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

제목[푸코+] 미국의 신자유주의와 호모 에코노미쿠스(『생명관리정치의 탄생』 9, 10장)2026-04-17 2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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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자유주의와 노동의 추상화

푸코는 미국의 신자유주의에 관한 논의를 시작한다. 푸코가 보기에 미국의 20세기 초중반은 “케인즈주의 정책, 전쟁에 관련된 사회계약, 경제적·사회적 프로그램을 통한 연방행정의 증대”에 “반대”함으로써 자유주의 사상이 형성하고 발달한다. 중요한 것은 미국식 신자유주의가 유럽적 신자유주의와 가지는 차이점이다. 미국의 자유주의는 “존재방식이자 사유방식”이다(306). 그것은 기술이기보다 관계의 유형이다. 이는 미국 독립의 출발점이 자유주의적 요구―경제적 요구―였다는 점, 미국에서의 모든 논의 및 정치적 선택에서 자유주의가 반복―노예의 문제나 개인과 주 또는 주와 연방국가와의 관계 등―되었다는 점, 이러한 항구적 토대 위에서 개입주의적 정책이 출현했다는 점에 근거를 둔다. 푸코는 미국의 자유주의가 “항시 재활성화되는 유토피아의 중심 같은 것”이라고 표현한다(306). 미국의 신자유주의 분석을 위해 푸코는 ① 인적자본론, ② 범죄성과 범법행위라는 두 개의 요소에 초점을 둔다고 밝힌다. 인적자본론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며 푸코는 고전 정치경제학을 언급한다. 상품 생산에 있어 고전 정치경제학은 토지, 자본, 노동에 천착했지만, 정작 “노동 자체를 분석하지 않았다”(308). (애덤 스미스의 경우) 노동분업을 다루거나, (리카르도의 경우) 노동시간으로 축소시키거나, (케인즈의 경우) 수동적인 생산요소로 보거나 등과 같은 노동이라는 “백지”(308)에 관해 신자유주의자들은 경제분석의 영역으로 재도입을 시도한다. 이는 마르크스가 자본주의 자체의 오류로 지적한 노동의 “추상화”(312), 즉 구체적 노동의 노동력으로의 변형, 시간에 의한 측정, 임금으로의 지불의 과정을 거치는 절단된 노동과는 다르다. 신자유주의자들에게 이 추상화는 현실 자본주의에서 기인하는 것이 아니다. 


노동에 대한 경제적 분석 

푸코가 “본질적인 인식론적 변동”(313)이라고 칭하는 신자유주의자들의 경제적 담론 내에서 노동 자체가 추상화되는 방식에 대한 이론적 비판은 (라이오넬 로빈스의) 경제학에 대한 정의로부터 출발한다. “경제학이란 인간행동의 과학, 서로 배타적 쓰임새를 갖는 희소 수단과 목적 간의 관계로서의 인간행동을 연구하는 과학이다”(314). 경제의 임무는 인간행동의 형태, 인간행동의 내적 합리성을 분석하는 것이다. 결국, 인간행동의 내적 합리성에 대한 분석과 경제적인 방식으로의 노동 분석의 접점은 노동자에 ‘의한’ 노동에 노동을 위치시키는 것이다. 노동에 대한 경제적 분석은 노동자를 능동적인 경제 주체로 만든다. 이때 노동자는 노동의 능력을 ‘탑재’한 “기계”(317)로서 소득의 흐름을 발생시킨다. 이 기계는 (적당한 표현일지 모르겠으나) 감가상각이 있다. 일을 시작한다, 점점 임금이 상승한다, 노쇠해진다, 임금이 감소한다. 여기서 소득의 흐름을 낳는 “기계/흐름의 총체”(318)는 종래의 노동력이라는 관념이 아니라 노동자 자신이 “일종의 기업으로서 등장하는 능력자본”(319)과 같다. 그렇게 기업이라는 관념이 다시 등장하고 극대화된다. 이를 푸코는 신자유주의에서의 호모 에코노미쿠스로의 회귀라고 명명한다. 


