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스퍼드세계사 제7장 성장: 사회조직과 정치조직 기원전 1000년~기원후 1350년 제7장은 가족·씨족·부족 같은 친족집단에서 도시·국가·제국, 종교조직과 경제조직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조직이 어떻게 더 크고 복잡한 형태로 성장했는가를 다룹니다. 핵심 논지는 인간이 점점 더 많은 사람과 협력하게 되었고, 작은 조직들이 큰 조직에 흡수되면서 국가와 제국의 규모·부·위계·복잡성·행정 능력이 확대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끊임없는 진보가 아니라 성장과 붕괴, 통합과 분열이 반복된 과정이었습니다.
1. 이야기 여기서 ‘이야기’는 왕권이나 국가를 정당화하는 신화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장 전체를 관통하는 장기적인 성장의 이야기를 뜻합니다. 인간의 협력은 처음에는 가족과 친족을 중심으로 이루어졌습니다. 가족·씨족·부족에서는 구성원들이 혈연, 혼인, 조상에 대한 기억을 바탕으로 서로 협력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친족관계만으로 조직할 수 있는 사람의 수에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이에 따라 인간은 혈연관계가 없는 사람들과도 협력할 수 있는 조직을 만들었습니다. 촌락, 도시, 국가, 제국, 교회, 사원, 상업조직 등이 그것입니다. 이 장은 바로 이러한 비친족 조직의 확대를 성장이라는 관점에서 설명합니다. 기원전 1000년에는 대부분의 사람이 작은 농촌공동체에서 살았고, 세계 인구 중 국가의 직접적인 지배 아래 사는 사람은 소수였습니다. 그러나 기원후 1350년에는 훨씬 많은 사람이 국가·왕국·제국·종교조직의 통치를 받았습니다. 친족집단=>촌락=>도시와 도시국가=>왕국=>제국! 그러나 이 단계가 항상 순차적으로 진행된 것은 아닙니다. 제국이 붕괴하여 수십 개의 작은 국가로 나뉘기도 했고, 작은 도시국가들이 다시 하나의 제국으로 통합되기도 했습니다. 장기적으로는 조직이 커졌지만, 단기적으로는 성장과 쇠퇴가 끊임없이 교차했습니다. *이 장이 제기하는 다섯 가지 질문 1)사회조직과 정치조직은 왜 규모·부·위계·복잡성·효율성 면에서 성장했는가? 2)기원후 175년 이전과 이후의 성장은 왜 달랐는가? 3)성장은 왜 자주 붕괴로 바뀌었는가? 4)같은 시대에도 지역마다 조직 형태가 달랐던 이유는 무엇인가? 5)기원후 175년 이후 가장 강력한 국가의 중심이 왜 유라시아 서부에서 동아시아로 이동했는가? 이 질문에 대한 저자의 큰 결론은, 기원전 1000년부터 기원후 1350년 사이에 사회조직과 정치조직이 농업사회가 도달할 수 있는 구조적 한계에 이르렀다는 것입니다. 로마제국이 먼저 그 한계에 접근했고, 약 1,000년 뒤 송나라가 다시 비슷한 수준에 도달했습니다. 2. 더 크게, 더 넓게, 더 강하게, 더 깊게 1)더 크게: 조직의 규모 확대 인구가 증가하면서 촌락, 도시, 국가, 제국의 규모도 커졌습니다. 더 많은 농업 생산물이 확보되면 농사를 직접 짓지 않는 군인, 관료, 사제, 장인, 상인도 부양할 수 있었습니다. 인구증가와 농업생산 증가는 더 큰 조직을 가능하게 했고, 큰 조직은 다시 관개시설, 치안, 시장, 도로를 관리하면서 더 많은 인구를 부양했습니다. 성장에는 이처럼 생산과 조직이 서로 강화하는 순환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인구와 조직이 커졌다고 해서 모든 사람의 삶이 나아진 것은 아닙니다. 조직의 성장은 계층화, 조세, 노동 동원, 군사복무, 노예제와 불평등을 함께 확대했습니다. 