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읽기] <자신의 존재에 대해 사과하지 말 것> 0326 7장 발제_아라차
항공 드론샷으로 하는 여행지 광고를 믿지 맙시다
우리에겐 과거와 미래와 현재라는 시간 단위가 있다. 일년은 365일이고 하루는 24시간이다. 선험적으로 주어졌다(칸트)는 시간이라는 기본 인식이 없으면 우리는 사물을 인식할 수도, 타자와 소통할 수도 없다. 그러나 시간은 혼돈을 파악하기 위한 인간의 방편이었고, 편리를 위해 자르고 분류된 시간과 같은 개념은 과학적 사실과 조화롭지 못했다. 20세기 초에 이르러 아인슈타인은 시간이 멈춰있을 때와 움직일 때 다르다(특수상대성)고 했으며, 질량에 따라서도 느리거나 빨라진다(일반상대성)고 했다. 아인슈타인의 ‘시공간’ 개념은 시간과 공간이 분리된 채로 인식해 온 인간의 관념에 타격을 주었으나, 고정된 공간과 시간에 대한 인식 체계를 뒤집지는 못하고 있다. 우리는 여전히 특정한 공간 안에서 시간의 흐름을 맞으며 살아간다고 생각한다.
이런 질문을 해 본 적이 있는지 모르겠다(나만 했을 수도). 우리가 분리된 시간과 공간 개념으로 아무 문제없이 살아가는 이유는 무얼까. 아인슈타인의 과학 혁명이 뉴턴의 법칙을 넘어선 지가 100년이 넘었는데, 왜 아직도 근대 과학이 우리의 실생활을 지배하고 있는 걸까. 아마도 그것이 진화에 가장 용이했기 때문일 것이다. 인간이 현재 활용하고 있는 인식 체계는 지구라는 행성 규모와 빛의 속도에 인간의 질량이 적절히 적응한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태양에서 쏜 빛이 지구까지 도달하는 데는 8분의 시간이 걸린다. 우리가 지금 마주한 빛은 태양의 8분 전 상태다. 이 8분이라는 간격은 지구 상의 존재들에게 절대 시간이다. 규모가 달라지면 자연 법칙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우리가 뉴턴의 운동법칙으로 사물의 낙하지점을 파악하고 비행기의 운행을 예측할 수 있는 이유. 지구와 인간과 빛의 규모가 그때나 지금이나 같기 때문이다. 존재 형태가 바뀌면 인식 체계도 바뀔 것이다.
미디어에서 여행 프로그램이 나올 때, 항상 석연치 않은 장면이 있다. 바로 항공샷이다. 전체 여행지 풍경을 드론을 이용해 항공샷으로 찍어서 보여준다. 실상 여행지로 간다면 그런 장면을 목격할 수는 없다. 실제로 우리 눈에 들어오는 것은 미어터지는 인파 속에서 떠밀리며 겨우 비스무리한 사진 몇 장을 건져오는 것 뿐이다. 하늘 위에 떠서 지구를 내려다보는 것과 지구 안에서 낱개 인간으로 살아가는 일은 많이 다르다. 새 무리와 개미 무리들을 바라보는 것처럼 지구의 낱개 인간들이 줄지어 살아가는 모습을 보는 존재가 있다면, 인간들은 꽤나 질서 정연하고 획일적인 움직임을 보인다고 보고할 것이다. 이처럼 규모에 따라 퍼스펙티브가 달라진다.
자연법칙이 어쩌면 그렇게 딱딱 맞아떨어질까 감탄할 필요가 없다. 인간 규모에 맞는 법칙은 인간의 편의대로 만들어진 것이지 우주의 모든 존재들에게 통하는 건 아니다. 각각의 존재 상태들마다 자신에게 맞는 자연 법칙이 따로 있을 것이다. 물론 인간처럼 굳이 법칙을 만드는 존재들이 있다면 말이다. 확률과 통계가 과학으로 받아들여진 것은 그리 오래 전 일이 아니다. 과학은 정확하고 분명해야 했다. 그러다 근대 이후 클라우지우스와 볼츠만을 시작으로 과학자들은 인간보다 작은 규모, 작게는 분자 규모까지 내려가서 그 존재들의 움직임을 통계적으로 파악해서 확률값을 내기 시작했다. 분자 규모에서 파악하는 것이 더 정확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겠지만, 그 결과를 정확한 값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인간 규모에서 분자 규모를 바라보는 일은 존재의 ‘희미한’ 상태의 어림짐작에 불과하다. 그러나 인간에게는 그것만큼 정확한 판단 방법이 없다. 지구 위에서 해안선 그림을 그리는 것과 비슷하다. 멀리서 보면 해안선이 꽤나 분명한 선으로 보이지만 다가가면 해안선은 생각보다 복잡하고 삐뚤빼뚤하다.
이번 장을 읽으며 분자동역학에 대한 설명도, 양자물리학에 대한 설명도, 시간에 대한 개념도 뭐 하나 제대로 알게 되는 게 없는 것 같아 나름대로 이해한 내용을 옮겨보았다. 아무래도 이 책은 번역을 AI로 돌린 것 같다는 의심도 든다. 또한 다른 영역의 과학 분야에 대한 섣부른 이해가 독자들을 혼란스럽게 한다는 사실을 이 과학자는 알아야 할 것 같다. 이 책의 편집방향이 신경다양인에 대한 이해도, 과학에 대한 이해도 떨어뜨렸다는 것을 출판사가 알았으면 좋겠다. 한글 제목을 <자신의 존재에 대해 사과하지 말 것>으로 뽑은 것 자체가 항공샷으로 여행지 광고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낱개 인간 독자로서 아주 처참한 여행 경험을 하는 것 같다. 그래서 여행지에서 항공샷 배경 사진은 못 찍어도 같이 간 친구들과 재밌는 이야깃거리나 많이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여행 광고가, 여행지가 나를 만족시키지 못해도 친구들과의 추억은 스스로 만들 수 있는 것이니.
과학책을 읽은 이후 인간의 존재 형태와 인식 체계에 대한 이해가 많이 달라졌다. 모든 과학책이 다 유용한 것은 아니다. 자기 편이대로 과학 용어를 가져다 쓰는 경우도 많기 때문에 기본서에 대한 탐독은 필수다. 물론 글이 너무 어려워서 중도 포기한 것도 있고, 너무 왜곡해서 이상한 응용을 한 경우도 많이 본다. 그럼에도 AI와 함께 인간의 존재 방식이 달라져야 하는 이런 시기에 과학책에서 읽은 내용들은 도움이 많이 됐다. 시간이라는 개념에 얽매어 나를 잃어갈 때, 부동산과 주식에 매몰된 남들과 다른 선택을 하고 싶을 때, 하고 싶은 게 특별히 없고 목표 설정이 왜 그렇게 중요한지 잘 모르겠을 때, 나는 왜 이렇게 평범하고 후질까 괴로울 때. 인간이라는 규모와 질량, 행성의 운동과 시간과 빛에 대한 고찰은 ‘지금’을,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적잖은 지혜를 선사해 줄 것이다(나한테만 그랬을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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