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이 권력과 기운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은 이미 익숙하여 진부한 내용이기도 하다. 음식이 되어 식탁에 오기까지의 모든 과정에서 그것들은 인간의 삶을 통제하고 변형시켰으며, 문화를 형성해 왔다. 음식은 인간 존재의 안과 옆에서 작동하는 행위소이자 공적인 결과를 낳는 유도자, 생산자이다. 저자는 이 장에서 음식이 배치의 참여자로서 생기적 물질 이론에 기여하는 바를 살피고 있다. 특정 지방질은 특정한 인간의 기분이나 정동적인 상태를 촉진한다. 이들은 서로 다른 신체에서 다른 방식으로 작동하며, 같은 신체 내에서라고 해도 다른 시간 다른 강도로 작용하는 효과들의 패턴을 만들어낸다. 이는 먹고 먹히는 복합체에서 작은 변화 하나가 패턴이나 기능에 상당한 분열을 불러오기 때문이다. 사람과 지방이 구성요소가 되는 배치는 비선형적 체계로 볼 수 있다. 종종 이미 존재하던 것에 작은 원인이 더해질 때, 그 원인의 진폭과 어떠한 공약수도 갖지 않는 극적인 결과가 만들어진다. 결과들은 원인들과 공명하기도 하고 반하기도 하는데 이에 추가된 임의의 요소들의 집합이 있을 경우에는 배치의 이질적인 요소들 사이의 상호적응을 통해 배치가 스스로 안정화되기도 한다. 특정 요소는 배치 내에 우연히 잘 배열될 수도 있고 그 요소의 권력은 전체 배치의 방향이나 기능을 전환시킬 수 있을 정도로 거대해질 수 있다. 그러한 특수한 효능을 갖는 요소를 ‘조작자’라고 하는데 이는 배치의 변환기라 할 수 있다. 몇몇 먹을 수 있는 것들은 배치의 변환기로서 행위할 수 있고 에너지 분배의 평형 상태를 불안정하게 만든다. 이는 배치를 자극시키거나 흥분시켜 거대한 결과로 이어질 때도 있다. 평생 과민성대장증후군을 앓아왔던 나는 불행히도 식탐이 많다. 내 의지(?)로 가리는 음식은 거의 없으나 몸은 가리는 음식이 많다. 특히 고기의 지방, 쇼트닝, 버터, 밀가루 등이다. 한 번 아프기 시작하면 한 달 넘게 앓을 때도 있다. 100만원이 훌쩍 넘는 한약부터 체력 보강에 좋다는 흑염소, 자라, 개고기 등을 정체도 모른 채, 그저 한약이라 알고 오랜 시간동안 약을 먹어왔지만 병은 낫지 않았다. 스트레스를 받거나 예민해질 때, 지속적으로 지방과 밀가루를 섭취하면 몸의 균형은 쉽게 깨졌다. 지금도 이 오랜 지병을 앓고 있고, 늘 경계하고 있다. 한 번 아프면 며칠간 환자 모드로 돌아가 굶거나 죽만을 먹어야 한다. 견디기 힘든 날이 이어지면 몸도 마음도 허기져간다. 이렇게 음식은 평생 내 삶을 지배해 왔다. 카스, 소로, 니체 등은 음식에 내재하는 생산적인 권력을 포착한다. 이러한 능력은 인간의 기획을 막거나 방해하는 부정적인 권력을 갖고 있으나, 무언가를 촉발하고 결과를 창조해내는 능동적인 힘 역시 갖고 있다. 인간과 비인간 신체들은 서로가 서로에게 반응하며 재물질화되고, 서로에게 권력을 행사한다. 그리고 이는 내부와 외부 사이에 경계가 모호해지며, 끊임없는 상호변형 과정으로 여겨진다. 아침에 먹은 쌀알이 소화된 입자의 모습은 저녁의 모습과 다르다. 그것들이 내 일부가 되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한다.
음식은 단순한 자원이나 수단이 아니다. 자기 스스로 변화하며 소산하는 물질로서 음식은 세상을 구성하는 중요한 참여자이다. 슬로푸드의 배치 역시 인간의 활동 너머로 확장시켜야 한다. 음식은 우리가 되어가는 것에 진입하여 그것들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신진대사, 인지, 도덕적 감수성을 포함하는 행위성 중 하나이다. 오늘 내가 오늘 더 포만감과 소화에 피로를 느끼는 이유는 아침부터 오후까지 틈틈이 야금야금 먹은 500g 정도의 떡 때문일 것이다. 음식은 우리의 하루를 좌지우지한다. 자꾸 하품이 나온다.... 내가 음식을 먹은걸까? 음식에게 먹힌걸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