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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레드 로자] 로자 룩셈부르크의 사상 4~6장 발제2019-04-02 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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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 로자] 로자 룩셈부르크의 사상 4~6장 발제_아라차



4장 제국주의와 전쟁에 맞선 투쟁

1차 세계대전을 앞둔 시점인 1911년 베른슈타인은 평화를 향한 갈망이 보편적이 됐으며 전쟁이 일어난다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다고 자신있게 주장했다. 카우츠키의 마르크스주의 중간파들도 정책 결정자인 고위 공직자들이 지구상에 평화를 가져올 것으로 기대했다. 이와는 반대로 로자 룩셈부르크는 사회주의자는 제국주의와 제국주의 전쟁에 반대해야 한다는 점, 제국주의와 제국주의 전쟁을 종식시키려면 오직 문제의 원인인 자본주의를 타도해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룩셈부르크의 반제국주의 정책의 중심 테마는 반전 투쟁이 사회주의를 성취하기 위한 투쟁과 분리할 수 없는 관계에 있다는 것이다. 

“부르주아 사회는 사회주의로의 변혁이냐 아니면 야만 시대로의 복귀냐 하는 딜레마에 빠져 있다. 우리는 제국주의의 승리와 고대 로마처럼 모든 문화의 쇠퇴, 즉 파괴, 황폐화, 퇴보, 입 벌린 무덤을 택할 것인가 아니면 사회주의의 승리, 즉 제국주의와 그 방책인 전쟁을 의식적으로 공격하는 국제 노동계급의 승리를 택할 것인가 하는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이것은 세계사적 선택의 기로다. 주사위는 계급의식적 프롤레타리아가 던질 것이다.”


5장 당과 계급

로자룩셈부르크만큼 인간 운명을 결정하는 요인으로 인간 활동을 강조한 사람은 드물 것이다. 

“인간은 자신의 자유의지에 따라 역사를 만들지는 않지만, 자신의 역사를 실제로 만든다. 프롤레타리아의 행동은 그 시대의 사회 발전 성숙도에 종속되지만, 사회 발전이 프롤레타리아와 무관하게 진행되는 것은 아니다... 인간이 자기 자신의 그림자를 뛰어넘을 수 없듯이 역사 발전을 뛰어넘을 수 없더라도 역사 발전을 가속하거나 지연할 수는 있다.”

로자 룩셈부르크는 노동자 대중이 사회주의를 의식적 목표로 삼는 것이야말로 사회주의를 성취하기 위한 필수 전제조건이라고 믿었다. 하나의 계급으로서 노동계급은 사회주의적 목표와 이를 성취하는 방법을 자각해야 하는 한편, 자신들을 지도할 혁명적 정당도 필요하다. 정당은 진공 상태에서 전술을 발명하는 것이 아니라, 먼저 대중운동의 경험에서 얻은 교훈에서 배운 다음 그로부터 일반화해야 한다. 노동계급의 역사상 큰 사건들은 이 주장이 의심할 여지없이 옳았다는 것을 보여줬다. 노동자는 정당 지도부의 일방적 가르침에서 배우는 것이 아니다. 로자 룩셈부르크는 카우츠키파에 반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사회주의 프롤레타리아에게 강의하고 유인물과 소책자를 배포하는 것이 교육이라고? 천만에! 활동 자체가 대중을 교육하는 것이다. 혁명적인 노동운동이 저지른 오류가 최정예 중앙위원회의 무오류보다 역사적으로 볼 때 훨씬 값지고 생산적이다.”


로자 룩셈부르크는 대중 봉기가 일어나기만 하면 운동 자체가 심각한 타격을 입지 않고 지도부쯤은 제쳐 버릴 것이라고 믿었다. 로자 룩셈부르크가 조직의 구실을 과소평가하고 자발성의 구실을 과대평가하는 듯한 경향을 이해하려면 당시 상황을 살펴봐야 한다. 그는 독일 사회민주당의 기회주의적 지도부와 싸워야했다. 이 지도부는 조직의 구실을 과도하게 강조하고 대중의 자발성을 경시했다. 로자 룩셈부르크가 맞서 싸운 것은 바로 강력한 지도부와 허약한 대중이라는 관념이었다. 그가 또 맞서 싸운 것은 폴란드 사회당이었다. 폴란든 사회당은 폴란드의 민족 독립이야말로 자신의 목표라고 천명하는 국수주의적 조직이었다. 지주의 부르주아지는 민족주의적 투쟁을 외면했고, 폴란드 노동자들은 민족국가를 세우려고 투쟁할 욕구가 없었다. 이 때문에 로자 룩셈부르크는 폴란드 사회당의 주의주의와 벌인 장기간의 투쟁에서도 자발성이라는 요소를 강조한 것이다. 그가 세번째로 맞서 싸운 것은 신디컬리즘, 즉 노동조합에 아나키즘을 섞어 놓은 경향이다. 신디컬리즘은 총파업이 명령 한마디로 촉발될 수 있으며 곧이어 부르주아 지배 질서가 전복될 거라고 믿었다. 즉 대중 의식의 고양과 상관없이 지도자들의 자발적 의지로 결정적 행동을 이끌어낼 수 있다고 본 것이다. 

