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

제목[과학읽기] 존재 탐구가 어려운 이유2025-01-14 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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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읽기] 존재의 역사 1장 거대한 역사의 전제


존재 탐구가 어려운 이유


무속과 예언이 판치는 서기 2025년의 한반도. 인공지능과 휴머노이드가 일상이 된 현실과 너무도 대조되는 현장이다. 과학과 무속이 대척점에 있는 것 같지만 실상은 이렇게 뒤섞여 있다. 과학 안에서도 마찬가지다. 우주의 시작부터 모든 것이 정해져 있다는 ‘결정론적’ 주장과 모든 것이 ‘우연한 사건의 확률론적 조합’이라는 주장이 있다. 결정론적 주장은 인간이 결국은 세상의 물리 법칙을 전부 발견해 낼 것이라 낙관한다. 확률론적 주장은 자칫 ‘모든 것이 우연’이니 운에 기댈 수밖에 없다고 낙담한다. 낙관과 낙담은 이렇게 한끗 차이다. 


이 책에서는 우주의 탄생에서부터 우리가 현재 이 모양 이 상태로 존재하기까지의 이야기를 다룬다. 이 모양 이 상태가 되기까지 반드시 일어났어야 할 사건들에 대한 이야기다. 무려 137억 7,000만 년에 걸친 대서사시. 작은 입자에서부터 은하와 태양계의 역사, 생명의 진화와 뇌와 의식의 진화에 이르기까지의 궤적을 따라간다. 이 이야기 중 하나만 삐끗했어도 인간은, 생명은 지금과 같은 성공의 역사를 쓸 수 없었을 것이다.


“그 결과, 일부 생명체가 더욱 복잡한 형태로 진화하면서 최종적으로 인간의 탄생을 불러왔다.” 22p

종종 이런 문장을 만날 때마다 반문하게 된다. ‘인간이 최종 결과물인가?’ 인간은 왜 이렇게까지 역사주의적 관점을 고수하는 걸까? 헤겔 때문인가? 인간은 결과가 아니고 과정이고 하나의 요소라는 관점은 왜 주류가 되지 못할까? 인간을 왜 이렇게 대단한 존재라고 생각하는 걸까? 인간만이 유일하게 의식을 탐구하는 존재라서? 이는 얼마나 자기 본위적인가? 이런 생각을 깨지 못하는 한, 인간을 원인으로 한 많은 문제들에 인간이 결국 잠식당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인간 본위가 인류가 다루는 모든 문제의 맹점이라는 부분은 일단 제외하자. 필자는 우리가 존재하기 위해 반드시 일어나야 할 핵심적인 사건에 집중했다. 과학에서 중요한 사건들을 먼저 설명하고, 이들 사건이 필연적이었는지, 그저 운 때문이었는지 논의한다. 먼저 과학적 원리와 사실을 발견하는 방법부터 살펴본다. 과학적 연구 방법은 인류의 발전이 만든 가장 위대한 성과라 할 수 있다. 이것이 없었다면 우리는 우주의 원리와 탄생에 대해 그 무엇도 알지 못했을 것이다. 과학은 증거를 만들어 가설을 뒷받침하거나 논박하고, 원인을 알 수 없는 문제의 원인을 해명한다. 괴담과 음모론은 증거와 거리가 멀다. 음모론으로 논의를 흐려놓는 사람의 이야기는 대부분 주장뿐이고 근거가 없다. 거짓 근거는 또 다른 거짓 근거만 불러온다.


과학의 목적은 관찰 결과를 설명하고, 그 원인을 파악하는 데 있다. 늘 일어나는 현상은 관찰하기가 쉽지만 드문 사건에 대한 연구는 어렵다. 인류의 탄생 사건은 드문 사건에 속한다. 만약 자주 잘 일어나는 사건이었다면 우주에 인간같은 생명체가 넘쳐나서 존재 탐구가 지금보다 쉬웠을 것이다. 


