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철학사2》 제26장 현대 철학 개관, 제27장 근대성과 위기 20세기는 세계대전과 함께 시작되었다. 19세기 말 유럽에서 태어난 이들은 전쟁을 겪으며 성장했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제1차 세계대전(1014~1918)이 끝난 지 불과 20여 년 만에 더 큰 규모로 제2차 세계대전(1939~1945)이 벌어졌다는 점이다. 19세기 말에 태어나 첫 번째 전쟁을 겪은 이들은 인간의 이성을 의심하게 만드는 전쟁의 야만성에 경악했다. 그런 와중에 독일 나치즘의 등장과 같은 더욱 절망스러운 움직임들이 이어졌다. 당시 철학자를 포함한 지식인들은 인간이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다시 고민해야만 했다. 전쟁과 전쟁 사이의 시기를 살았던 이들의 회의와 절망을 조금이라도 상상해보지 않으면, 서양의 현대 철학을 이해하기는 어렵다. 영국의 경험주의와 계몽철학에서 영향을 받고 현대물리학과 논리학의 특징을 받아들인 논리실증주의는, 인간의 삶에서 비이성을 몰아내기 위한 철학자들의 새로운 움직임으로 볼 있다. 이들은 낡은 형이상학을 비판하고, 경험으로 검증되지 못하는 이론들이 인식에서 무의미하다고 주장했다. 논리실증주의자들은 파시즘에 반대하려고 했지만, 안타깝게도 이들의 반대 역시 합리적 논증과는 거리가 멀었다. 칼 포퍼는 논리실증주의의 성찰에 힘을 보태려고 했다. 언어의 논리성에 과학성을 부여하여 비이성을 비판하는 비판적 합리주의를 완성하려는 노력이었다. 포퍼는 사실과 정당화를 구분하고, 반증이 가능해야 과학적 진술이 성립함을 주장하였다. 합리적 토론과 이성에 큰 비중을 두는 포퍼의 주장에는 여전히 인간의 이성에 대한 신뢰가 전제되어 있었다. 정치의 과학화를 지향하는 포퍼는 모든 것이 동시에 변혁될 수 있다는 믿음을 거부하였다. 이 믿음이 권위주의와 연결될 수 있음을 경고하는데, 포퍼에게는 독단주의보다 관용과 리버럴리티가 중요했다. 비트겐슈타인은 철학의 전통에 대해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한다. 언어의 의미가 맥락에서 생긴다고 보는 비트겐슈타인은 일상언어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맥락을 고려하지 않으면 일상언어는 오용되는데, 고전적인 철학의 문제들이 이 언어의 오용에서 비롯되었다고 비트겐슈타인은 주장한다. 비트겐슈타인의 분석철학은 철학을 치료활동으로 바라보면서, 일정한 형태의 답을 제공하는 일과 결별한다. 여기서 철학은 하나의 실천이며, 주장을 내세우지 않은 채 언어적 매듭을 푸는 활동으로 이해된다. 단일한 학파로 보기는 힘들지만, 현상학도 중요하다. 현상학은 사건과 행위를 현상하는 대로 기술하려고 시도한다. 우주를 완전하게 포획하여 재구성하기 위해 실천적 활동(곡식 빻기, 편자 만들기)을 시도하는 현상학은 자연과학의 개념들만이 현실을 포착한다는 주장을 비판한다. 철학의 과학화 경향과 결별하려는 시도이지만, 현상학이 자연과학에 반대하지는 않는다. 현상학의 목적은 인간의 행위를 가능하게 하는 생활세계 내의 조건들을 발견하는 일이다. 현상학은 (신과 같은) 본질적 존재나 진보에 대한 믿음 없이 세계를 이해하고 해석하려는 노력이다. 드디어 서양철학사에 페미니즘이 등장했다. 프랑스 정부는 제1차 세계대전 이후에야 여성에게 참정권을 부여했다. 전쟁을 통해서 여성은 새로운 잠재적 노동력으로 인정받았다. 보부아르는 ‘제2의 성’으로 규정되었던 여성의 문제를 제기하면서, 평등을 주장했다. 