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끝의 버섯》 2부 진보 이후에: 구제 축적 (7, 8, 9, 10장) 오리건주의 송이버섯은 아시아와 매우 관계가 깊다. 저자는 오리건주 숲에서 송이버섯을 채집하는 아시아인을 크게 두 부류로 구분한다. 하나는 이주 역사가 오래된 일본계 아시아인이고, 다른 하나는 주로 20세기 중후반에 이주한 동남아시아계이다. 송이버섯은 일본에서 선물로 인기가 높은 품목이므로, 일본 경제의 성장, 나아가 아시아 전체의 경제 성장과 관련된다. 어떻게 미국은 일본에 버섯을 공급하는 공급지가 되었을까? 중국인을 추방한 1882년부터 일본인 이민이 금지된 1907년 사이 주로 이주한 일본계 이민자들은 미국 정부가 시행한 강력한 동화 정책의 대상이었다. 시민권과 토지 소유권에서 배제되고 일본이 미국을 침공한 제2차 세계대전 시기에는 격리 수용되기도 했지만, 그들은 ‘일본식 감수성을 가진 열정적인 미국인’이었다.(183쪽) 전후 도시에서 자리 잡은 후 그들은 취미처럼 일본문화를 즐겼고, 송이버섯 채집도 거기에 포함되었다. 일본계 이민자들과 달리 동남아시아계 이민자들은 공공복지가 축소되고 국가가 동화 정책을 시행할 수 없는 시기에 주로 이주했다. 그 사이 국가와 국민의 관계는 크게 변화했고, 미국은 더 이상 이민자들을 ‘미국인’으로 만들려 애쓰지 않았다. 동남아시아계 이주민들이 미국 시민권을 얻기 위한 조건은 자유를 향한 열정이었으며, 이는 곧 불안정한 삶과도 연결되었다. 그들은 종족적·정치적 입장을 유지한 채 미국인이 되었고, 알아서 생계를 유지해야 했다. 저자는 지금 미국을 서로 동화되지 않은 혼합성의 공간이자, 자본주의의 불안정성을 드러내는 일종의 폐허라고 이해한다.(182쪽) 자유를 찾아왔고 동화되지 않은 아시아인과 다문화정책에 불만을 품고 저항할 자유를 호소하는 시골의 백인들이 미국 안에서 살아간다.(198쪽) 저자는 미국에서 동화가 해체된 이후 창발된 새로운 형성체에 주목한다. 자본주의의 폐허를 메우는 존재는 자본주의가 생산하지 않은 ‘구제 축적’에서 나타난다. 오리건주의 숲에서 시작되어 일본까지 이어지는 송이버섯의 글로벌 공급사슬은 전후 일본이 어떻게 공급사슬을 확장하면서 경제 성장을 이뤘는지를 짐작하게 해 준다. 저자는 각 지역의 경제 상황과 역사를 패치로 이어 붙이며 이 ‘번역’의 과정을 조망한다. 19세기 중반 미국의 ‘흑선’은 에도만에 위협을 가하며 개항을 요구했고, 강제 개항했던 일본은 20세기 후반 강력한 경제력으로 미국을 위협하는 ‘역흑선’을 보여준다.(205쪽) 송이버섯 공급사슬은 일본의 경제 성장으로 형성된 많은 글로벌 하청 방식 중 하나이다. 일본은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국가뿐 아니라 미국까지도 이 글로벌 공급사슬로 연결했다. 미국은 일본의 성장으로 인해 압박감과 공포를 느꼈고, 20세기 후반에는 이 공급사슬과 구제 축적의 특정한 형식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이 형식의 목적이 비즈니스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의 일부였다는 사실은 그 과정에서 잊히기 시작했다.(217쪽) 1980년대 들어 공급사슬은 전 세계로 확대되었지만, 일본 경제는 부동산과 주식 폭락, 불황, 아시아 금융 위기 속에서 세계 경제에 미치는 영향력이 약화했다. 그럼에도 일본과 미국의 리더십은 변화했다. 영세 제조업체와 디자이너를 연결하며 성공한 브랜드 나이키가 대표적 사례이다. 특히 송이버섯 공급사슬에서는 미국이 관리자가 아닌 공급자 역할을 맡는다. 오리건주의 숲은 결국 세계 경제의 불확실성이 만들어낸 창발의 공간이었다. 저자는 송이버섯이 사용가치나 교환가치보다는 선물로써 관계를 만드는 가치가 있다고 본다. 송이버섯의 판매자(중매인)는 판매 자체보다 관계 유지에 목적을 둔다. 일본뿐 아니라 송이버섯을 채집하는 채집인들에게도 버섯의 가치는 사용가치와 교환가치를 넘어선다. 그들에게 송이버섯은 자유의 트로피이자, 자유의 일부분이다. 이 때문에 송이버섯의 공급사슬에서는 소외가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인간에게도, 비인간(버섯)에게도. 상업적 공급사슬을 따라 이동하면서도 저자 애나 칭의 관심은 ‘구제’를 벗어나지 않는다. 구제는 보르네오의 숲을 파괴하지만, 숲이 파괴된 뒤에도 사람들이 살아남는 모습을 보여준다. 저자는 여기서 ‘구제 리듬’을 읽어낸다. 진보에 대한 낙관이 사라진 세계에서 우리에게 남은 것은 규칙 없이 조율된 구제뿐이다. 경제 성장과 삶, 생계 사이의 균열을 메우는 존재는 구제의 리듬이다. 자본주의가 훼손된 곳에서 살아가야 하는 우리가 주목할 곳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