과학적 연구 방법은 관찰과 질문으로 시작한다. 관찰 대상은 자연물이나 인공물 어느 것이라도 가능하다. ‘이 나무는 왜 여기 있을까?’라든지, ‘저 인간은 왜 안 나오는 걸까?’, ‘뛰어오를 때마다 땅에 떨어지는 이유는 뭘까?’와 같은 질문도 좋다. 이 책에서 필자의 관찰은 ‘우리는 존재한다’이며, 이에 따른 후속 질문은 ‘우리는 왜 살아 있는가?’이다. 과학은 이 질문의 해답을 얻기 위해 오랜 세월 발전을 거듭해 왔다. 


과학적 연구 방법

 관찰하기

 질문하기

 가설 세우기

 실험

결과 분석 

신뢰성 있는 모델 형성 


가설은 추가적인 관찰이나 실험으로 검증할 수 있어야 의미가 있다. 검증할 수 없는 가설은 미신이나 꾸며낸 이야기와 다를 바 없다. 얼핏 그럴듯하게 들릴지라도 지식은 우리의 관찰을 넘어설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누구나 주변 세상의 한 측면을 설명하기 위해 가설은 세운다. ‘저 사람은 왜 날 무시했을까’처럼 사소한 것은 물론, ‘인생의 의미는 무엇일까?’와 같은 굵직한 주제에도 적용될 수 있다. 


과감한 주장일수록 강력한 근거가 필요한 법이다. 아무리 말을 잘해도 말 자체만으로 좋은 근거는 되지 않는다. 수차례의 실험과 대조를 거쳐 가설이 뒷받침된다면 그 가설은 사실이 된다. 데이터가 빈약하다면 가설은 무너진다. 책에서는 요정의 존재나 데니소바인의 실존을 예로 들어 설명하고 있다. 


가끔은 실험 자체가 불가능한 경우가 있다. 가령 우주가 탄생할 당시의 환경은 기술적은 극복할 수 없는 문제이므로 재현이 불가능하다. 실험이 불가능할 때 차선책이 수학적 모델이다. 수학은 추상적이지만 다양한 대상들이 서로 어떻게 연결되어 있으며, 시간과 공간, 심지어 우리가 실제로 떠올릴 수 없는 가상의 차원에서 어떻게 변화하는가를 설명한다. 수학적 모델은 우주의 발달 외에도 태양계와 은하, 화학 반응, 종 다양성, 인간의 뇌 기능을 다룬 것도 있다. 모델은 새로운 가설을 낳는다는 점에서도 중요하다. 모델을 구축하면 예측을 할 수 있고, 예측은 새로운 관찰이나 실험을 통해 검증할 수 있다. 입자물리학의 표준 모형은 ‘힉스 보손’이라는 입자를 발견했고 이는 세상의 존재를 가능하게 하는 핵심 원인 중 하나로 떠올랐다.


관찰과 실험을 통해 특정 패턴이 관측된 이유를 설명하는 기전이 필요하다. 일부 기전, 특히 복잡한 형태의 생명체와 관련된 것은 상당히 난해하다. 패턴을 두고 여러 해석이 생겨나기도 한다. 이때는 한 가지 가설을 뒷받침하고 다른 가설은 버릴 수 있도록 더 많은 데이터를 확보하려고 노력한다. 과학자들은 대부분 ‘오컴의 면도날’을 토대로 지지할 가설을 결정한다. 오컴의 면도날이란 하나의 현상을 두고 다수의 설명이 존재할 때, 가장 간단한 쪽을 선택한다는 의미이다. 필자는 마지막 장에서 우리 존재가 필연적인 우연적인지에 대한 의문에 답을 내릴 때 이 개념을 적용하게 된다. 


과학적 연구 방법에 신뢰가 가는 것은 지속된 교육의 효과일 수도 있다. 과학적 방법론이 자연 선택에 따라 진화할 수 있을지는 아직은 미지수다. 한 가지 예외만 발견되어도 탄탄했던 법칙은 무너진다. 그럼에도 과학적 연구 방법을 꼼꼼하게 읽어보게 된다. 오컴의 면도날이든 최선의 선해이든 지금은 번드르르한 말보다는 논리와 합리가 통하는 이야기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존재의역사 #인공지능 #진화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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