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

제목[니체] 3/29 후기2019-04-03 0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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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속에서는 갖가지 느낌들이 고통을 겪으며 갇혀 있지. 

하지만 의지가 나를 찾아와!

해방자이며 기쁨을 가져다주는 존재로서.


의지가 해방시키는 거야.

이게 의지와 자유에 대한 참된 가르침이야." 24. <행복이 가득한 섬>



- 왜 의지는 해방자요, 기쁨을 가져다주는 존재인가? 라는 물음에 관한 성찰. 



1. 의지의 인간



인간은 의지의 존재이다. 그러나 이는 인간이 주체- 주어로서 '의지함'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의지가 인간 안에서 의지함을 의미한다. 따라서 주체란, 인간을 구성하는 여러 의지들이다.

왜냐하면 의지는 항상 다수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매 순간 다양한 충동과 사상, 그리고 감정을  지닌 채 살아간다.


그런데 이러한 다수의 의지 모두는, 자신의 '생명 유지'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힘을 발산하기를, 그리고 더 많은 힘을 얻기를 원한다. 

그러나 이는 의지가 특정한 힘 - 권력- 목적을 얻기 원함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항상 힘의 형태로 드러나는 생명 현상을 의미한다. 왜냐하면 모든 생명은 힘을 원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의지는 항상 힘에 대한 의지이다.


"생명이 있는 곳에는 의지가 있어. 

생명에 대한 의지가 아니라

내가 가르친 대로 힘에 대한 의지가 있어.


"살아 숨쉬는 생명은

생존보다 높게 가치평가하는 것들을 아주 많이 가지고 있어.

하지만 이 가치평가는 결국 무엇을 나타내지?

힘에 대한 의지, 바로 그것을 나타내."(34. 넘어서기)


그런데 이러한 각각의 의지는 자신의 힘을 발산하고,

더욱더 많은 힘을 얻기 위해 마치 자신이 전체로서 하나의 인격체가 되고자한다.

가장 강한 의지의 승리는, 마치 의지가 하나의 단일체인 것처럼 우리를 기만한다.

의지는 자신의 승리 - 왕으로서의 군림 -, 즉 행위의 유발을 마치 자기 스스로 쟁취한 것처럼, 

이러한 승리에 대한 '쾌'의 감정을, 자유의지라는 환상으로 미화하고자 한다.

그러나 가장 강한 의지의 승리는, 항상 나머지 의지들의 복종과 고통 속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이것이 자유의지이론의 기원이요, 의지를 단일체로 가정한 쇼펜하우어의 오류이다. (선악의저편; 13)


"자네의 미덕 하나하나는 제각기

가장 높은 자리를 차지하기 원하거든.

미덕은 제각기 자네의 정신 전체를 원하지.

자네의 정신이 그 미덕을 알리는 전령이 되기를 원하지.

자네의 분노, 증오, 사랑에 깃들어 있는 에너지 전체를 원하는 거야." (5. 기쁨과 정열)



2. 힘의 발산


그런데 의지는 한 인격을 위한 투쟁 속에서 어떻게 자신의 힘을 드러내고자, 그리고 어떻게 더 많은 힘을 얻고자 하는가?

의지는 '가치평가'를 통해서 자신의 힘을 행사한다. 아니 의지 자체는 이미 스스로 하나의 가치평가이다.

그런데 이러한 가치평가 자체는 하나의 '창조적 행위'이다.

왜냐하면 가치란 사물 속에 따로 존재하는 그 무엇이 아니라, 

의지가 사물에게 부여하고 증여한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저 사물이 '아름답다'고 말한다. 그리고 아름다운 것들 중 촤고로 아름다운 사물에 대하여

'아름다움 그 자체'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 모든 아름다움은 자신에 대한 기쁨으로부터 나온것이다.

자기 자신에 대한 기쁨이 사라지는 순간, 아름다움의 감정 또한 함께 사라질 것이다. (우상의 황혼; 19)

의지는 이렇게 세계에 아름다움을 선사하는 가치의 '창조자'다.

좋음과 나쁨, 아름다움과 추함, 고귀함과 비열함, 그리고 선과 악이라는 이 모든 가치평가는,

의지가, 인간이 자연과 사물에게 부여했던 것이다.

이렇게 의지의 인간은 자연에게 자신의 힘을 행사하고자 한다.


