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생명을 유지하고 활동하기 위해서는 에너지가 필요하다. 탄수화물, 지방, 단백질이 그 에너지원이다. 여기에 미네랄까지 포함하면 우리 몸에 꼭 필요한 4대 영양소가 완성된다. 이 4대 영양소를 잘 활용하기 위한 영양소가 바로 비타민이다. 비타민은 에너지를 만들지는 못하지만, 우리 몸의 여러 기능을 조절한다. 우리 몸에서 필요로 하는 비타민의 양은 극히 적다. 그렇다고 비타민을 무시하면 안 된다. 여러 비타민 중에서 한 가지만 결핍되어도 건강에는 치명적이다. 지금까지 알려진 비타민은 13가지이고, 오늘의 주인공은 그중에서도 비타민B이다. 총 8가지의 비타민을 묶어 비타민B라 부른다. 비타민은 소량만 필요하지만, 대부분 우리 몸에서 만들어지지 않는다. 음식을 골고루 섭취하지 않는다면, 어떤 영양소보다 결핍되기 쉽다. 비타민 부족으로 생기는 무서운 병 중에서 각기병을 들 수 있다. 각기병은 비타민B₁이라 불리는 티아민 부족으로 생긴다. 각기병에 걸리면 심부전과 말초신경 장애로 다리가 마비되어 걷지 못하게 된다. 각기병은 근대화와 매우 관련이 깊은 병이다. 밀을 주식으로 삼는 서구보다 아시아에서 각기병이 심각했다. 서구에서 기계를 들여오면서 도정기술이 좋아진 시기와 각기병의 유행 시기가 맞물린다. 도정 기술이 좋지 않았던 과거에는 벼의 겉껍질을 어느 정도 섭취했는데, 백미만을 먹게 되면서 티아민이 부족해졌다. 밥과 김치를 함께 먹었던 조선에서는 마늘 안에 든 티아민 덕분에 각기병이 유행하지 않았지만, 일본에서는 개화기부터 큰 문젯거리였다. 처음에는 각기병의 원인이 세균인 줄 알았던 사람들도 점차 영양소의 문제임을 깨닫게 되었다. 당시 일본에는 육식 및 잡곡이나 현미 섭취에 대한 거부감이 있었다. 어떤 면에서 아시아의 근대는 흰쌀밥을 마음껏 먹는 일을 의미했다. 각기병에 시달리는 군인들을 치료하기 위해 억지로 밀가루와 잡곡을 먹이려고 카레라이스가 보급되기도 했다. 근대의 변화가 병을 불러왔다면, 병을 치료하는 법도 그 변화에서 찾을 수 있었다. 비타민B의 부족은 대체로 빈혈이나 피로 등의 증상을 불러온다. 리보플라빈이 결핍되면 구강염과 설염, 지루성 피부염과 피로, 빈혈이 나타난다. 나이아신의 부족은 피부염에서 시작되어 치매와 죽음으로 이어지고, 임신 중 엽산이 부족하면 신경관 결손 기형아를 낳을 위험이 증가한다. 시아노코발라민은 악성빈혈과 신경계 손상까지 불러온다. 우리 몸의 윤활유 역할을 하는 비타민B가 부족해지면, 피로는 점점 더 증폭되고 다른 장기까지 손상되어 생명을 위협한다.
언젠가부터 우리 현대인들은 ‘피로’라는 단어에 예민하게 반응하기 시작했다. 자기 몸에 산적한 피로가 해소되지 않음을 저마다 느끼기 때문이다. 근대는 우리에게 흰쌀밥을 원하는 만큼 먹도록 해 준 동시에 비타민B의 부족도 함께 가져다주었다. 쉼을 허락하지 않는 노동의 굴레와 어떻게 해도 해소되지 않을 극한의 피로 역시 마찬가지다. 흰쌀밥과 비타민B, 노동과 피로의 굴레가 어느새 서로 맞물려 끊어지지 않을 듯 보이는 사슬을 형성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