저자는 조직의 발전 정도를 평가하면서 국가의 일 처리 능력과 함께 소득 불평등도 중요한 지표로 다룹니다. 2) 더 넓게: 통치 공간과 연결망의 확대 촌락이나 도시국가는 좁은 범위를 통치했지만, 왕국과 제국은 강과 평야, 산맥, 해안, 초원지대를 가로질러 넓은 영토를 지배했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도로, 역참, 항구, 운하, 문서 행정, 표준화된 화폐와 도량형이 필요했습니다. 교역망도 넓어져 물자뿐 아니라 사람, 기술, 종교, 문자, 질병까지 이동했습니다. ‘더 넓게’는 단순히 국경이 확대되었다는 뜻이 아니라, 서로 멀리 떨어진 지역들이 하나의 정치적·경제적 네트워크 안에 포함되었다는 뜻입니다. 3) 더 강하게: 국가의 추출 능력과 동원능 력 확대 국가가 강해진다는 것은 왕이 개인적으로 강해졌다는 뜻이 아닙니다. 국가는 세금을 걷고, 병사를 모집하고, 법을 집행하고, 명령을 먼 지방까지 전달하는 조직적 능력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초기 국가는 적은 세금만 거두고 지방사회의 자율성을 많이 인정하는 ‘저가국가’였습니다. 반면 고가국가는 관료와 군대, 수도, 도로, 궁전, 성벽 등을 유지하기 위해 많은 재정을 필요로 했습니다. 따라서 고가국가는 더 많은 자원을 거두고 더 많은 조직을 운영하며 더 넓은 지역에 권력을 행사하는 국가였습니다. 기원후 175년경의 로마와 한 같은 고전제국은 이러한 고가국가의 전형을 보여줍니다. 4) 더 깊게: 일상생활에 대한 통치 확대 정치권력은 처음에는 전쟁, 세금, 제사 정도에만 개입했습니다. 그러나 조직이 성장하면서 국가와 종교기관은 토지, 혼인, 상속, 신분, 재판, 노동, 교육, 시장, 달력, 장례와 같은 일상생활 깊숙이 들어왔습니다. ‘더 깊게’는 권력이 사람들의 생활뿐 아니라 사고방식과 정체성에도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사람은 자신을 단지 어떤 가족의 구성원으로만 생각하지 않고, 특정 도시의 시민, 왕의 신민, 제국의 백성, 종교공동체의 신자로 이해하기 시작했습니다. 3. 호모 수페란스 호모 수페란스Homo Superans는 이언 모리스가 사용하는 표현으로, 책에서는 ‘성장하는 인간’으로 설명됩니다. 새로운 생물학적 종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더 큰 사회조직과 정치조직을 만들어내는 인간의 역사적 성향을 가리킵니다. 호모 사피엔스가 ‘아는 인간’이라면, 호모 수페란스는 지식과 기술을 이용해 생산량과 인구, 조직의 규모를 계속 확대하는 인간입니다. 호모 수페란스가 등장할 수 있었던 데에는 두 가지 조건이 있었습니다. 첫째는 호모 사피엔스의 뛰어난 학습·언어·협력 능력입니다. 인간은 경험을 축적하고, 다른 사람에게 지식을 전달하며, 규칙과 제도를 만들 수 있었습니다. 둘째는 빙하기 이후의 비교적 따뜻하고 습한 기후, 즉 ‘긴 여름’입니다. 안정된 기후는 농업과 정착생활, 인구증가를 가능하게 했습니다. 인간의 생산적인 두뇌와 농업에 적합한 기후가 결합하면서 큰 조직이 형성될 수 있었습니다. 농업기술과 운송 기술의 혁신은 수확량을 늘렸고, 더 많은 사람을 먹여 살렸습니다. 인구가 늘자 더 큰 조직이 필요했고, 큰 조직을 유지하기 위해 새로운 법, 행정, 종교, 세계관이 만들어졌습니다. 그러나 모든 해결책은 새로운 문제를 낳았습니다. 생산량 증가는 인구증가로 인구증가는 토지 부족과 갈등을 낳았습니다. 큰 국가는 더 많은 세금과 군대를 요구했습니다. 넓은 교역망은 전염병과 침략의 통로가 되었습니다. 복잡한 행정은 관료제와 지배층을 확대했습니다. 호모 수페란스의 성장은 인간의 협력 능력을 보여주지만, 동시에 지배와 불평등을 확대하는 과정이기도 했습니다. 4. 