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

제목[마오] 16장 & 에필로그 발제 :: 여전히 물음표, 아니 혼돈의 카오스2019-06-12 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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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물음표, 아니 혼돈의 카오스


2000년, 그해는 역사적인 해로 기억되지 않을까. 그해 6월 김대중은 평양공항에 내려 김정일을 만났다. 구내식당에서 밥을 먹으며 보았는데 마치 SF의 한 장면처럼 보였다. 김일성 사망 소식에 멋도 모르고 온 학교가 환호성을 치며 들썩인 것이 채 10년이 되지 않았으니. 


다음 달, 7월 나는 처음으로 중국 땅을 밟았다. 찌는듯한 무더위보다 더 인상 깊은 것은 처음 보는 회색 빛 세계의 낯선 모습이었다. 사람도 건물도 이상했다. 이국적이라는 말로는 도무지 담을 수 없는 어떤 이질감. 나는 종종 이것이 중국에 대한 공포감에서 비롯된 일종의 착시는 아닐까 질문해보곤 한다. 붉은 땅, 붉은 구호가 덕지덕지 적힌, 오색홍기가 펄럭이는 그 나라에 발을 디딘다는 것은 꽤 위험한 모험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처음으로 이방인이 되어본, 그것도 자유의 대한민국에서 뚝 떨어져 공산국가의 한 복판에 숨어 들어온 그때, 앞으로 내가 '중국'을 공부하라리라는 건 역시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그때의 경험이 몇 번의 변곡점을 거쳐 지금에 이르렀다. 여기서 이를 다 헤아릴 수는 없는 일이다. 여튼 결국 2019년, 어쩌다보니 마오쩌둥에까지 이르렀다. 이제 쉼표든 마침표든 찍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몇 해전부터 마오를 공부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급은 많이 되는데 실상 아는 것은 별로 없었다. 호기심을 부채질한 것은 몇몇 학자들의 영향 때문이었다. 예를 들어 <공자, 인간과 신화>를 쓴 크릴의 경우가 그렇다. 지금도 손꼽히는 공자에 대한 명저를 쓴 뒤(1949), 그는 뜬금없이 마오쩌둥을 연구한다.(1953) 한편 벤자민 슈워츠는 어떤가. 그는 1951년 <Chinese Communism and the Rise of Mao>를 썼다. 약 30년 뒤 그는 <중국고대사상의 세계>라는 명저를 남긴다. 이 낯선 연속성은 무엇일까? 동양철학이니 중국철학이니 하는 바닥에서는 마오쩌둥을 건드리지도 않는데.


한편 읽기 전부터 감각적인 매력을 느꼈던 까닭도 있다. 마오쩌둥이니 마오이즘이니 하는 말이 풍기는 위험성에 끌렸다. 금서는 독서를, 위험한 책은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기 마련이니. 지금도 그렇지만 위험성은 거꾸로 가능성의 다른 말처럼 여겨진다. 모든 실험은 위험하다고 말한다면 너무 진부한 말일까? 가능성이라는 이름으로 그를 두드린 데는 지난 10여 년간의 사회변화가 몰고 온 냉소주의, 기존 운동에 대한 절망감 등도 중요한 이유라 하겠다. 


실상 가장 중요한 이유는 중국을 이해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나에게 중국은 여전히 단편적인 설명이나 언어로는 포착되지 않는 불투명한 세계로 존재한다. 느리지만 빠르며, 단순하지만 복잡하고, 속물적이지만 순박하며, 폭압적이면서도 너그럽다. 어쨌든 중국은 저만의 길을 가고 있는데 그 길을 어떻게 묘사해야 할지 당최 설명할 말을 찾지 못한다는 당혹감. 


하여 필립 쇼트의 두꺼운 책으로 마오의 일대기를 읽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16장, 마오 역시 죽음을 맞는다. 16장은 문혁이후 마오의 죽음에 이르는 69년~76년까지의 사건을 다루고 있다. 굵직한 사건이 있으나 앞과 비교하면 소략한 편이다. 린뱌오의 의문 가득한 죽음, 장칭과 그를 둘러싼 급진파와 새로 부상한 덩샤오핑과의 정치 다툼, 그리고 그런 상황 속에서 용케 한쪽으로 굴러 떨어지지 않았던 영원한 조정자 - 이제는 자신의 공과를 조정해야 하는 - 저우언라이. 저자도 언급하듯 마오 말년의 세력 다툼은 이전에 있었던 것과 유사한 식으로 전개된다. 그런 까닭에 그리 흥미진진한 구석도 없었다. 


필립 쇼트의 말을 빌리면 이 모든 과정은 후계자를 세우는 과정에서 빚어진 정치적 참극이었으며, 한편으로는 마오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모순이 표출된 대립이었다. "바로 자신의 급진적인 '열망'과 국가의 미래가 더 예측 가능하고 덜 고통스러워야 한다는 절실한 '필요성' 사이에서 불안정한 균형을 유지하는 일이었다."(462) 균형은 쉽지 않았다. 무게 중심은 한때는 이쪽으로 한때는 저쪽으로 움직였으며 그 과정에서 몇몇 인물이 모습을 감추었다. 마오의 말을 빌리면 불행하게도 사람은 부추와 달라 잘린 목에서 새로 머리가 자라지는 않았다. 


