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

제목[푸코+] 도래할 우리에 관하여(<죽음정치> 5장 발제)2026-07-10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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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정치: 증오의 정치에 관하여5장 숨 막히는 한낮

 

정신과 의사였던 파농은 식민지 경험이 인간에게 상처와 질환을 남긴다고 보았다. 음벰베는 파농의 이런 문제의식에 공감한다. 치유를 관계의 회복으로 이해하는 파농의 사유를 이어받은 음벰베는 이 책의 결론에서 삶을 회복할 수 있는 세계의 조건을 묻는다. 지나치게 서구 중심, 인간 중심적인 인본주의에서 벗어난 주체를 어떻게 발명할 수 있을까? 인본주의가 타인을 서술하고 규정하는 권력이라면, 어떻게 그 권력의 영향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음벰베는 오랫동안 인간의 대타자였으며 사물화되었던 네그르의 존재에서 답을 찾기 시작한다. 흑인은 근대 역사에서 약탈 대상인 사물이었다. ‘인간이라는 개념 자체가 네그르에 의해 훼손되며, ‘흑인은 자기 자신 안에 인간의 무덤을 지니게 되었다.(261) 모든 인간의 역사는 이처럼 그 안에 비안간의 역사를 품고 있으며, ‘비인간에 참여하지 않는 인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 역사는 네그르를 변형 가능한, 가소성의 잠재력을 지닌 존재로 만든다.

 

SF를 비롯한 아프로퓨처리즘에서는 과학과 판타지를 결합하여 새로운 흑인의 역사를 만들어낸다. 그 안에서 도래할 생명으로 구현되는 네그르는 지구가 아닌 우주를 거처로 삼으며, ‘인간개념을 거부한다. ‘인간개념을 거부하는 일은 우리를 인간화했던 근대의 지식에서 벗어나려는 노력과 연결된다. 근대 지식은 세계를 평평하고 균일하게 이해하도록 하는 동시에 무엇이든 (심지어 인간마저도) 경제적으로 교환 가능한 세계로 만들었다.

 

노예 교환 경제는 인종 원리 등의 지식을 통해 정당화되었다. 노예를 다른 모든 존재와 구분 짓는 특성은 본원적 양도 가능성이다. 자본주의가 자본주의 이전의 본원적 축적을 통해 가능했다면, 노예는 본원적 양도 가능성을 통해 노예가 되어 자본주의의 본원적 축적에 기여했다. 대서양의 노예 체제는 근대 자본주의 형성에서 중요한 연결고리였으며, 자본주의의 이윤을 극대화한 행성 규모의 축적에서 필수적 존재였다.(273)

 

이 노예의 형상을 박물관에 보존해야 할까? 음벰베는 그런 의견에 반대한다. 박물관은 주체와 객체로 양분되는 불평등의 정신을 확증하는 공간이다. 박물관에 전시된 존재는 생명력을 빼앗겨 사물화되고, 평화와 안식에서도 멀어지며, 분리의 원리 아래 놓인다. 박물관은 살아있었던, ‘권력의 흐름이었던 힘들을 무력화하고 길들이는 공간이다.(275) 이런 제의적 공간에 둔다면 노예의 힘, 스캔들이며 유령적 차원의 힘은 사라져 버린다.

 

음벰베는 차라리 안티박물관이라는 제도를 제안한다. 노예가 자신의 부재를 통해서 박물관에 출몰할 수 있도록, 제도의 방식이 아닌 침입의 방식으로 출현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안티박물관은 쉬운 결론을 방지하는 피난처이며, 인류의 모든 버려진 존재들을 위한 안식처이다. 기억의 역사를 다루는 모든 아카이브 역시 균열에서 근원을 찾아야 한다. 아카이브가 생산하는 근본적 환각을 인정하고, 재현이 최고도의 권위적 행위임을 받아들여야 한다.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 음벰베는 인본주의 비판과 자본주의 비판의 결합을 강조한다. 이 강조는 인간의 취약성을 통한 상호 인정과 인간성 및 민주주의 회복으로 연결된다. 음벰베의 결론은 탈식민과 포스트휴머니즘 사유에 기반한 듯 보이지만, 여전히 서구에서 흑인이 인간으로 인정받는 문제에 매달려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가 말하는 인간이 서구 인본주의에서 말하는 인간과 다르다면, 우리가 회복해야 할 인간성은 무엇이란 말인가.

 

과학기술과 기계에 대한 거부감은 배제당한 존재가 또 다른 배제를 수행한다는 의심으로도 연결된다. 몸과 몸짓에 대한 강조는 실존을 강조하는 일을 넘어 정상적인 몸과 운동성을 강조하는 장애 혐오로 연결될 여지도 있다. ‘생명체 제조’(287)를 죄악시하는 견해가 여성의 출산능력을 신비화하고 착취하는 여성 혐오로 연결될 가능성 역시 마찬가지다. 여성은 흑인보다 오래된 인간 안의 노예였고, 기계는 과거 노예의 지위를 완전히 물려받았다.

 

안티박물관을 통해 노예의 스캔들적이고 유령적인 힘을 보존하겠다던 음벰베의 결론은 식상한 신지유주의 비판이나 인간성 회복, 보편적인 인류의 조건에 대한 평범한 사유를 통해 긴장감을 잃어버린다. 책의 초반 노예제와 함께 시작된 민주주의의 기원을 분석하며 보여주었던 날카로움도 민주주의 위기와 회복에 관한 일반적인 논의들 속에서 뭉툭해졌다. 도래할 우리는 인간일 필요도 없고, 공동체의 일원으로 초대될 필요도 없다. 인본주의의 영향에서 벗어난 주체란 바로 그런 주체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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