장소의 힘 성장은 어디서나 동일하게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사회조직과 정치조직은 모든 지역에서 같은 속도로 성장하지 않았습니다. 큰 도시와 국가, 제국은 주로 농업에 적합하고 교통이 편리하며 인구를 집중시킬 수 있는 지역에서 먼저 발달했습니다. 이언 모리스는 이러한 지역을 ‘운 좋은 위도대’라고 부릅니다. 유라시아의 온대지역, 큰 강 유역과 비옥한 평야는 농업잉여를 만들고 대규모 인구를 부양하기에 유리했습니다. 사회조직의 성장은 다음과 같은 공간적 조건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농경에 적합한 토양과 기후, 공급하는 강과 관개 가능성, 곡물과 가축의 생산성, 배나 수레가 이동할 수 있는 교통로, 교역과 군사 이동에 유리한 평야와 해안, 외부 침입을 막거나 통제할 수 있는 지형입니다. 농업마을이 생긴 뒤 군주·귀족·사제·문자·조세를 갖춘 저가국가가 등장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다시 저가국가가 수천만 명의 인구와 거대한 군대·관료제·엘리트 문화를 가진 고가국기(제국)으로 성장하는 데도 수천 년이 필요했습니다. 따라서 장소는 가능성을 제공하지만 결과를 자동으로 결정하지는 않습니다. 같은 좋은 환경에서도 어떤 지역은 통일제국을 만들었고, 다른 지역은 여러 도시국가로 분열되었습니다. 지리와 함께 전쟁, 기술, 제도, 종교, 우연한 사건이 작용했습니다. 5. 기원전 1000년의 세계 1)기원전 1000년경 농민들은 이미 세계에서 경작에 적합한 토지 대부분에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세계 인구의 95퍼센트 이상이 농민이었지만, 그 절대다수는 강력한 중앙정부가 없는 비교적 단순한 공동체에서 살았습니다. 수렵채집민의 비율은 세계 인구의 1퍼센트 이하였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따라서 이 시기의 세계는 농경 세계로 아직 국가의 세계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대부분 농민은 소규모 촌락, 씨족, 부족, 지방공동체에 속해 있었습니다. 2) 친족집단과 비국가 농경사회 소규모 촌락에서는 친족과 관습이 질서를 유지했습니다. 중앙정부가 모든 지역에 법을 집행하거나 정기적으로 세금을 걷는 경우는 드물었습니다. 이 단계에서는 통치자가 있어도 국가가 주민의 일상생활을 세밀하게 관리하지 못했습니다. 3) 아그라리아와 저가국가 저자가 소개하는 ‘아그라리아Agraria’는 전형적인 전근대 농경국가의 모형입니다. 위에는 군인·행정가·성직자·상인 등 소수의 지배층이 있고, 아래에는 서로 분리된 다수의 농민공동체가 존재합니다. 이 국가는 세금을 걷고 기본적인 평화를 유지하는 데 관심을 두었지만, 농민들의 생활 전반을 통제하지는 못했습니다. 이러한 체제가 저가국가입니다. 국가가 적게 거두고, 적게 쓰며, 제한적으로 통치하기 때문입니다. 4) 이집트와 주나라 기원전 1000년경 이집트는 강력한 왕권과 오랜 국가 전통을 가지고 있었지만, 현대국가처럼 전국에 동일한 법과 행정을 강제할 수는 없었습니다. 주나라도 정복지를 직접 통치할 행정 능력은 부족했습니다. 왕은 영토를 친족과 제후들에게 나누어 주고, 전쟁 때 병력을 제공받는 방식으로 통치했습니다. 중앙정부가 직접 세금을 걷고 지방을 관리하는 것이 아니라, 지방 제후에게 통치를 맡기는 저비용 구조였습니다. 5) 목축민의 이동성 확대 기원전 1000년 이후 아라비아에서는 낙타 이용이 확대되고, 유라시아 스텝에서는 장거리 이동이 가능한 말이 육종되었습니다. 이 변화는 목축민의 이동성과 군사력을 크게 높였습니다. 농경제국과 목축민은 서로 대립하기도 했지만 교역하고 협력하기도 했습니다. 곡물과 직물, 금속제품은 농경지역에서 초원으로 이동했고, 말과 가축, 군사기술은 초원에서 농경지역으로 이동했습니다. 