마오 말년의 서술에 쇠락함을 느낀다면 주인공 마오가 노쇠한 까닭도 있겠지만 주변의 굵직한 인물들이 점차 모습을 감추었던 까닭이 크다고 해야겠다. 그와 동시에 마오는 점차 고립되어버렸다. 결국 전체적인 상황은 끊임없는 모순의 연속이었다. 마오와 가까울수록 멀어지는 운명을 맞았으며, 강한 권력을 얻을수록 어처구니없는 작은 사건에 휘말리기도 했다. 무엇보다 모순 덩어리는 변화를 위해 대립물을 끌어들이는 마오의 방법에 있었다. 


그런 면에서 린뱌오의 아들 린리궈의 평가는 일견 맞는 구석이 있지만 정확한 판단이라 보기는 힘들다. 마오는 음흉하기는 하나, 변덕스러운 인물은 아니었다. 일관성이 없다는 면에서 그는 평생 한결같은 모습을 보였다. 그는 늘 모순적인 인간이었다. 또한 그는 늘 어떤 흐름 속에 있는 인물이었다. 정태와 동태가 뒤섞인, 그러나 이 본질적인 모순이 어떤 변화와 흐름을 만든다는 것은 그의 생애 전반에 걸쳐 관찰할 수 있는 주요한 특징이다. 


아마도 이는 그가 스스로 말한 자신의 공적, 중국 수립과 문화혁명으로도 설명 가능할 테다. 중국이라는 하나의 근대국가를 수립했다는 면이 정태적인 특징이라면, 문화혁명이라는 대중의 움직임은 동태적인 특징이라 할 수 있다. 그런 면에서 이 둘, 국가 수립과 혁명의 이상은 실상 근본적으로 모순 속에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런 기묘함이 혁명으로 국가를 수립했다는 서사를 만들지 못하고, 국가가 혁명으로 스스로 혼돈에 빠지고 마는 결과를 낳았다. 이것이 '국가'가 기획한 '혁명'인 문화혁명의 주요한 특징 아닐지. 


이 모순은 어쨌든 81년 간단히 매듭지어졌다. 공칠과삼이라는 말로. 여기서 공적이란 전자를 가리키며 과오란 후자를 가리키는 것일 테다. 과연 마오에게 공칠과삼이라는 성적표를 내주었다면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아니, 둘 가운데 하나를 꼽으라면 무엇을 남겨두었을까? 이 질문은 마오를 읽는 독자에게도 동일하게 주어지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모든 해석은 편향을 내포하므로 어느 한 편에서 그를 읽을 수밖에 없다. 여전히 균형은 쉽지 않다.


공칠과삼이라는 성적표는 깔끔하다. 그러나 필립 쇼트는 여기에 만족하지 않는 것 같다. 뒤에 이어지는 에필로그를 참고하면 그는 '공칠'에 더 많은 말을 덧붙이고 싶은 것으로 보인다. 근대 국민국가의 꼴을 만든 마오를 어떻게 평가해야 하는가? 여기에 자연스럽게 따라붙는 질문이 있다. 그의 통치가 낳은 폭력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 적어도 저자는 마오를 스탈린 혹은 히틀러와 견주는 통상의 이해에 만족하지 않는다. 스탈린은 직접 숙청을 지시했으며, 히틀러는 직접 인종 청소를 추구했다. 그러나 마오의 통치로 죽은 인물 가운데 절대다수는 기근의 피해자였다. 나머지, 6백만에서 7백만, 이 역시 적은 숫자는 아니지만 필립 쇼트는 이들의 죽음을 '중국을 변화시키려는 마오의 서사시적 투쟁에서 발생한 잔여물, 혹은 파편'(506)이라 서술한다. 이처럼 필립 쇼트는 '과삼'에 조금은 너그럽다. 그래서일까? 마오의 혁명에 대한, 이상에 대한 깊이 있는 탐구가 잘 보이지 않는다. 


결국 그는 나아가 '과실치사'라는 표현까지 언급한다. 적어도 마오는 특정 인물이나 특정 인종을 없애려 하지 않았다. 마오는 생각을 문제 삼았다. 그것이 하나의 뚜렷한 사건으로 나타난 것이 문화혁명일 테다. 저자는 문화혁명이 이념적 열정이 과다 투여되어 오히려 무감각해진 결과를 낳았다고 말한다. 그의 말을 빌리면 유교의 속박에서는 벗어났지만 마오가 그린 붉은 미래는 '아무것도 잉태되지 않는 연옥'으로 밝혀지고 말았다.(508)


따라서 저자의 생각을 좇아가면 '공칠'의 유산이 무엇을 낳을까 하는 질문에 이른다. 수천 년 전 진시황은 전국을 통일하고 황제 제도를 만들었다. 그의 나라는 고작 십수 년을 가지 못했으나 그의 유산은 한나라라는 황금시대를 열었다. 수나라를 이어 당나라가 등장한 것도 마찬가지. 마오가 스스로를 진시황에 비유했다면 한나라의 문경지치나 당나라의 정관지치처럼 드디어 중국몽이 날개를 펼칠 것인가? '세 번째 황금시대'가 도래할 것인가? 


처음으로 돌아가자. 중국을 이해하기 위해 마오를 읽었으나 여전히 물음표는 지워지지 않았다. 다만 소득이 있다면 마오와 중국의 깊은 연관성을 확인했다는 점. 여기에 더해 기존의 언어, 가치관, 규범, 인식으로는 중국도 마오도 또렷하게 볼 수 없다는 점. 이렇게 흔들리며 나아가는 것도 하나의 길일 터. 이렇게 또 몇 걸음을 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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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짝 조금 고쳤습니다.

브런치에서도 읽을 수 있습니다.

https://brunch.co.kr/@zziraci/2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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