계에서 엔트로피(무질서)가 항상 증가한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가만히 두면 방은 어질러지고, 벽은 무너지고, 페인트칠은 벗겨진다. 무질서로 흐르는 자연의 방향을 바꿔 질서를 유지하려면 에너지를 써야 한다. 반복해서 청소하고 벽을 다시 세우고 페인트칠을 새로 해야 한다. 질서를 유지하는 일, 청소하고 정리정돈하는 일은 자연의 법칙을 거스르는 일인 셈이다.
질서 감각이 더 완벽할수록 열역학을 거스르는 에너지를 더 많이 소모해야 한다. 하지만 우리가 가지고 있는 에너지가 한정적이라는 점을 생각하자. 질서에 대한 현실적인 기대 수준을 낮추는 것도 방법이다. 그런 다음 우선 순위를 선택해야 한다. 신경다양인인 저자에게는 이해하는 것만큼 쉬운 일이 아니었던 것 같다. “나는 무질서의 필연성과 싸울 뿐만 아니라, 질서를 대변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에 관한 스스로의 다층적 관점과도 전투를 치르는 중이다. 나는 모든 선택과 혼란에, 보이지 않는 내 선호도와 타인의 선호도와의 연관성에 기진맥진해졌다.”(95p)
열역학과 달리 우리의 삶은 고립계가 아니다. 각자의 질서 감각과 선호도가 있다. 조화로운 관계를 바란다면 주변 사람들이 세계를 어떻게 보는지, 그들의 질서 감각이 내 질서 감각과 얼마나 다른지에 더 많이 공감해야 한다(97p). 우리는 자신과 주변 사람들의 질서 감각이 충돌하는 상황과 계속해서 마주친다. 당신은 언제 타협하고 언제 자신의 질서를 고수할지 선택해야 한다(99p).
열역학적으로 선호되는 방식으로 산다는 것은 올바른 타협에 관한 문제라고 저자는 말한다. 자신만의 질서 감각을 이해해야 하며 어떻게 되기를 바라는지 알아야 한다. 그런 뒤에 거기서 기꺼이 벗어나야 한다. 타인이 세계를 바라보는 관점에 공감해야 하며, 당신 자신의 욕구를 포기하지 않은 채 타협해야 한다. 완벽함이 얼마나 불리한지 깨닫는 것도 중요하다. 무질서를 수용하고 즐기는 것이 곧 살아있음의 정의다.
우리 주변의 질서와 무질서를 탐색하는 데 도움을 되는 중요한 개념이 하나 더 있다. ‘평형’이다. 평형은 화학반응의 정반응과 역반응이 같은 속도로 일어나서 계의 전체 상태가 더 변화하지 않는 균형에 도달한 상태다. 열역학 법칙은 모든 고립계가 도달하려는 상태가 평형이라고 알려준다. 인간의 몸이 평형과 가장 비슷해지는 상태는 항상성으로, 이는 체온부터 수분량, 무기질 함량, 혈당 농도까지 무리 몸속 환경을 일정한 상태로 유지하도록 조절하는 일련의 과정이다.
항상성은 완전한 평형이 아니다. 과학책에서는 우리 몸이 주변 환경과 최종적인 평형에 이르는 상태는 죽음이라고 했다. 평형은 궁극적으로 인간의 필멸을 정의한다. 특이하게도 성취할 수 없는 치명적인 것을 추구하며 이를 통해 열망하고 성장하려는 것이 인간이다(102p). 항상성을 유지하다 완전한 평형에 이르게 되는 과정이 우리의 삶이다. 평형을 이룰 때까지 무질서의 향연을 수용하며 즐기는 것이 최적의 과학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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