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클럽 자본 5 생명을 짜 넣는 노동》 1 인간과 꿀벌-합목적적 노동 2 죽은 것들을 살려내다-살아있는 노동 3 자본가의 통제 아래서-소외된 노동 4 요술의 성공, 마침내 탄생한 괴물-가치를 늘리는 노동 사실 마르크스가 여러 번 반복해서 말하는 노동도, 노동과정도 우리에게 낯선 개념은 아니다. 노동현장이나 작업장도 마찬가지로 우리에게 익숙한 공간이다. 그럼에도 외부의 시선, 낯선 시선으로 우리에게 익숙한 공간을 들여다보는 일이 필요함을 마르크스를 통해 다시 한번 깨닫게 된다. 철학자는 우리가 ‘보지 못한’ 것을 보게 해 준다기보다 우리가 이미 본 것을 ‘알아보게’ 한다. 바로 ‘포착’한 것의 ‘파악’이다. (106쪽) 그렇다고 그 파악이 쉽지만은 않다. 그랬다면 마르크스 같은 이들의 도움 없이 많은 노동자가 이미 파악했겠지. 경험으로 알고 감각으로 느끼는 일도 중요하지만, 그 앎과 느낌이 곧 이론적 지식으로 연결되지는 않는다. 마르크스가 유럽 여러 국가를 떠돌면서 박물관과 도서관에서 오랜 시간 고문서를 뒤져가며 《자본》이라는 책을 쓰려고 노력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자신의 생계비는커녕 담뱃값도 안 나오는 일이었음에도. 마르크스는 자본의 증식과정을 이론적으로 규명하려 한다. 노동현장의 열악함이나 노동자의 비참한 삶, 자본가의 탐욕을 조명하기 이전에 자본주의라는 메커니즘과 자본의 전제를 밝히려 애쓴다. 앞서 자본주의의 혈액순환이라 할 수 있는 유통과정을 여러 각도에서 자세히 살펴보고 화폐의 정체를 규명했듯이, 이번에는 노동과정을 살펴본다. 노동과정은 가치를 증식하여 자본주의에 영양을 공급하고 유지하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노동과정은 먼저 상품을 생산하는 과정인 동시에 자본가가 노동력을 구매하여 사용하는 과정이다. 마르크스가 여러 번 강조했듯 노동과 노동력은 다르다. 노동력은 어떤 대상을 보전하고 가치를 더해주는 능력이며, 자본가는 이 능력을 사용할 권리를 구매한다. 인간은 합목적적 노동을 하기에, 즉 자기 의사에 반하더라도 타인의 의지에 따라 노동할 수 있기에 이처럼 자기 노동력을 판매하는 일이 가능하다. 노동이 괴롭고 힘들거나 인간의 신체를 파괴할수록 합목적적 의지가 중요하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력을 판매하며 살아가는 노동자들이 생산수단, 노동의 도구를 증오하거나 노동 자체를 혐오하게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노동자는 연명하기 위해 노동력을 판매하면서도 노동이 자기 생명력을 고갈시킨다는 사실을 경험과 감각으로 안다. 마르크스는 이 앎을 더 논리적 형태로 전개해 나간다. 노동자가 노동하는 데 필요한 노동수단이나 도구들도 자연물이 아닌 상품이다. 누군가가 노동으로 그 상품을 만들었다. 노동자는 노동에 참여하면서 노동대상과 자기 자신을 모두 변형시키는데. 그 과정에서 노동대상에 노동자의 노동이 응고된 상태로 담기게 된다. 결국 노동자는 노동과정에서 과거 다른 노동자들의 흔적, 즉 응고된 노동을 만나게 된다. 새로운 노동은 이 과거의 노동을 다시 녹여 살려내면서 가치를 더한다. 마르크스의 말대로라면 우리는 노동과정에서 과거 노동자의 흔적, 노동의 역사와 마주하게 된다. 이 노동의 역사를 마주하면서 살려내는 감격스러운 일을 하면서도 우리는 왜 큰 보람을 느끼지도 못하고, 때로는 불행하다고 느낄까? 바로 노동의 합목적성 때문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우리가 원해서, 원하는 방식으로 일하는 게 아니라 자본가라는 타인의 의지에 따라 일하기 때문이다. 마르크스는 이 불행을 ‘소외’라고 불렀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적 생산과정이 노동과정과 가치형성과정의 통일이라고 설명한다. 가치형성과정은 다시 ‘단순한 가치형성과정’과 ‘가치증식과정’으로 나뉜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노동과정에서 자본가가 노동력의 가치만큼만 사용한다면, 잉여가치는 생겨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자본가는 노동력을 사용할 권리를 임대한 사람으로서 자신의 통제권을 아주 효율적으로 사용하면서, 노동력 안에 있는 가치를 짜낸다. 이제 우리는 자본주의에서 가치가 증식되는 과정, 화폐가 자본으로 전화하는 과정의 비밀을 밝혀냈다. 이 과정은 노동력이 거래되어 사용되는 유통과정, 노동력을 통한 생산과정에서 일어났다. 자본주의에서 잉여가치는 불법적 노동착취로 나타나지 않는다. 그것은 합법의 영역에 있으며, 마르크스에 따르면 ‘법칙의 산물’(102쪽)이다. 자본가는 이 법칙을 몰라도, 경험이나 감각으로 자신이 어떻게 이윤을 극대화할 수 있는지를 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자는 상품에 둘러싸여 살아간다. 노동과정에서 다른 노동자가 만드는 상품을 도구 삼아 상품 생산에 참여하고, 일상에서는 수많은 상품을 소비하면서 살아간다. 그 상품들에는 모두 다른 노동자의 목소리, 노동의 역사가 스며있다. 달리 말하면 노동자들은 상품을 통해 서로 연결된다. 한편으로 안타깝게도 우리는 노동에 참여할수록 노동의 역사를 알아볼 수 없게 되며, 수많은 노동자의 목소리에도 무감각해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