6) 장기적 방향 기원전 제1천년기의 기본적인 정치역학은 도시국가들의 통합과 해체였습니다. 여러 도시국가 중 하나가 다른 도시를 정복하여 큰 왕국을 만들기도 했고, 제국이 붕괴하여 다시 작은 도시국가들로 갈라지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보면 큰 국가가 작은 국가를 흡수하는 방향이 우세했습니다. 6. 기원후 175년의 세계 1) 고전제국의 시대 기원후 175년경은 로마제국, 한제국, 파르티아·쿠샨 등 고전기 대제국이 유라시아를 지배하던 시기입니다. 기원전 1000년에 비해 세계 인구는 약 1억 2,000만 명에서 2억 5,000만 명으로 증가했고, 국가 안에서 사는 사람은 2,000만 명 이하에서 약 2억 명으로 늘어났습니다. 이는 단순히 인구만 늘어난 것이 아니라, 대부분의 인구가 점차 촌락과 부족이 아닌 국가·왕국·제국의 통치 아래 들어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2) 저가국가에서 고가국가로 기원후 175년의 가장 큰 변화는 저가국가가 고가국가로 성장했다는 것입니다. 고가국가는 다음과 같은 조직을 유지했습니다. 상비군과 국경수비대 전문 관료와 세금 징수조직 수도와 지방행정기관 도로와 역참 공공건축물과 성벽 화폐와 법률 국가 의례와 종교시설 이러한 제도를 운영하려면 많은 비용이 들었고, 국가는 농민과 도시민에게서 더 많은 세금과 노동력을 거두어야 했습니다. 3) 로마제국 로마제국은 지중해를 중심으로 도로, 도시, 군대, 조세, 시민권, 법률을 결합했습니다. 로마는 정복지를 단순히 약탈하는 데 그치지 않고 지방 엘리트를 제국의 통치체제에 편입했습니다. 로마제국은 순수 농업경제에 기초한 사회가 도달할 수 있는 조직적 상한에 접근한 것으로 평가됩니다. 그 이후 송나라가 비슷한 수준에 도달하기까지 약 1,000년이 걸렸고, 산업혁명 이전에는 어느 사회도 이 농업사회의 한계를 완전히 넘지 못했습니다. 4) 한제국과 동아시아 한제국도 황제, 관료제, 조세, 군역, 문서행정에 기반한 고가국가였습니다. 중앙정부는 지방관을 파견하고, 농민과 토지를 파악하여 세금과 군사력을 동원하려 했습니다. 로마와 한은 서로 다른 정치문화와 제도를 가졌지만, 넓은 영토와 수천만 명의 인구를 관리했다는 점에서 농경국가의 조직적 절정을 보여줍니다. 5) 스텝 목축민의 조직화 농경제국만 성장한 것은 아닙니다. 유라시아 초원의 목축민들도 더 큰 부족연맹과 정치조직을 만들었습니다. 기마전술과 이동성은 초원세력이 농경제국을 위협하거나 농경제국과 대등하게 협상할 수 있게 했습니다. 농경제국은 초원세력에게 공물과 교역품을 제공하기도 했고, 초원세력은 말과 군사력을 제공했습니다. 따라서 농경세계와 유목세계는 분리된 두 세계가 아니라 서로를 변화시킨 관계였습니다.
7. 기원후 1350년의 세계 기원후 175년 이후 로마·한·쿠샨·페르시아 같은 고전제국들은 위기에 빠졌습니다. 대략 200년에서 700년 사이에 여러 대제국이 붕괴하고, 그 자리를 더 작은 저가국가들이 대신했습니다. 제국 붕괴에는 내부 정치갈등, 재정압박, 유목민의 공격, 인구 이동, 전염병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습니다. 유목민의 장거리 이동은 동서의 병원체를 섞었고, 면역력이 없는 인구집단에 새로운 질병을 퍼뜨렸습니다. 국가가 무너진 곳에서는 종교조직이 사회적 공백을 메웠습니다. 수도원, 교회, 사원과 종교공동체는 식량공급, 구호, 교육, 문서보존, 분쟁조정, 방어를 담당했습니다. 기독교와 대승불교가 고대제국의 위기 속에서 신자를 크게 늘릴 수 있었던 것도 종교가 단순히 구원을 설명한 것이 아니라, 무너진 사회에서 실제 공동체와 질서를 제공했기 때문입니다. 고전제국 붕괴 이후 유라시아 서부에서는 로마제국을 재건하려는 여러 시도가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서로마제국의 옛 영토는 여러 왕국과 영주권으로 분열되었습니다. 