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

제목[정치철학] ‘민주화’ 이후에도 민주주의는 문제다2025-02-24 0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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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란 무엇인가3. 민주주의는 도달할 목표인가

 

앞선 두 장에서 저자는 다수결과 대의제를 민주주의와 분리하여 볼 수 있다고 주장했다. 다수결과 대의제는 우리가 근대 민주주의의 가장 큰 특징들로 여기고 있던 점들이기에 저자의 주장은 충격과 파격을 넘어 일종의 통쾌함마저 주었다. ‘민주화를 이루었다고 일컬어지는 시대에 살면서, 매번 선거에 관심을 기울이고 한표를 행사하면서도 다수결과 대의제 안에서 우리의 요구가 적절하게 관철되고 있다고 느끼지는 못했기 때문이다.

 

3장에서 저자는 민주주의를 발전론과 연결하는 관점을 비판한다. 특정 정당이나 정치인의 집권을 민주주의로 해석하거나, 다른 정당의 집권을 민주주의의 후퇴로 보는 견해에도 회의적이다. 오히려 민주주의와 독재를 반대말로 사용해 온 용법을 다시 생각해 보자고 제안한다.(83) ‘민주화이후에도 여전히, 혹은 새롭게 문제가 제기되는 상황에서 저자는 민주주의의 후퇴를 말하지 않는다. 다만 민주주의에 관한 물음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이 책이 쓰인 시기는 민주정부를 자임하던 김대중, 노무현 정부 이후 이명박 정부가 집권하던 때였다. 한국 사회의 제도는 안정되어 보였지만, 보수 정권의 재등장을 바라보는 지식인들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당혹감은 곧 냉소로 변했다. ‘민주정부집권 동안에도 계속된 대규모 사회운동에 대해서도 부정적이었다. 민주주의의 성공을 제도의 문제로 보고, 더 이상 새로운 운동 주체들이 등장해야 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주로 언급된 최장집을 비롯한 지식인들이 민주주의의 실패를 진단하면서, 민주주의가 퇴행했다고 말할 때 그들은 변화를 읽어내지 못했다. 운동도, 제도도, 사람도 변했는데, 발전론 안에서 단선적으로만 사고하는 이들은 그런 변화를 알아볼 수 없었다. 다만 저자는 민주화 이후 민주주의라는 최장집의 문제 설정에서 민주주의는 민주화 이후에도 계속 문제가 된다는 중요한 통찰을 발견한다.(90)

 

최장집의 민주화 이후 민주주의론은 발전주의 도식인 민주주의 이행 패러다임에 대한 비판도 담고 있다는 점에서도 흥미롭다.(91) 다만 그 비판은 민주주의 이행 패러다임자체를 향하지는 않았다. 그들의 이후는 발전론 밖의 이후가 아닌 발전의 한 단계로 상정된 이후였다.(92) 더 이상 선진 민주주의 국가에서도 발전의 모델을 찾을 수 없다면, 이제 민주주의의 완성이라는 관념에 도전하는 시도로 민주주의 이후 민주주의론을 볼 수는 없을까.

 

저자는 민주주의의 종언문제에 직면하기 위해 프랜시스 후쿠야마에 관한 데리다의 논평을 예로 가져온다.(93) ‘역사의 종언을 언급한 후쿠야마의 책을 논평하며 데리다는 종언 이후의 역사를 제안한다. 이 제안을 민주주의에도 적용할 수 있다. 민주주의 개념 자체가 어떤 완성 모델을 갖지 않으며, 현재의 체제가 실패한 곳에서 새롭게 정의될 뿐이다. 데리다식으로 말한다면 사건타자성의 도래개방으로 설명되는 도래할 민주주의이다.(95)

 

민주화 이후의 불만은 대의제를 다시 사유하게 만들기도 한다. 과거 민주화 시대의 욕망이 진정한 대의에 있었다면, 2000년대의 문제들은 대의제에 대한 무관심과 불신, 적대감이었다. 민주화의 성과인 대의기구들은 2000년대의 사안들에 무능했다.(99) 저자는 대의제의 발달과 대의제로부터 대중이 추방되는 일이 한국 사회에서 동시에 일어났다고 본다. 대의제 프레임에 속하지 않는 이들이 대의제 발달과 더불어 증가했다.(100)

 

민주노총의 합법화와 노조 가입 불가능한 비정규직의 폭증 같은 문제들이 확산한다. 이 문제들은 민주주의 대 독재의 문제였다기보다, 민주주의와 민주주의의 충돌이었다. 이런 충돌은 민주주의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계속 다시 끌고 온다.(102) 민주화를 요구하던 80년대에 상상했던 민주주의는 이미 한계가 드러났다. 이제 민주화 이후 대의제 안에서 추방과 배제를 경험한 대중들에게서 새로운 민주주의에 대한 상상이 시작되어야 한다.

 

저자는 책의 처음부터 일관되게 이 새로운 대중들의 저항운동에 주목하고 있다. 다수결에서 밀려나고 대의제의 바깥에서 등장한 이들. 민주화의 답을 대의제 강화로만 본다면, 이들의 저항운동이 가진 민주주의의 가치를 제대로 이해하기 어렵다.(103) 이 대중들은 과거 민주화를 요구하던 세대들과는 다르다. 대표되거나 통제되지 않으며, 익명성이나 식별불가능성으로 나타나며, 정체가 모호한 존재들이다.(105~106)

 

특히 (이명박 정부의 미국산 쇠고기 수입 문제를 쟁점으로 삼은) 2008년 시위는 일상의 코뮨들, 일상의 네트워크가 가진 정치성을 잘 보여주었다. 삶과 운동, 민주주의의 기획이 서로 일맥상통했다.(108) 저자의 말대로 2008년의 시위가 대중들이 자기 삶을 가꾸는 힘이 또한 체제의 무능을 고발하는 힘이고, 또 새로운 권리를 창안하는 힘이 된다, 이 말은 202412월 계엄 사태 이후 대중들의 움직임에도 적용될 수 있다.

 

3장을 끝내며 저자는 민주주의가 좋은 목자를 고르는 일이 아니라, 대중이 양떼로 전락하지 않는 일이라고 강조한다. 자기 삶을 관리해 줄 좋은 대표를 찾는 일을 민주주의로 간주해서는 안 된다. ‘자기 삶을 가꾸는 능력이 없을 때, 대중은 삶을 지배하는 권력에 자신을 의탁할 수밖에 없다.’(109) 민주주의의 역량은 엘리트의 힘이 아닌 데모스의 힘이다. ‘데모스의 힘은 권력의 유혹이나 공포에 맞서 자기 삶을 꾸려가는 능력의 크기로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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