로자 룩셈부르크가 자발성을 과대평가하고 조직이라는 요소를 과소평가한 주된 이유는 아마도 개혁주의에 대항한 당면 투쟁에서는 모든 혁명의 첫걸임인 자발성을 강조해야 했기 때문일 것이다. 사실, 혁명은 정당의 지도 없이 자발적 행동으로 시작된다. 프랑스 대혁명도 바스티유 감옥 습격으로 시작됐다. 혁명은 자발적 봉기로 일어난 후에는 다른 방식으로 진행된다. 정당은 혁명을 초기 국면에서 최후 승리로 끌어올리는 데는 필수적이다. 로자 룩셈부르크는 관료적 중앙집중주의가 혁명적 사회주의를 망치는 주범 노릇을 하던 상황에서 활동했고, 따라서 대중의 기본적 활동을 끊임없이 강조할 수밖에 없었다. 


6장 로자 룩셈부르크와 민족문제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기인 유럽 자본주의의 발흥기에 살았다.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틀은 국민국가였고,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사회주의자의 임무를 “부르주아지와 동맹해 절대군주, 봉건지주, 프티부르주아지에 대항해” 싸우는 것으로 봤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차르와 합스부르크 왕가에 대항하는 모든 민족운동을 지원하는 동시에, 동일한 기준에 입각해 객관적으로 차르나 합스부르크 왕가의 손아귀에서 놀아나는 민족운동에는 반대했다. 모든 진보의 주적인 제정 러시아에 대해서만 유럽의 모든 민주주의 운동이 선전포고할 것을 요구한 것이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혁명적 부르주아 민족주의 개념을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 나라들에는 적용하지 않았다. 

로자 룩셈부르크는 마르크스와 엥겔스를 좇아 민족운동을 주로 유럽적인 것으로 여겼고, 아시아, 아프리카의 민족운동은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정치 생활 초창기에 룩셈부르크는 유럽 일반, 특히 러시아의 상황이 19세기 말에 너무 많이 변한 나머지 유럽의 민족운동에 대한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견해를 더는 지지할 수 없게 됐다고 지적했다. 마르크스와 엥겔스 시대에는 폴란드의 귀족이 민족운동의 지도자였다. 그러나 폴란드에서 자본주의가 점점 발전하면서 귀족들은 이제 사회적 기반을 상실했고, 폴란드의 진보적 운동을 탄압하는 데 차르 정부와 동맹을 맺었다. 그 결과 폴란드의 귀족들은 민족 독립 열망에 냉담해졌다. 폴란드의 부르주아지도 산업에 필요한 주요 시장을 러시아에서 발견하면서 민족 독립 열망을 적대시했다. 룩셈부르크는 “폴란드는 황금의 사슬로 러시아에 묶여 있다. 국민 국가가 아니라 약탈 국가가 자본주의 발전에 상응한다. 폴란드의 노동 계급 역시 러시아에서 자신의 동맹자들을 찾았기 때문에 러시아에서 분리하는 데 관심이 없다”고 지적했다. 

룩셈부르크는 자본주의에서는 민족 독립 슬로건이 진보적 가치가 없으며, 폴란드 민족 내부 세력으로는 독립을 실현할 수 없고 여러 제국주의 열강이 개입하는 경우에만 폴란드의 독립이 이뤄질 수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또한 사회주의에서는 민족 억압이 더는 존재하지 않고, 인류의 국제적 단결이 실현되면서 민족 독립 슬로건이 들어설 여지가 전혀 없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레닌은 룩셈부르크가 폴란드 사회당에 반대하는 것에 동의했고, 폴란드 사회주의자들의 임무는 민족독립이나 러시아로부터의 분리가 아니라 폴란드 노동자들과 러시아 노동자들의 국제적 단결을 위해 싸우는 것이라고 룩셈부르크와 한목소리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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