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 여성과 가족 변동
01_2023/1/19] 걸크러쉬 혹은 청순가련: 중국 사회는 어떤 여성을 요구하는가 에레혼 중국의 페미니즘을 논할 때마다 상반된 두 가지
이야기가 나온다. 먼저 중국 여성 인권이 상당한 수준으로 보장받는다는 이야기. “여성이 하늘의 절반을 떠받칠 수 있다”라는 마오쩌둥의 유명한 문구가 소환되고, 중국 가정 내 여성의 발언권이 강하다는 카더라가 뒤따르기도 한다. 이와
달리 중국의 여성 탄압을 말하는 이들도 있다. 중국은 당의 목소리보다 큰 발언이 존재할 수 없는 곳이기에
페미니스트들이 지탄받는다는 이야기가 떠돈다. 광저우 등의 도시에서 페미니스트들이 경찰에 구금됐던 사건들이
이런 부정적 상황을 뒷받침하는 근거가 된다. 이에 대해 대답하려면 무책임해 보이는 말을 할
수밖에 없다. 중국 페미니즘은 두 가지 상반된 상황에 모두 직면하고 있다고. 이는 중국 체제의 특수성 때문에 발생하는 현상이다. 중국 공산주의는
출발 단계에서부터 인민의 해방과 여성 해방 모두를 강조했다. 1950년 중국에서 통과된 혼인법은 부권으로부터의
여성 해방을 천명한 법이며, 마오는 여러 논문이나 연설을 통해 여성이 남성과 동일한 노동을 하고 동일한
임금을 받아야 한다고 이야기한 바 있다. (남녀 평등에 대한 마오의 발언은 중국 인민 최대 다수를 노동에
참여하도록 만드는 선전의 일환이라는 해석이 존재한다.) 중국 여성 인권의 부정적 측면은 개혁개방과 함께
사회 표면으로 드러났다. 대약진운동과 같은 총동원체제에서 여성은 주요 노동력으로 각광받았으나 80년대 중국에 시장경제가 도입되면서 상황이 역전되었다. 자본주의 체제
도입으로 기업의 자율권이 강화되자 사측에서는 여성을 의도적으로 채용하지 않는 현상이 일어나기도 했다. 실례를
하나 살펴보자. 1988년 중국 정부는 기업에서 여성이 겪는 불편을 해결하고자 기업에 탁아소나 유치원을
설치하고 생리∙출산 휴가 제도 의무화를 법으로 제정했다. 하지만 돌아온
결과는 여성 채용 인원의 감축, 기존 여성 사원 구조조정 등으로 이어졌다고 한다. 중국은 이념적으로 성평등을 지향하는 국가여야
한다. 그러나 80년대 후반 이후 중국은 아시아 어느 곳보다
여성 인권이 후퇴하는 지역이기도 하다. 이는 대륙의 페미니스트들을 정치적으로 탄압하는 문제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중국 내에서 일어나는 여성 문제는 더욱 교묘한 방식으로(=신자유주의가
잘 하는 그 방식대로) 뿌리내리는 중이다. 신자유주의 체제 내에서 발생하는 억압이 무서운
까닭은, 억압당하는 이가 그것을 문제라고 느끼지 않기 때문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끝날 줄 알았던 스펙 관리가 대학교에서 이어져도, 취준생들은 여기에 저항할 수 없고 이 경험들이
언젠가는 도움이 되리라 믿는 수밖에 없다. 여성들은 여기에 외모 가꾸기라는, 한층 더 강화된 필터링에 부응해야 한다. 중국에서도 이 같은 상황이
예외는 아니다. 오히려 더 기괴한 모습으로 외양 가꾸기에 열중하는 현상을 목도할 수 있다. 중국에서 이상적인 미인의 조건으로 언급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하얀 피부이다. 고대 중국에서 미인이라고 불린 사람들은 모두 흰 피부를 자랑하는 사람이었다. 뿐만 아니라 지금 중국에서 아름다운 여성을 형용할 때 사용하는 단어는 다름아닌 ‘바이푸메이(白富美)’, 즉 흰 피부∙재력∙미모라는
조건을 묶은 단어이다. 세 가지 조건 중 가장 먼저 등장하는 조건인 하얀 피부를
위해 중국 사람들이 권장하는 일이 있다. 절대로 햇빛에 닿지 말 것.
그래서 중국에 자외선이 강한 날 거리를 걸어 다니면 모든 여성이 양산을 쓰고 있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미디어는 피부가 하얀 연예인을 미인의 표본으로 띄워주고, 피부가
하얗지 않은 여성은 비정상적인 외모인양 취급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된다. 대학 내에서도 햇빛이 강한
날은 양산을 쓰고 팔토시를 한 사람들을 수도 없이 목격할 수 있다. 이러한 자기 가꾸기는 자율적 선택에
의한 결과이다. 좋은 게 좋은 것이라는 말이 있듯, 자외선을 피해서
나쁠 일이 없지 않은가? 왜 그토록 필사적으로 양산을 쓰냐고 묻는 이는 이상한 사람 취급받기 십상이다. 마오쩌둥이 이야기 한 하늘을 짊어질 수 있는
여성은 공구와 중장비를 든, 강인한 모습을 하고 있다. 이러한
이미지는 중국 사회주의에서 이상적으로 여기는 여성의 모습이다. ‘남성이 하는 일을 똑같이 해내는 여성’이
중국에 등장한 데에는 공산당이 봉건제도 타파를 건국 핵심 이념 중 하나로 삼은 것이 배경으로 자리한다. 중국
여성은 사회 구성원으로서 무엇이든 해내는 인민 대표의 역할을 수행하면서 동시에 외모 가꾸기에도 열을 올려야만 하는 처지에 놓여 있다. 사회가 요구하는 다양한 여성상에 부응해야만 하는 분위기가 중국에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나, 이와 같은 상황 브리핑이 ‘중국 여성은 해방되었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간단한 답은 될 수 있으리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