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상의학의 탄생》 5. 병원의 교훈, 6. 질병의 징후와 증상들 이 책에서 푸코는 프랑스혁명 초기의 의료정책과 맞물린 의학의 변형 과정을 상세하게 다루고 있다. 근대 이전부터 지식으로 전수되던 의학적 지식은 유기체의 신체나 질병의 치료와 무관한 경우가 많았다. 이 의학적 지식과 별개로 실제 치료 행위를 하던 이들이 각자 의학적 경험을 구성하거나 전수했다. 근대 이전에 의학적 지식과 의학적 경험은 의학 안에서 차지하는 중요도가 달랐고, 함께 만나는 접점도 드물었다. 근대에 오면서 의학적 지식과 의학적 경험이 의학 안에서 차지하는 비중에 변화가 생겼고, 빈민들을 수용하는 병원이나 구호소의 형태로 각 영역이 만나는 접점이 생겨나기도 했다. 점차 의학적 경험은 임상의학의 형태로 의학 안에 자리 잡고, 의과대학의 교육은 병원의 치료와 연계되기 시작한다. 혁명 초기 공화정부는 국민 보건이라는 명분으로 의료 개혁을 위해 노력하는데, 이 과정은 의학 내부의 변화 과정과 시기가 맞물렸다. 푸코는 이 시기 의학과 의료 제도의 변화를 단순히 제도가 학문을 변화시켰다는 식으로 설명하지 않는다. 제도의 변화와 학문의 변화는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굉장히 역동적인 방식으로 진행된다. 프랑스혁명이 수많은 급진적 사건과 반동적 사건을 겪으며 진행되듯 의학의 변화 역시 일사불란한 방식으로 진행되지 않는다. 다만 이 복잡한 사건들 속에서 푸코는 지식과 경험이 맺는 관계를 포착하려 애쓴다. 진리의 형태가 변화함에 따라 18세기 교육학은 이전과 달리 인간의 사고 표현과 이해에 관심을 가지게 된다.(123쪽) 이제 인간은 진리를 만들고 증명하고 수정하며, 진리의 탄생에 대해 말해야 한다. 의학적 지식도 마찬가지다. 여기서 진리는 낡은 지식을 통해 만들어지지 않는다. 지식이 많을수록 무지가 되풀이될 뿐이며, 진리의 탄생에 다가가도록 만드는 힘은 순수한 시선으로 이해된다. 이 시선은 계몽의 빛과 함께한다. 테르미도르 반동 이후 지식인과 귀족들은 특권적 의학지식을 다시 등장시키려 하지만, 새로운 의학은 구체제의 자원까지 활용하며 더욱 체계화된다. 의학적 경험은 교육제도 안에 자리 잡게 되고, 임상의학이 구체제의 의사들에게도 새로운 시각을 제공하기에 이른다.(131쪽) 새롭게 체계화된 의학의 진리에 대한 욕구가 의학적 제도나 학문적 구조, 성격을 결정할 수 있는 자유를 누리려면 임상의학이 필요하다. 혁명의 반동 속에서 구체제의 질서를 부활시키기 위해 진료소 체제가 다시 등장할 때도 임상의학의 중요성은 줄어들지 않았다. 대학에서 과거의 지식을 전수받는 일이 더 이상 진리에 다가가는 일로 여겨지지 않는 시대가 왔기 때문이다. 새로운 진리는 자연에 부합하는 진리였고, 의학은 자연이라는 대상에 개방되었다. 진료소 체제에서도 새로운 의학은 임상의학과 더불어 과학적 일관성과 사회적 유용성을 유지할 수 있었다.(135쪽) 한편 혁명과 전쟁 상황이 계속되면서 필요한 의사의 수는 계속 증가했다. 무자격 의사가 난립했고, 새로운 교육제도와 의사자격제도가 필요했다. 가장 효용이 큰 혁신 방법은 의학교육에서 임상의학을 강조하는 방법이었다. 학생들이 임상의학 강의를 듣고 시험을 치르게 되면서 의학적 지식과 의학적 경험은 처음으로 제도적인 합치를 이루었다. 변화는 의사라는 직업의 성격과 의사의 특권 범위를 결정하는 개혁으로도 이어졌다. 당시 자유주의 경제모델 안에서 의사자격에 제한을 가하는 일은, 의료행위 자체에 대한 통제가 아니라 의료행위의 생산자인 의사의 능력에 대한 제한의 차원으로 정당화되었다. 의학이 변화하면서 의학 내부에서 의료행위 주체를 서열화하는 기준도 달라졌다. 푸코는 이 서열화에서도 임상의학이 중요한 요인이 되리라는 점을 암시한다. 병원에서 이루어지는 임상은 단지 의학적 차원을 넘어 사회적 차원으로도 중요한 문제가 되어갔다. 특히 병원에서 진료와 교육이 동시에 이루어지는 상황에서 나타나는 윤리적 문제가 그러했다. 의사의 실험에 한계를 부여하는 테두리는 도덕적 의무감뿐이었다. 진료소의 체제에서 가난한 환자와 부자들은 일종의 계약 관계를 맺게 된다. 부자들이 베푸는 원조는 개인의 질병 치료를 넘어 질병에 대한 지식을 형성하는 데 도움이 된다. 부자들도 그 지식으로 도움을 받는다. 임상의학적 시선의 이면에는 계급 문제 역시 작동한다. 제도 안으로 도입된 의학적 경험(임상의학)은 과학의 권위를 통해 계몽의 빛과 만난다. 이 빛은 곧 지배하려는 권력의 시선과 연결된다. 임상의학과 함께 새롭게 구성된 의학적 시선은 의학의 관심 대상을 바꾸었다. 이제 의학은 질병의 개념이 아니라 질병을 인식하는 방법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다. 중요한 두 가지 요인은 질병의 증상과 징후이다. 병리학적 본질의 문제는 사라지고, 증상을 징후로 변화시키는 일이 남는다. 의학적 시선을 통해 증상은 징후가 된다. 의학은 모든 증상을 징후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과학적 지식의 언어이다. 의사들이 지향하는 진리란 이런 모습이다. 여기서 질병의 인식보다 중요한 문제는 질병을 언어로 설명하는 일이다. 대상을 기술하는 일이 곧 존재를 포착하는 일과 같다면, 의사들은 질병을 설명하면서 포착해야 했다. ‘보여진 존재’와 ‘말해진 존재’로 드러날 때만 질병은 진리 안에 존재할 수 있었다. 진리의 질서를 언어의 질서로 치환하는 일에는 위험이 도사린다. 자연과 일치하려던 의학의 흐름은 언어적 모델과 함께 철학적 분석과 유사해진다. 언어적 구성물로 세계를 이해할 수 있다고 믿는다면, 이때 세계는 언어적 구성물에 불과하다. 의학은 불확실한 지식을 다루는 학문이다. 과학 역시 불완전하다. 결점을 보완하기 위해 의학은 확률적 사고를 도입한다. 질병의 복잡성은 지식의 추상화에 의존하게 된다.
물론 추상화 역시 한계가 있다. 본질과 우연은 관찰로 구분되지 않는다. 임상의학은 변이를 배제해서는 안 되며, 재배치해야만 한다. 비정상 자체가 하나의 규칙이 될 수 있으며, 의학은 실패를 통해 자신을 형성해 간다. 이 의학적 조직원리는 철학에서 사용하던 귀납의 방식과 다르지 않다. 스스로 철학과 분리한 과학은 임상의학이라는 구체적 경험의 영역을 통해 과학이 여전히 철학과 연계되어 있음을 드러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