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

제목[과학읽기] 만물을 초월하는 ‘만물이론'2025-04-15 20:03
작성자

과학읽기0415 <물리학이 잃어버린 여성> 9장 양자역학과 “만물이론” 10장 수학적 여성의 등장


만물을 초월하는 만물이론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은 시공간을 설명하는 데 적합했다. 질량이 큰 태양 부근을 지날 때 빛이 휘는 모습이 관찰된 것이다. 중력은 이러한 시공간 형태가 갖는 부산물이었다. 아인슈타인은 일반상대성이론에서 나아가 시간과 공간뿐 아니라 그 안에 있는 모든 물질, 모든 힘들을 설명할 수 있는 일관된 방정식을 찾기 위해 나머지 40년을 바쳤다. 아인슈타인이 찾으려 했던 통일장 이론, 즉 만물이론은 존재(자연)의 핵심을 꿰뚫는 ‘신의 법칙’이었다. 그는 그런 게 있다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물리학자라면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다는 양자역학 놀이에 빠지지 않고 분명하고 정확한 자연의 법칙을 수립해야 한다고 믿었다. 


모든 것의 종합, 존재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는 단 하나의 보편 방정식. 이런 개념은 아인슈타인의 등장 이후 나타난 최신 개념이 아니다. 피타고라스 시대부터 수학적 인간들은 언제나 물질을 초월하는, 존재를 초월하는 단일한 법칙을 추구해 왔다. 우주의 모든 운동과 형태의 궁극적 근원인 단일한 법칙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은 일신교의 과학적 등가물이다. 단일한 총괄적 우주 법칙에 대한 열망은 3000년 이상 동안 신으로 알려져 온 단일한 총괄적 원리에 대한 믿음이 남긴 과학적 유산이다. 아인슈타인을 비롯한 만물이론 물리학자들은 우주의 역사를 본래 완전한 상태에서 쇠퇴한 것으로 본다. 이들은 이 최초의 ‘균형’과 ‘은총’의 상태를 희구하며 수학적 에덴동산을 구축하고자 한다. 왜 이토록 동일성과 균형과 궁극의 초월에 대해 믿고 집착하는 것일까? 우주가 다양한 원리에 따라 조성되지 말라는 법도 없지 않은데 말이다. 


우리 시대 통일이론을 탐구하는 물리학자들이 실제로 신학적 영적 사색에 참여하는 것은 아니다. 아인슈타인이 말했던 신도 전통 그리스도교의 영적 구속자가 아니라 수리-물질적 창조일 뿐이다. 수리과학과 신성을 연관 짓는 천년 이상의 전통에 따라, 그들은 그저 자기들의 활동을 유사 종교적인 조명 속에 제시하는 일을 정당한 것으로 여길 뿐이다. 어떤 물리학자들은 우리가 그들을 대제사장, 세계에 대한 초월적이고 심지어 신적인 지식으로 인류를 끌어올려 줄 대제사장으로 보아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고대 피타고라스 추종자들은 수가 시간과 변화와 육신을 초월한, 물질적 형상의 청사진이라고 믿었고, 만물이론은 그 현대판이라 할 수 있다. 만물이론에 대한 욕망은 이처럼 실상 자연을 넘어서는 어떤 것에 대한 욕망이다. 자연적인 것의 특징인 필멸성과 가변성을 초월하는 것에 대한 욕망은 끝이 없다. 그러나 물질(혹은 존재 자체)에 대한 필멸성과 가변성을 초월하고자 하는 것은 종교에 임하는 태도라면 모를까 지식탐구에 임하는 태도라 볼 수 없다. 


물질적인 것을 초월하는 영적인 것, 육체적인 것을 초월하는 정신적인 것, ‘지상’을 초월하는 ‘천상’적인 것. 이 모든 이분법적 사고방식은 현재의 지식 형성에도 큰 장애물이다. 남성성과 초월성이 한 조를 이뤄 여성성을 물질적이고 지상적인 것으로 묶어두었다. 이분법과 더불어 더 근본적이고 더 중요한 것이라는 위계적인 가치 파라미드까지 만들어졌다. 이런 위계적 세계상, 위계적 지식관이 여전히 견고하다면 더 이상의 과학 발전은 기대할 수 없다. 우리가 물리학을 ‘초월적’ 탐구로 보는 오랜 사고방식을 재검토해야 한다. 우리가 자연에서 발견하는 수학적 관계들은 자연을 넘어서 있지 않으며, 자연의 또 다른 국면일 뿐이라고 보아야 한다. 이런 관계들은 자연과 별도로 또는 그에 앞서 존재하지 않으며 다른 여느 과학적 발견처럼 여겨야 한다. 물리학이 종교에 가까운 특권을 누릴 이유가 없다. 세계에 대한 수학적 지식은 더 고상하거나 초월적인 종류의 지식이 아니라 그저 특수한 종류의 지식으로 보아야 한다. 앎에는 여러 방식이 있으며 수학은 우리 주위 세계를 아는 데 특별히 유용한 방식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다른 많은 학문보다 더 근본적이거나 더 고상한 것이 아니다. 


물리학자들은 자신들의 과학이 전적으로 객관적인 세계에 대한 지식을 발견하는 것이라고 단언하지만, 실상은 전적인 객관성이라는 개념부터가 신화이다. 과학이란 주관적인 사람들이 연구하는 것이지 객관적인 ‘그것들’이 연구하지 않으며, 모든 사람은 문화적인 환경 속에서 생활하면서 어쩔 수 없이 그 영향을 받는다. 문화적으로 중립적인 과학이라는 것은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의 과학적 자연관은 경험적으로 발견된 것일 뿐 아니라, 인간의 편견과 문화적 영향을 받은 사고방식의 산물이기도 하다. 물리학자들은 항상 자신들의 과학이 윤리적으로 중립이라고 주장해왔다. 그러나 지식이란 중립적일 수 없으며, 의식적이든 그렇지 않든 항상 어떤 의도의 산물이다. 

댓글

(자동등록방지 숫자를 입력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