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

제목[여성/전쟁] 전시 동원 체제는 우리에게 무엇을 남겼나2026-07-24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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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 파시즘 체제의 인종주의와 젠더 정치: 젠더사로 보는 전시 동원 체제1부 파시즘, 제국의 판타지, 젠더 정치논쟁과 논점들, 1장 역사성을 둘러싼 투쟁-젠더사의 시각과 파시즘 이론

 

한국인들은 일제라는 말을 흔하게 쓰면서도 일본의 제국주의에는 별 관심이 없다. 일본이 조선을 침략하여 식민지로 삼은 일에 공분하지만,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과 독일, 이탈리아 3국의 파시즘 동맹에는 크게 분노를 드러내지 않는다. 2차 세계대전은 우리에게 유대인 홀로코스트로 기억될 뿐, 전시 동원 체제의 피해를 떠올리게 하지 않는다. 그만큼 우리는 파시즘을, 우리에게 남은 제국주의의 유산으로 인식하지 못한다. 이 책은 그 부분을 파고든다. 일본의 전시 동원 체제는 과연 해방 이후 식민지 조선에 무엇을 남겼나.

 

파시즘과 근대성의 관계는 논쟁적이다. 과거에는 파시즘을 근대성의 예외로 보는 경우가 많았다. 1990년대 이후 비판적 파시즘 연구는 파시즘을, 근대성의 한 측면으로 본다. 앤드류 휴잇은 파시즘과 근대성이 반동과 진보라는 단일한 시간 개념으로 환원되지 않음을 강조한다.(23) 특히 포스트모더니즘 논의가 모더니즘을 단순하게 비판하면서, 모더니즘 이해와 파시즘의 패배마저 단순화해 버렸음을 지적한다. 파시즘은 단일한 형태로 환원되지도 않는다. 파시즘과 무관한 근대 체제는 없지만, 근대 체제를 파시즘과 동일시할 수도 없다.(24~25)

 

저자가 주목하는 부분은 파시즘의 역사성이다. 파시즘의 역사성을 염두에 두어야 특정 역사 체계 안에서 파시즘의 경향, 다른 이데올로기 체제들과의 관계를 질문할 수 있다. 일본 파시즘과 관련해 눈여겨 볼 부분은 내셔널리즘이다. ‘일본 정신은 독일 파시즘 체제와 이데올로기를 참조하면서 대동아공영권 구성으로 넘어간다. 1930년대의 파시즘 체제는 남성적 판타지와 동지애를 토대로 구성되었고, 이들을 비판하는 반파시즘 전선 역시 젠더화된 이념 체계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진다. 파시즘 이해는 당대의 욕망을 이해하는 일과 관련이 깊다.

 

공포불안을 동력 삼아 작동하는 파시즘은 자신을 혁명으로 지칭하며, 인간과 사회 개조를 목표로 내세운다. 인간과 사회, 국가와 그 관계들을 재정의하려는 욕망은 모든 경계를 새롭게 재설정하려는 정치적 기획을 동반한다. 파시즘 이데올로기의 기반인 남성 판타지는 모든 경계를 재구축하는 이데올로기이자 효과이다. 이 과정이 바로 파시즘이 근대 체계의 주요 범주와 정체성의 정치학을 혁신적으로 전유하는 과정이다.(31) 휴잇은 파시즘이 혁명적 방식으로 등장했음을 지적하며, 근대를 시간이나 혁신과 분리하여 생각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휴잇은 파시즘이 증오와 위기의식에 대한 혁명적 대안으로 등장한다고 본다. 이 대안의 허구성과 폭력성을 어떻게 밝혀낼 수 있을까? 파시즘이 여성과 나약함을 세계에서 분리하고 거부하려 든다면, 젠더화가 새로운 비판의 시작 지점이 될 수 있다. 젠더화는 보편적 규범들이 실상은 전혀 보편적이지 않으며, 역사성을 지닌 개념들임을 알 수 있게 해준다. 민족, 자유, 해방, 전통 등 보편적이고 젠더중립적인 것처럼 보이는 개념들이 젠더 분리와 계급·인종 차별에 기반하고 있음을 고찰하는 과정이 바로 젠더화이다.(38)

 

젠더화는 사회 전체를 구조화하는 인식, 가치관, 신념, 표상, 상징 체제, 의식과 무의식 전반에서 이루어지는 문제다. 젠더 정치는 이 젠더화 체제를 생산/재생산하는 기제 전반을 고찰한다.(38) 또한 특정 가치, 이념을 젠더 분리적으로 규정하는 메커니즘을 분석하며, 젠더 분리적 의식을 산출하는 배타적 기제들을 밝혀낸다.(39) 파시즘은 젠더 경계의 문란한 뒤섞임에 강한 공포를 느끼며, 이 공포와 위기의식에 의해 추동된다. 가족, 사회, 국가가 무너졌다는 위기의식이 적대화로 반복되며, 증오 정치를 정당화한다.

