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혁명의 구조》 10장 세계관의 변화로서의 혁명, 11장 혁명의 비가시성 책의 10장과 11장에서 토머스 쿤은 과학혁명에 대해 본격적으로 이야기한다. 과학혁명의 특수한 성격 탓에 과학혁명이 무엇인지 알아채기 어려울 때가 많다. 과학혁명의 시기에는 지배적 패러다임이 다른 패러다임으로 교체된다. 달을 별도의 행성으로 여기던 이들이 갑자기 달을 지구의 위성으로 보기 시작하는 식이다. 새로운 패러다임을 받아들인 과학자들은 이처럼 기존의 방식과 다른 방식으로 세계를 보기 시작한다. ‘보는’ 일은 우리의 이해와 달리 단순한 일이 아니다. 친숙한 대상을 ‘볼’ 때도 다른 방식을 적용하면 대상이 달리 ‘보이기’ 시작한다. 이 다르게 ‘보게’ 만드는 계기는 무엇일까. 토머스 쿤은, 과학자들이 같은 사물을 다르게 ‘보도록’ 하는 시각의 전환이 해석의 차이를 넘어선 무엇이라고 조심스럽게 말한다. 문제가 단지 해석의 차이라면 과학자들 사이에 고정된 데이터가 있어야 하며, 해석 또한 어떤 패러다임을 전제로 한다는 사실을 잊어선 안 된다. 과학자들이 새로운 패러다임을 채택하면 그들은 자신이 연구하던 대상을 새롭게 바라보게 되며, 그 대상이 변형되었음을 느낀다. 해석은 그 이후에 이루어진다. 새롭게 해석하여 패러다임이 변화하는 게 아니라 새로운 패러다임을 통해 새로운 해석이 가능하다. 해석은 패러다임을 명료화할 뿐 수정하지 못한다. 오히려 우리에게 변칙현상을 인지하게 하고 위기로 인도하는 존재는 정상과학이다. 정상과학은 돌발적이고 비구조적인 사건으로 마무리된다. 새로운 패러다임에 연결되는 방식은 해석보다는 직관이다. 물체의 낙하에 대한 아리스토텔레스와 갈릴레오의 의견 차이는 해석보다 직관의 차이에 가깝다. 두 사람은 각자 다른 방식으로 물체의 낙하를 경험한다. 토머스 쿤은 ‘경험’이 확고하고 중립적이라는 의견에 반대한다. 과학은 하나의 패러다임을 즉각적 경험에 결합하는 조작과 측정을 선별하며, 이 경험조차 패러다임에 의해 결정된다. 선별되지 않은 실험과 조작은 취급되지 않는다.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익숙한 사물을 보면 대상은 다른 존재가 된다. 패러다임은 순식간에 경험의 광대한 영역을 결정한다. 경험의 영역이 결정되고 나면 조작적 정의와 순수한 관찰언어에 대한 탐색이 시작된다. 이제 비로소 새로운 질문이 제기될 수 있다. 일정한 방식으로 세분화된 세계를 전제로 특정 질문이 가능해지며, 이 질문이 정상과학의 일부가 된다. 질문은 패러다임에 의존하며 패러다임 변화의 결과로 대답을 얻는다. 과학혁명으로 과학의 많은 부분이 대체되지만, 변화는 결코 총체적이지는 않다. 세계를 다르게 바라보게 되었다고 해서 실험실과 실험 도구와 실험 방식이 한꺼번에 바뀌지는 않는다. 그 이상의 변화가 필요하다. 기상학자로서 화학을 새롭게 해석하면서 화학혁명을 이끌었던 돌턴의 사례에서 새로운 패러다임의 성격을 또 하나 발견할 수 있다. 화학자들은 돌턴에게서 새로운 법칙이 아니라 화학을 수행하는 새로운 방식을 취했다. 토머스 쿤이 여러 번 강조하듯 자연을 하나의 패러다임에 맞추기는 어렵다.(241쪽) 이런 이유로 정상과학의 퍼즐들은 도전적 성격을 띠며, 패러다임 없이 수행된 측정은 결론에 이르기가 힘들다. 새롭게 이론을 받아들이면서 자연을 가공하는 작업도 함께 시작된다. 과학자들에게 이미 익숙한 듯 여겨지던 데이터를 이해하는 방식과 함께 데이터 자체도 변화된다. 이런 의미에서 과학혁명 이후 과학자들은 완전히 다른 세계에서 일하게 된다. 과학혁명의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과학혁명은 잘 드러나지 않는다. 혁명이 아니라 과학 지식을 더해주는 부가물로 간주되기도 한다. 토머스 쿤은 과학혁명의 존재와 의미를 체계적으로 위장시키는 권위 있는 원천으로 교과서와 대중과학 서적, 과학철학 저작을 꼽는다. 세 가지 범주는 모두 특정 패러다임에 관해 논의한다. 또한 이 세 원천은 과거 과학혁명의 안정화된 결과를 기록하면서, 당대의 정상과학 전통 기반을 드러낸다. 특히 교과서는 다른 문헌들에 수록될 지식의 근거이면서 정상과학 영속을 위한 교육적 수단이 된다. 따라서 교과서는 정상과학의 언어와 문제 구조, 기준이 바뀔 때마다 다시 쓰여야만 한다. 과학혁명은 교과서를 수정하도록 요청하는데, 수정작업을 통해 교과서는 혁명의 역할과 존재를 가려버린다. 교과서를 읽으며 우리는 과학혁명의 역사를 감각할 수 없다. 대신 과학 지식이 누적적이라고 오해하게 된다.
토머스 쿤은 교과서가 과학사를 직선적 혹은 누적적으로 보도록 요구하는 끈질긴 경향이 있음을 지적한다. 나아가 교과서는 과학이 한데 통합된 전문지식의 총체를 구성하는 발견과 별명을 통해 지금에 이르렀다고, 또 교과서 안에 포함된 정보인 사실, 개념, 법칙, 이론들을 과학자들이 만들어왔다고 믿게 만든다. 이런 교육은 과학의 성격과 발견, 발명에 대해 우리가 가지는 이미지를 결정한다. 그러니까 과학이 자연(현실)을 있는 그대로 설명하고 발견과 발명이 그 설명에 기여했다는 우리의 믿음이 이렇게 생겨났다는 말씀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