호모 에코노미쿠스와 인적자본

호모 에코노미쿠스는 과거의 교환하는 인간이 아니다. “기업가, [그것도] 자기 자신의 기업가”다(319). 기업활동처럼 소비를 ‘하며’ 생산한다. 이제 노동―신체적·정신적 요소들의 총체―에 대한 임금―자본의 산물이자 결과물―은 인적자본이다. 신자유주의자들은 고전 경제학에서의 공백이었던 ‘노동’ 대신 인적자본을 연구하고 이를 통해 경제분석을 한다. 인적자본은 유전과 관련된 선천적 요소와 부모의 양육과 밀접한 후천적 요소를 가진다. 이외 또 다른 중요한 요소로 투자로서의 이주 가능성, 즉 가동성이 있다. 결국, 이 모든 것들은 경제메커니즘의 효과가 아니라, “투자와 소득으로부터 형성되는 자기 자신의 기업이라는 관점에 입각해” 분석해야 한다(327). 푸코는 신자유주의자들이 1930년대 이래 서구 경제사와 일본 경제사를 재검토하며 “인적자본”(329)에 대해 분석했음을 지적한다. 이런 이론적·역사적 분석을 통해 경제성장 정책의 원리는 선진국에서 그러하듯 사회정책, 문화정책, 교육정책의 방향이 결정되는 것과 관련될 뿐 아니라, 제3세계의 경제메커니즘의 작동 불능이 ‘인적자본’과 유관하다는 것을 알려준다. 


경제적 형식의 일반화와 행위에 대한 관여

10장에서 푸코는 다시 독일 질서자유주의자들을 상기시킨다. 그들은 “‘기업’형식의 일반화”(336)를 통해, “시장을 향하도록 만들어진 사회이자 시장에 의해 야기되는 가치나 생활에 관련된 효과들을 벌충하는 사회”를 구상한다(337). 한편, 미국의 경우는 시장의 경제적 형식을 일반화한다는 점에서 다르다. 미국의 신자유주의에서는 첫째, 사회관계와 개인행동의 인지 가능성의 원리로 기능한다. 이에 대한 예시로 푸코는 양육, 출생, 결혼을 든다. 둘째, 경제적 틀을 통해 정치행위와 통치행위에 대한 부단한 비판을 정착시킨다. 시장의 일반적 형식이 행정과의 논쟁에서 판별의 수단이자 도구가 되는 것이다. 여기서 푸코는 호모 페날리스(18세기), 호모 크리미날리스(19세기)를 거쳐 다시 호모 에코노미쿠스를 소환하게 되는 “범죄의 인간학”(349)을 이야기한다. ‘범죄란 어떤 것인가’에 대한 물음의 해답은 “주체의 행동양식을 경제적인 것으로 만드는 것”(352)에 있다. 형별체계는 범죄를 정의하고 범죄자를 문제시 삼는 게 아니라 ‘행위’에 관여하면서, 범죄의 공급에 대처하게 된다.


법률의 인포스먼트와 마약 ‘시장’

법률의 인포스먼트(enforcement)는 “범죄시장에 대한 행위 도구의 총체”다(357). 법률의 인포스먼트는 범죄의 공급을 언제나 예측할 수 없다는 점과 비용이 든다는 점에서 중립적이지도 않으며 계속해서 확장할 수도 없다. 따라서 신자유주의에서 형벌정책은 범죄의 절멸을 지향하지 않는다. 오히려 범죄의 공급곡선과 부정적 수요곡선 간의 균형을 목표로 삼는다. 푸코는 이에 관한 예시로 마약 문제를 가져온다. 1960-70년대까지 마약 공급, 마약범죄의 공급, 마약과 관련된 비행의 공급을 단순히 축소하려고 했던 접근은 마약의 단가를 상승시키고, 마약에 대한 독점 및 과점 효과에 따른 가격 상승을 수반했지만, 마약 소비와 수요는 줄어들게 하지 못했다. 이러한 마약 소비의 “비탄력성”(361)은 형벌로서 통제나 마약 공급 자체를 제한하려는 게 아니라 소비자들의 “경제적 행동양식”(363)을 관리하게끔 변모한다. 마약 중독자들에게는 저렴한 가격으로 마약을 공급하고, 마약 중독자가 아니지만 마약을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는 비싸게 공급하는 형태로 “마약 공급을 역방향으로 이동”(361)시키는 것이다. 이제 형벌행위는 가능한 이득과 손실의 게임과 관련행위, 즉 환경행위로 이행한다. 개인, 사회에 직접 개입하는 게 아니라 그 게임이 행해지는 환경에 개입하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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