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심조룡 금역 (하) 38.事類~41.指瑕. "날개가 없어도어디든 날아갈수 있는것은 언어이며, 뿌리가 없어도 단단하게 되는것은 감정이다." < 관자ㆍ계편 > 사류에서 지하까지 네개의 항목은 글을 지을때 가장 활용되고 평가 또한 분명하게 할 수 있을 내용인 것 같다 事類는 사례를 원용해 文義를 증명하거나 고사를 인용해 지금의 의미를 증명하는 것으로 사례가 있으면 문장은 구체적, 사실적, 생동적이게 되어 사람들을 끌어들일 수 있다. 이때 引事와 引言을 활용하지 못하고 단지 자신의 말만 한다면 문장은 빈약해진다. 이런 실력을 쌓기 위해서는 오로지 학문과 경력 뿐만 아니라 선천적으로 부여 받은 재능이 더해야 하지만 실제로는 학문까지 포함하는 생활경력의 풍부함, 창작기교의 숙련과정과 장기간에 걸친창작 실천과정에서 배양된다고 한다. 이런 引事와 引言을 통해 자기의 논점을 증명할 수 있어야 명확한 인용이자 휼륭한 인용이라 할 수 있다. 작가 자신의 의견을 가지지 못하면 다른 사람의 의견을 긁어모아 문장을 쓰게 된다. 사류는 어떻게 보면 글에서 가장 많이 보이고 중국고전의 특징의 하나인 것 같다. 글을 짓기 의해 즉 문장에는 학문도 필요하고 하늘로부터 재능도 부여 받아야한다. 재능이 주재하고 학문이 보좌하는바 이런 작품이 文采를 지니게 될 때 한 시대의 영웅이 될 수 있다. 이런 명확한 인용의 근거로 경전, 경서가 중요한 위치를 점하거 되고 그 인용이 적절하다고 판단되면 작자 자신의 입 안에서 나온 말과 다르지 않다는 평가를 받게된다. 자신의 글의 논거로서 다는 사람의 사례를 운용 함에서 브라이언 딜런의 에세이즘의 목록 편과 비교하게 되었다. < 練字>에서는 창작에서의 문자 운용을 말했다. 유협은 문자의 난이는 시대와 관계가 있다는것을 명확하게 지적 한다. 즉 시대와 함께 변화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새로운 것을 알려면 반드시 옛것을 헤아려야 한다고 했다. 문자의 변화추이를 보면 한대 초기 蕭何가 문자에 관한 법령제정, 후한시대에는 문자 연구가 경시 되어 이체자와 괴이한 해석이 만들어지고 정확한 것과 부정확한 것이 반반씩 자리 했다. 魏대에는 문자 운용에 일정 표준이 있었으나, 한대의 작품을 해석하는데 어려움이 있었다. 점차 후대의 사람들이 모두 알면 설사 어려운 글자라도 쉬운것이 되었고, 당시에 사용하지 않는 문자는 어려운 문자로 여겼다. 문자를 연용해 문장을 짓는데는 반드시 선택이 필요한데 詭異한 글자는 피할 것과 偏傍이 같은 자를 줄일것, 중복을 헤아려야하고 간단하고 복잡한 글자를 조정해야 한다. <隱秀>는 한편의 警句를 말한다. 함축적이고 여운이 있어 오래 음미할 수 있는 동시에 홀로 뛰어난 문장으로 진상과 은정을 드러내지 않아도 독자 스스로 의미를 체득하기에 隱이라 할수 있고 따라서 빼어나다고 할 수 있는것이다. 警句라고 한다면 에세이즘에서 말한 잠언과 비교할 수 있겠지만 그 내용을 자세히 보면 은수에서 말하는 경구와 잠언은 그 진가를 평가하는데 상당한 차이가 있는것 같다. 전자는 의미를 감추고 드러내지 않으면서 감동을 주는 것이라면 잠언은 의미를 분명히 드러낼 때 그래서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정도의 차이가 있는것 같다. <指瑕> 지하는 창작의 결점을 말한다. 이런 결점에는두 종류가 있는데 하나는. 문장의 하자이고 다른 하나는 主解의 결점이다. 문장의 결점으로는 4가지를 예로 들었는데 첫째, 用詞의 부당. 둘째, 사상적 착오. 세째, 사어詞語의 특정 용법과 감정 색채의 위반. 比擬비의의 부당 注解의 결점으로는 사람을 잘못 쓰거나 글자를 오해한 것 두가지 그리고 이외로 베끼기 베끼기와 차용은 바르니 반드시 구분해야한다고 했지만 그 경계의 모호함 항상 논란거리일 수 밖에 없다. 언어상의 결점은 실로 백옥의 결점보다 없애기가 어렵다고 하는데 과연 그런가?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 또는 그때는 틀렸지만 지금은 다르다. 라고 할 수 있다면 세상의 기준은 변화무쌍하고 절대적 기준이 존재 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날개가 없어도 어디든 날아갈 수 있는 것은 언어이며, 뿌리가 없어도 단단하게되는 것이 감정이라면 더 더욱 완전 무결한 완벽한 문장이란 불가능한것이 아닌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