 

파시즘은 여성과 약함을 경멸하면서도 약자의 정치학을 표방한다. 역사적으로도 여성이 파시즘 체제에 매혹되고 자발적으로 참여한 사실이 많았다. 파시즘은 약자의 손상된 지위를 적극 이용하며, 파시즘적 인간형이라는 새로운 정체성을 만들어낸다. 소수자 집단과 파시즘 정치학의 관계를 이야기하려면, 이질적인 소수자들의 문제가 근대적 주체나 계급 범주로 환원될 수 없음을 인정해야 한다. 따라서 파시즘 이데올로기와 소수자 집단 연구는 기존의 근대적 주체 개념을 비판하는 새로운 주체성의 정치학 연구에서 제기된다.(43)

 

한국 사회에서 파시즘 연구 이전에 제기되어야 할 문제는 민족주의(/반민족주의)이다. 민족주의 대 반민족주의는 단순한 대결 구도를 상정하며, 일본 제국주의 시기를 친일/민족저항의 이분법 논의로 이끌어간다. 그러나 민족이란 본래적/본질적 구성물이 아니라 특정한 역사의 구성물이다. 민족 대신 개인/사회’, ‘민중등의 범주를 내세워도 여전히 주체는 보편적이거나 자명하지 않다. 오히려 이런 주체 범주가 타자를 통합/배제하는 담론으로 작용하며, 정체성을 구별하는 기획을 통해 계몽이 착수되고 보편화된다.(48)

 

근대 기획은 억압과 배제의 산물인 특정 유형의 주체성 기획을 보편적이고 평등한 것으로 신화화함으로써 완수된다. 페미니즘 이론과 실천은 이런 보편화와 탈역사화에 급진적으로 문제를 제기했다. 특히 역사 연구에서 페미니즘 연구는 여성사라는 제한된 영역의 연구 방법을 비판하면서 젠더사의 틀로 전환했다. 젠더사 연구의 중요 지점은 경험의 역사화와 차이화의 역사적 기제에 대한 분석이다. 젠더사 연구는 여성, 민족 등의 범주가 탈역사적 보편 범주가 아님을 지적하며, 근대 기획에 내포된 억압/배제의 정치학을 역사적으로 탐구한다.(49~50)

 

저자는 이런 이론적 배경을 바탕으로 1930년대 이후 조선의 상황을 본다. 서구 제국주의에 대립하는 아시아 제국(대동아), 아시아 내부의 일본 중심 위계화, 일본 내부의 천황 중심 위계화, ‘일본 조선 - 신생 식민지로 이어지는 조선의 위계 인식은 젠더화 연구를 통해 가능해진다. 일본의 내부 위계화는 가부장 일본 제국보호와 규율 아래 제국의 신민을 차등적으로 위계화한다. ‘국민은 전시 동원 체제 각 위치에서 특정한 정체성의 이름으로 구성되며, 전시 체제 전선과 가정 바깥의 존재들은 비국민으로 배제되었다.(50~51)

 

총동원 체제의 역사적 경험은 해방 이후에도 광범위한 담론, 인식, 감정 구조와 집단 무의식을 통해 재생산된다. 총력전의 경험은 정체성에 대한 집단적 경험뿐 아니라 자유, 책임, 사랑 등에 대한 이념 체계도 교정했다. 젠더사의 방법으로 전시 동원 체제를 연구하는 일은 경험을 역사화하는 일이다.(52) 결국 질문은 식민지 경험이 현재 우리에게 미친 영향으로 이어지며, 이 영향을 되돌아보는 일은 민족적 정체성뿐 아니라 국민과 총동원의 이름으로 이루어진 젠더 정치의 내용을 다시 평가하는 일이다.(5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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