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즘이라 말하고 우울 처방전이라 한다.
저자는 자신의 어머니가 우울증 환자로 일찍 세상을 뜨자 자신 또한 그 병이 유전될 것이라는 두려움에 잠기게 된다. 어린 나이는 아니지만 청소년기에 당한 이러한 경험은 평생 브라이언 딜런을 힘들게 했으며 자신에게 우울증이 찾아오자 오히려 안도감이 들 정도로 우울증에 잠기게 된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 병을 피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찾기 시작한다. 그가 좋아 했던 음악과 독서로 탈출구를 끊임없이 찾는 여정을 이 에세이즘에서 보여준다.
자신에게 우울증이라는 병을 유산으로 남긴 어머니를 제대로 애도 할 수 조차 없었던 그는 어머니의 죽음이 그닥 자신의 삶에서 끼친 영향이 미미했음을 말하고는 있지만 1997년 여름 파리에서 만난 롤랑 바르트의 (밝은 방)을 읽었을 때 자기 자신을 기만 했음을 알게된다. 이 책에서 바르트는 어머니를 잃은 뒤 옛날 사진들 사이에서 어머니를 찾아헤맨다. 그 만의 방식으로 충분한 애도를 표하는 '밝은 방'을 통해 딜런은 다른 누구도 아닌 내 삶, 내 상실과 어떤식으로든 연결 지어본 글은 그 글이 처음이었다고 고백한다. 즉 자신의 어머니가 비록 우울증이라는 병을 자신에게 남겼다는 원망과 두려움도 있었지만 사실 그 보다 더 큰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과 자신의 연약함을 인정하고 제대로 슬퍼할 수 있는 용기와 위안을 받게 되었다고 한다.
자신이 어머니를 닮아가고 있을 것이라는 공포 속에 자신의 우울증을 이해하기 위해 기울인 노력 끝에 저자는 어쩌면 자신도 글을 쓸수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까지 이르게 된다.
저자는 우울증 환자의 클리셰 중 하나는 이른바 '머리속의 안개'로, 유리덮개가 안개로 가득차 그 안개가 뇌 속으로 스며든 느낌이 예전과는 달리 생각의 한 방식일 수 있겠다고 여긴다. 즉 그 안개가 생각과는 정반대의 상태, 생각을 전혀 하지 못하는 상태로 느껴졌지만, 그것이 생각의 방식일 수도 있다면 또한 글쓰기의 한 방식일 수도 있을것이라는 생각에 이른다.
안개 그 자체를 가지고글을 써낼 수도 있지 않을까? 혼미함, 난잡함, 쇠잔함을 가지고도 글을 써낼 수 있지 않을까? 재난 즉 우울 그자체의 내부로부터 글을 쓸 수 있을 것 같다는 위안에 이르게 된다.
딜런은 자신의 독서 인생에서 어떤 시기에는 같은 에세이들, 같은 기사들을 되풀이해 읽었다고 한다. 미치지 않기 위해서, 읽지 않으면 미칠것 같아서. 마침내 밤에 홀로 최악을 상상하며. 두려워하던 때, 자신에게 관심을 가진 이들의 손이 닿지 않는 먼 곳에서, 생전 처음으로 자신이 의지했던 책들로 부터 순전하고 실질적인 위안을 얻었음을 인정한다.
위안을 얻고 싶다는 것 또한 책을 읽는 하나의 이유라는 사실을, 긴 세월 쌓인 증거에도 불구하고 절대로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그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고 고백한다. 책 말미에 '나의 이 우울한 에세이즘은, 그러니까 나라는 작가, 나라는인간의 편린들을 빠짐없이 엮어보고자 하는 이 에세이즘은, 그모든 것이 고독으로 인해 생겨난다는 생각에 의지해온 온 에세이즘 이다.' 그래서 이 책은 어렵다. 저자의 말 처럼 머리속의 안개를 썻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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