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관리정치의 탄생》 7강, 8강 7강과 8강에서 푸코는 자본주의의 종언이 아닌 존속을 모색하는 독일 질서자유주의자들의 활동을 다룬다. 이 새로운 자유주의는 국가 통치성의 후퇴와 함께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과 미국으로 확산한다. 이 과정은 마르크스에 대한 경직된 해석으로는 이해하기 어렵다. 경제를 통해 국가를 재건하려던 독일 질서자유주의자들은 파격적인 방식으로 경제문제를 다룬다. 동시에 개입주의라는 독일의 오랜 경제정책을 보수하며, 혁신한다. 독일 질서자유주의자들에게 개입주의는 시장경제에 맞서는 일이 아니라, 시장경제를 가능하게 하는 역사적·사회적 조건이었다. 신자유주의에는 경쟁 메커니즘을 작동하기 위한 조절과 반-경쟁 메커니즘을 소거하기 위한 사회정책이 필요했다. 기업모델에 기초한 사회 형식화와 법권리의 문제가 사회정책의 두 축이다. 토대(하부구조)와 상부구조의 관계를 마르크스주의자들과 다르게 본 질서자유주의자들은 오히려 사법이 경제에 형식을 부여한다고 주장했다. 무엇보다 하나의 자본주의가 존재한다는 마르크스주의적 관점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마르크스주의에서 하나의 자본주의는 자본주의의 종언을 향해 간다. 질서자유주의자들은 이 자본주의의 역사를 둘러싼 논쟁에서 상상력을 동원하여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한다. 이를 통해 그들은 자본주의가 존속할 수 있음을 증명하려 했다. 우선 경쟁-시장논리는 모순적이지 않았으며, 사법-경제적 관계의 총체가 존재하고 있었음을 입증해야 했다. 본래적 자본주의는 없으며 모든 자본주의는 하나의 특이한 자본주의일 뿐이라는 질서자유주의자들의 관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 관점을 바탕으로 그들은 새로운 자본주의를 발명하려 했다. 새로운 자본주의(신자유주의)에서는 시장법칙을 통한 개입이 가능하도록 제도를 정비해야 했다. 최소한의 경제적 개입주의와 최대한의 사법적 개입주의가 필요했다.(242쪽) 그들에게 제도의 혁신은 법치국가, 즉 법을 경제에 적용하는 문제였다.(243쪽) 법치국가는 전제국가와 내치국가에 대립하며, 정당한 방식으로 공권력을 강제하는 국가이다. 내부에서는 주권적 표현과 행정적 조치들이 구분되며, 제도를 통해 시민들과 공권력을 사법적으로 중재할 수 있다. 질서자유주의자들은 법치국가의 일반적 원칙들로 자본주의를 쇄신하려 했으며, 히틀러적 국가도 거부하려 했다.(249쪽) 법치국가 내부에서 경제는 하나의 게임이며, 게임 주체는 개인들 혹은 기업들이다. 관건은 관리가 아닌 틀을 만드는 일이다. 사회 내에 ‘기업’이라는 역동적 형태가 발달할수록 충돌 가능성과 소송 가능성은 증대한다. 사회적 조절은 사회적 개입주의를 필요로 한다. 경제 주체가 자유로워질수록 사업관도 증가한다. 경제행위가 탈관료화되면 기업의 역동성이 증가하고, 더 많은 사법적 심급이나 중재의 심급이 필요해진다. 법률이 형식화될수록 사업적 개입의 수는 증가한다. 공권력이 통치 개입이 형식화될수록 사법 개입은 증가하고, 재판이 편재하는 공적 서비스가 된다. 8강에서 푸코는 신자유주의의 확산을 다루기 전에 ‘국가 비판’이라는 문제를 언급한다. 국가 비판에는 국가의 제한 없는 내적 확대력과 국가형태의 근친관계라는 두 가지 요소가 작동한다. 푸코는 이런 식의 국가 비판이 파시즘 시대에 정식화되었다고 본다. 사회주의 비판이 문제시되었던 시대에 독일 질서자유주의에서 국가 비판의 문제의식이 나타났다는 주장이다.(268쪽) 나아가 하이에크는 나치즘을 사회주의적 경향의 불가피한 결과로 본다.(270쪽) 물론 푸코는 복지국가나 후생국가를 전체주의 국가와는 다른 맥락에서 본다. 전체주의 국가는 국가의 강화가 아닌 제한·약화·종속화를 구성한다. 또한 푸코에게 중요한 문제는 국가/국가이성의 발전이 아니라 쇠퇴였다. 파쇼화는 국가가 아닌 국가 외부에 존재하며, 국가의 쇠퇴와 해체에 관련된 문제이다.(273쪽) 푸코가 주목하는 독일 모델은 비스마르크로부터 히틀러로 이어지는 모델이 아니라 신자유주의적 통치성이라는 독일 모델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프랑스의 경제적·사회적 목표는 완전고용 유지와 평가절하의 영향을 피하는 데 있었고, 국민의 연대라는 전쟁 모델 기술이 필요했다. 프랑스 사회보장제도의 메커니즘을 고안한 피에르 라로크는, 사회보장제도가 임금을 지불하는 특정한 방법이라 주장했다. 그는 이 방법이 임금 상승을 억제하며, 사회적 대립을 완화하고, 임금 인상 요구를 덜 부각시켜 경제적 부담을 완화한다고 보았다.(286쪽) 1976년 라로크의 주장을 반박하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사회보장으로 인해 노동비용이 상승하고, 고용이 제한되며, 실업이 증가하고, 국가경쟁력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주장이었다. 연구에 따르면 사회보장제도가 경제적 파급 효과를 미쳤음은 물론이고 소득 분배에서도 악영향을 미쳤다. 연구의 결론은 사회보장이 경제적 중립 상태에 있어야 한다는, 독일 질서자유주의자들의 주장과 유사한 주장으로 이어진다. 이에 앞서 1972년 경제장관 데스탱은 신자유주의 모델을 프랑스에 적용하는 방식을 정식화했다.(289쪽) 데스탱은 재분재, 수당, 조절이라는 국가의 3대 경제적 기능을 문제 삼았다. 경제적인 것과 사회적인 것 사이의 연결 해체를 주장한 그 역시 경제를 하나의 게임으로 보았다. 국가는 경제 게임의 규칙을 규정하고 보장해야 한다. 경제적인 것과 사회적인 것의 연결이 끊어진 지점에서 참가자는 (원하지 않더라도) 게임에서 떠날 수 없도록 보호된다.(291쪽) 게임에서 배제되지 못하도록 하는 비-배제 조항은 미국 신자유주의 ‘부의 소득세’ 기획에서도 확인된다. 부의 소득세는 사람들이 경제 게임에 참여하는 일을 회피하지 못하도록 일정한 소비 수준을 보장한다. 수당을 받느니 차라리 일하기를 원하게 만드는 불균형의 도입이다. 이 정책은 빈곤의 효과 수준에서만 작용하며, 빈곤의 원인에는 무관심하다. 이때 경제적 최하층의 유동 인구는 노동력 축적을 위한 영속적인 예비 노동력으로 기능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