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는 어떻게 여자들의 놀이터가 되었나》 10장 최근 유행한 페미니스트 유토피아에 대하여, 11장 ‘여자처럼’ 글쓰기: 윌라 캐더 작품에서, 12장 <누런 벽지>에 대하여, 13장 여학생들끼리의 사랑은 성애적인가? 14장 수전 코플먼에게 보내는 편지 이 책의 후반부에서 조애나 러스는 여성들만의 시공간인 페미니즘 유토피아와 여성 동성애를 다룬다. 1970년대 페미니즘의 부흥과 함께 SF계에서도 페미니즘 유토피아 소설들이 여럿 발표된다. 이 작품들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기도 하지만, 대체로 유럽이나 미국 등 여러 지역에서 거의 동시에 출현했다. 조애나 러스는 이런 현상을 일종의 평행진화로 본다. 이 작품들의 매력은 성전쟁을 소재로 삼는 안티페미니즘 소설들과 비교할 때 더 잘 드러난다. 조애나 러스가 이 책 10장에서 언급하는 소설을 쓴 작가들이 모두 페미니즘을 최우선 관심사로 삼고 있지는 않다. 다만 이 소설들은 페미니즘 관심사와 부합하게 현실의 불만과 고통을 불가능한 유토피아의 꿈으로 묘사한다. 조애나 러스는 이 소설들에서 그런 경향을 발견하면서 동시대 미국 SF의 변화를 포착한다. 여성과 페미니즘을 다루는 사회 구조의 문제를 비로소 미국 SF가 다루기 시작했다는 점이 바로 그 변화에 해당한다. (310쪽) 이 작품들은 페미니즘과 같은 질문을 던지며 유사한 대답과 해결책을 제시한다. (312쪽) 소설에 등장하는 여성들은 가부장제와 거리가 먼 공동체를 이루고 주로 야외에서 생활한다. 이들에게는 계급과 정부가 없으며, 이들은 생태적 사고방식으로 자연과 교감한다. (318쪽) 성에 대해서 관대하며 섹슈얼리티를 소유와 재생산에서 분리한다. (319쪽) 남자가 등장하지 않는 이 세계에서 섹슈얼리티는 더 다양하게 존중받으며, 레즈비어니즘이 전면에 등장한다. 이처럼 여성들의 연대는 자연스럽게 여성들의 섹슈얼리티로 연결된다. 성전쟁을 다루는 소설들이 여성의 섹슈얼리티를 미숙하거나 지배의 대상으로 보는 관점과는 다르다. 성전쟁을 다루는 소설들은 성차별주의와 계급사회를 전제한다. 여성들로 구성된 무능한 정부가 계급사회를 만들어 남성을 억압한다는 설정이 자주 등장한다. 남성 구원자가 사랑을 가장한 성폭력을 통해 이런 사회를 전복하고 다시 여성을 지배하게 된다는 내용도 반복된다. 페미니즘 유토피아 소설들은 이런 성전쟁을 다루는 소설들의 전제에 저항한다. 이 저항은 인간의 보편적 가치 구현이라기보다 결핍의 반작용에 가깝다. (331쪽) 소설은 지금 우리 사회나 여성에게 결핍된 가치를 다룬다. 조애나 러스는 유토피아를 향한 충동 뒤에 감춰진 누군가의 고통을 본다. 계급과 성, 인종차별까지 포함하는 고통에 대한 대면과 저항이 이 유토피아를 통해 드러난다. (337쪽) 결핍에 관해 이야기하자면, 여성들에게 결핍된 무엇은 오히려 로맨스 혹은 사랑일지도 모른다. 여성들은 사랑받지 못했다. 성전쟁을 다루는 소설들을 보면 남성들은 사랑 혹은 성관계 자체를 폭력과 지배로 이해한다. 또 자신들이 성에 미숙한 여성을 교육해야 한다고 여긴다. 결혼생활의 으스스함을 은밀하게 드러내기 위해 여성들이 읽고 쓰는 모던고딕 소설만 보아도 이는 여성들의 판타지와 거리가 멀다. 그렇다면 여성들은 누구와 사랑을 할 수 있을까? 안타깝지만 여성끼리의 사랑도 불가능하다. 남성들은 여성의 미숙한 성을 자신들이 가르칠 수 있다고 여기며, 여성 동성애는 미숙한 성을 성숙하게 하는 방법으로 용인되지 않는다. 여성 동성애에 대한 시선은 과거에는 관대했지만, 현대에 오면서 점점 (특히 조애나 러스의 시대에) 성적 일탈로 여겨졌다. 남성들은 자신들이 그렇듯 여성의 성 역시 남성 성기 중심으로만 이해한다. 남성들은 놀라서 묻는다. ‘성기 없이 어떻게 성관계를 하지?’ 물론 여기서 성기는 남성 성기만을 의미한다. 자기 페니스를 사랑하는 종족은 성관계와 무관한 모든 곳에서도 같은 질문을 한다. ‘남자 없이 어떻게 학문을 하지?’ 이렇게 페니스는 팔루스로 변형된다. 페미니즘을 말할 때조차 팔루스는 눈치 없이 끼어든다. 아니, 오히려 자신들을 빼고 어떻게 여성들의 삶을 논할 수 있겠냐면서 당당하고 요란스럽게 끼어든다.
조애나 러스는 이 책의 마지막 글에서 ‘권위 있는 남자들의 이론’만 상대하려고 애쓰는 경향이 페미니즘에도 나타나는 모습에 곤혹스러워한다. 단지 몇몇 페미니스트 연구자의 오류나 실수는 아니다. 모든 학문은 남성 중심이며, 조애나 러스가 지적한 대로 ‘이론의 궤짝은 가장 쓸모없고 심지어 어리석기까지 한 잡동사니들로 꽉 차 있’다. (389쪽) 어쩌면 여성이 학문(특히 페미니즘)을 하는 일은 그 궤짝을 채우고 부수는 일의 반복이 아닐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