"스스로 정한 가치와 스스로 정한 선과 악에 대한 기준을 통해

힘을 행사하게 되는거야." 34. <넘어서기>


"가치평가는 창조야.

잘 들어 창조적 인간! 

'가치평가한다'는 행위 자체가

가장 가치 높은 행위, 가장 가치 높은 보석이야.


가치평가를 통해서만 가치가 존재해.

가치평가가 없다면

만물은 껍질만 있개 돼.

잘 들어! 자네, 창조적 인간! 15. <천, 그리고 한 개의 목표>



3. 인간의 의미


이렇게 인간이 의지들의 복합체이며, 그러한 의지들은 모두 가치를 창조하는 존재라면,

인간은 가치를 창조하는 자이다. ("'사람'이라는 말은 가치평가하는 자란 뜻이거든." 15. 천, 그리고 한 개의 목표.")

따라서 가치를 평가하는 자로서, 가치의 창조자로서 자신의 의지; 자신의 힘을 긍정할때

그는 자기 자신을, 자신의 삶을 긍정할 수 있다.

그는 자신의 가치평가를, 자신의 입맛을, 취향을, 스타일을, 

미적인 감각을, 그리고 자신의 신체를 긍정한다. 

그의 도덕은 자기 예찬이요, 그는 모든 사물에 자기 자신을 반영하며, 

자신의 모습을 되비추어주는 모든 것을 아름답다고 여긴다.

"특별한 경우에 그는 아름다운 것을 찬탄할 때 실은 자기 자신을 찬탄한다. 

이런 식으로만 인류는 자기 자신을 긍정할 수 있다." (우상의 황혼; 19)




4. 탈바꿈


반대로 인간의 삶을 가장 부정하고, 인간을 가장 억압하며 고통스럽게 하는 것들은 무엇인가? 

그것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인간을 "가장 많이 괴롭히고 휘게 만드는"(8. 산등성이에 서 있는 나무)

존재들, 황금 빛 비늘의 용, 중력의 영, 복수심 그리고 원한 감정이다.

이러한 존재들 앞에서 인간의 의지는 부정된다. 

인간이 인간의 의미를 상실한다. 인간은 더 이상 창조자가 아니라, 피조물이 된다.


따라서 우리가 해방되고, 기쁨을 느끼고, 가볍고, 춤추는 자유로운 자가 되기 위해서는,

즉 창조자로서 자신의 삶을 창조하고 긍정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의지를 부정하는 것들을 모두 끊임없이 넘어서고, 극복해야만 한다.

위험한 곡예를 통해 광대의 

사자의 격렬한 의지로 황금빛 비늘의 용, "너는 ~해야만 한다."라고 말하는 

모든 당위와 의무에 맞서 투쟁하고, 호탕한 웃음과 경쾌한 춤을 통해 중력의 영이라는 악마를 극복해야만 한다.


내가 창조한 좀 더 나 다운 존재로서 내가 되기 위해 끊임없이 '탈바꿈'해야만 한다.

더욱 강하고 고유한 존재가 되기 위해 "동그라미의 욕구"(27. 미덕을 가진 사람)에 충실해야만 한다.

; 우리는 점점 더 우리 자신의 의지를 '의지'해야만 한다. 


우리는 의지를 통해서 해방되었을 때, 우리가 가벼워졌을 때 비로소 삶과 함께 웃으며, 춤출 수 있을 것이다.

창조를 통해서 진정으로 사랑하게 되었을 때, 비로소 이 땅을 갈망할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은 "의지할 때, 욕구할 때, 사랑할 때, 그때만 삶을 찬양"(32. 춤추며 부른 노래)할 수 있다.


- 왜 의지는 해방자요, 기쁨을 가져다주는 존재인가?


의지할 때 우리는 가벼워 질 수 있기 때문이며,

의지할 때 우리는 사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이 진심으로 사랑하는 존재는 자신이 낳은 아이들과 자신이 창조한 것뿐." (47. 밀려드는 행복) 


우리는 자기 자신의 의지를 의지할 때, 

자신의 의지를 통해 자기 자신과 자신의 삶을 창조해 나갈 때, 비로소 '삶'을 '사랑'할 수 있다. 왜냐하면 우리는

우리가 창조한 것만을 진심으로 사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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