반면 동아시아에서는 수나라가 중국을 재통일했고, 당나라와 송나라로 이어지는 강력한 국가체제가 발전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세계의 부와 조직력의 중심이 점차 지중해와 서아시아에서 동아시아로 이동했습니다. 송나라는 거대한 관료제, 도시, 상업, 화폐경제, 운하, 인쇄술, 교육제도를 발전시켰습니다. 북부의 도시와 남부의 곡창지대를 연결하는 교통과 행정체제는 막대한 인구를 부양했습니다. 송나라는 기원후 2세기 로마제국이 도달했던 농경사회의 조직적 상한에 다시 접근했습니다. 그러나 송 역시 북방 세력의 압박, 영토의 분할, 재정과 군사 문제를 극복하지 못했습니다. 1206년 칭기즈 칸이 몽골 부족들을 통합한 뒤, 몽골제국은 중국에서 동유럽에 이르는 광대한 지역을 연결했습니다. 몽골의 정복은 엄청난 파괴를 가져왔지만, 제국이 안정된 뒤에는 상인, 사절, 종교인, 기술자와 정보의 이동이 확대되었습니다. 초원과 농경지대, 중국과 서아시아, 동유럽이 이전보다 훨씬 긴밀하게 연결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연결은 흑사병 같은 전염병이 빠르게 확산되는 조건도 만들었습니다. 성장한 조직과 교역망은 번영의 기반이면서 동시에 위기의 전달망이었습니다. 기원전 1000년에는 약 열 명 중 한 명만이 정부의 통치 아래 살았지만, 기원후 1350년에는 적어도 열 명 중 아홉 명이 어떤 형태로든 정부의 지배를 받았습니다. 같은 기간 도시, 국가, 종교집단, 교역의 규모도 약 열 배 증가했습니다. 이 변화는 이후 스텝지대와 해양을 연결하고 근대 세계가 등장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습니다.
8. 결론 기원전 1000년부터 기원후 1350년까지 사회조직과 정치조직은 장기적으로 성장했습니다. 가족과 친족을 넘어 비친족 협력이 확대되었습니다. 촌락이 도시와 국가로 통합되었습니다. 국가는 더 많은 세금과 병력을 동원했습니다. 제국은 더 넓은 영토와 다양한 민족을 지배했습니다. 종교와 상업조직도 국경을 넘어 성장했습니다. 더 많은 사람이 정부의 통치 아래 들어갔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성장은 곧바로 자유, 평등, 행복의 성장을 의미하지는 않았습니다. 조직의 확대는 노예제, 전쟁, 조세, 강제노동, 신분제, 성별 위계도 함께 확대했습니다. 농업생산이 증가하면 인구와 도시가 성장했고, 국가는 더 많은 자원을 확보했습니다. 그러나 조직이 커질수록 군대와 관료제를 유지하는 비용도 증가했습니다. 어느 지점에 이르면 국가는 농민에게 과도한 세금과 노동을 요구했고, 토지는 고갈되며, 내부갈등과 외부침략에 취약해졌습니다. 여기에 기후변화와 전염병이 겹치면 성장은 침체와 붕괴로 바뀌었습니다. 따라서 제국의 붕괴는 단순히 나쁜 황제나 도덕적 타락 때문이 아니라, 농업에 기반한 거대조직이 가진 구조적 한계와 관련됩니다. 이 장의 가장 중요한 결론은 로마와 송나라가 순수한 농업경제를 바탕으로 한 사회조직이 도달할 수 있는 거의 최대 수준에 이르렀다는 것입니다. 농업사회에서는 에너지의 대부분을 인간과 동물의 노동, 나무, 물, 바람에서 얻었습니다. 생산량을 늘리면 인구도 함께 증가했기 때문에, 생활수준과 국가능력을 지속적으로 높이는 데 한계가 있었습니다. 이 한계는 18세기 영국이 석탄과 화석연료를 대규모로 사용하면서 비로소 근본적으로 돌파되기 시작했습니다. 산업혁명은 단순한 기술혁신이 아니라 농경사회의 에너지 한계를 넘어서는 변화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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