이후 뤼스 이리가레는 차이 중심 페미니즘을 주장하면서, 보부아르의 평등 중심 페미니즘을 비판한다. 평등하지만 타자를 근본적으로 다른 존재로 인식하는 일은 현대 철학에서 점점 중요해졌다. 정체성이 핵심 주제로 떠오르면서 이제 ‘인간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보편적 답을 기대하기는 어렵게 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을 겪은 후 유럽 지식인들의 회의와 절망은 더욱 깊어졌다. 서양 근대철학의 출발점이었던 인식주체와 그 배경이었던 과학, 계몽, 진보, 이성이 모두 공격받았다. 앞다투어 근대성에 대한 회의와 비판이 쏟아졌다. 프랑크푸르트학파나 한나 아렌트처럼 파시즘의 위협을 피해 미국으로 옮겨간 철학자들은 더욱 전면적으로 근대성을 비판했다. 계몽과 혁명을 믿지 않는 시대가 도래했고, 비판과 함께 ‘해체’의 움직임도 나타났다. 정치를 새롭게 해석하려는 시도나 보편적 이성에 여전히 기대를 품는 입장들 역시 존재했다. 하이데거는 서양의 역사가 승리의 행진이 아니며, 근본적인 몰락으로 점철되었음을 인정했다. 이 몰락은 비본질적인 것들을 추구하려다 생긴 몰락이었고, 거기서 벗어나려면 변화가 필요했다. 실존주의자인 하이데거는 우리의 지식이 변화할 수 있음을 믿었다. 지식의 변화는 곧 우리 자신의 변화를 의미하기도 한다. 본질을 찾으려는 하이데거의 시도 역시 더욱 본질이 아닌 듯 보이는 대상을 향한다. 언어가 존재자의 존재방식을 드러낸다고 보는 하이데거는, 세계를 열어젖히는 언어를 통해 본질을 찾는다. 하이데거의 근대성 비판은 시적인 것을 통해 나타난다.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직전에 미국으로 망명한 한나 아렌트는 전체주의를 분석한다. 한나 아렌트는 전체주의를 통해서 20세기의 대중정치와 관료체계, ‘인간의 조건’을 탐색한다. 한나 아렌트가 보기에 근대의 대중적 인간은 새로운 독재 체제에 상응하는 존재이고, 정체성을 상실한 개인들은 자신들에게 새로운 목적과 정체성을 제공하는 지도자에게 매료된다. 노동으로 인간의 삶을 설명하려는 맑스를 비판한 아렌트는, 계급혁명보다 고대 그리스식 정치형태에 관심을 가진다. 이 정치형태는 소수가 활동하는 엘리트주의적 참여 민주주의에 가깝다. 데리다, 푸코, 로티로 이어지는 철학적 경향의 핵심은 ‘해체’이다. 데리다는 텍스트 내부의 균열을 탐색하는 방식의 독해를 하면서 텍스트와 글쓰기의 개념을 확대한다. 여기서 글쓰기는 이해의 토대를 허무는 일이며, 세계가 토대를 갖지 않음을 드러내는 일이다. 권력구조를 폭로하고 주변화된 이들에게 연대감을 보이는 푸코의 저작은 철학인 동시에 지성사이다. 인간을 사회적 구성물로 보는 푸코는 자율적인 개인이라는 인간 개념을 비판했다. 철학에 대한 비판과 해체에 몰두한 로티는 철학과 교수를 그만두었고, 철학적 주장 대신 담론을 제안하거나 암시하기만 했다.
하버마스는 ‘무엇이 이성적인가?’라는 문제에 집중하면서, 우리가 서로에 대해서 취할 수 있는 태도들을 고민했다. 하버마스는 합리성의 개선이라는 의미에서 체계상 합리화의 여지를 두고, 구성원들의 의사소통 능력을 향상하면서 합리성을 증대시킬 수 있다고 믿었다. 하버마스는 윤리적 상대주의와 윤리적 독단주의를 비판하면서 이성에 새로운 기대를 건다. 우리에게 남은 답은 이성적인 사람들 간에 이루어지는 ‘오류투성이의’ 토론뿐이다. 이 토론이 미덥지 않다고 다시 형이상학적 진리와 비합리적 결단에 기댈 수는 없지 않은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