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령 연구》 프롤로그 삭제의 짜임, 1장 유령에 살 붙이기 분명히 존재하지만 보이지 않는 존재를 우리는 ‘유령’이라 부른다. ‘유령’이라 불리는 그들은 어떤 이유로 보이지 않게 되었을까? 보이지 않는데도 왜 우리는 그들이 존재한다고 여길까? 어쩌면 그들은 누군가 일부러 삭제한 존재가 아닐까? 삭제되었음에도 사라지지 않고 남아 우리 곁에 남아 있는 그들. 유령이 으스스하고 불길한 느낌을 주는 이유에는 존재할 수 없는 곳에 존재하고 있다는 점도 한몫한다. 왜 그들은 여기에 존재해선 안 되는가? 유령이 만약 누군가에 의해 삭제당한 존재라면, 그들의 ‘존재할 수 없음’을 가장 확고하게 믿는 이는 그들을 삭제한 이들이다. 누구도 그들만큼 유령의 ‘부재’를 맹신할 수 없다. 그러니 그들을 삭제하지 않은 이들에게 유령은 두려운 존재가 아니다. 그들이 마땅히 우리와 함께 존재할 수 있으며 단지 우리가 볼 수 없었을 뿐임을 이해한다면, 그들이 우리와 얼마나 가까우며 어떤 힘을 가졌는지를 이해하고 알아볼 수 있게 된다. 이 책의 저자에게 ‘유령’은 자신의 어머니이자, 어머니가 태어나 자란 땅의 여성들이다. 군인들을 대상으로 성노동을 했던 여성들은 잊힌 전쟁의 피해자이며, 상실된 역사로 재현된다. 저자는 전쟁을 잊고 전쟁이 일어난 땅에서 떠난 한국인 디아스포라 서사 속에 그들이 출몰하고 있었음을 감지한다. 그들은 삭제된 동시에 스스로 기억되기를 거부하는 이들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더욱 그들은 유령 같은 존재가 될 수밖에 없다. 논리적이고 체계적인 방식으로는 구축할 수 없는 그들의 서사를 어떻게 이야기할 수 있을까? 저자 역시 ‘그런 불확실한 발화는 어떤 결과물을 내놓을’지 묻는다.(28쪽) 어쩌면 ‘양공주’의 서사, 유령의 존재를 우리가 받아들이는 순간은 오히려 발화의 형태와 규칙이 붕괴하는 순간일지도 모른다. 활달했던 어머니에게 조현병이 발병하고 난 후 비로소 ‘양공주’라는 단어를 알게 된 저자의 경우처럼 말이다. 이제 우리는 저자가 그랬듯 트라우마 자체가 아니라 트라우마의 잔해를 마주해야 한다. ‘트라우마의 잔해를 발굴하고 조각조각 맞추어 양공주라는 상실과 창조성을 상징하는 인물의 이야기’를 구성하는 프로젝트가 시작된다.(28쪽) 저자는 규칙도, 선례도 없는 이 작업이 ‘새로운 읽기와 글쓰기 실천에 발을 담그고 그것을 개발할 기회’라고 표현한다. 유령은 삭제된 존재이지만, 삭제되지 않은 힘을 가진 존재이기도 하다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강요된 망각’의 트라우마는 배회의 형태로 드러난다. 트라우마의 당사자마저 삭제에 동참한 결과 한인 디아스포라에는 ‘앎을 허락받지 못한 트라우마 효과가 배회한다.’(39쪽) 한국인에게 미국은 파괴와 동시에 가능성을 상징한다.(40쪽) 1945년 전쟁신부법은 미군과 한국인 여성 사이 결혼과 이민을 보여주는 제도적 사례이다. 이 결혼과 이민에서 양국 간 권력의 역학은 은폐되고, 폭력은 미화된다. 성노동은 합리화되며 지정학적 폭력은 가정 속으로 사라진다.(43쪽) 정교한 삭제 시스템 속에서 가정으로 사라진 ‘양공주’는 모범적인 아시아 이민자들을 낳고 길러낸다. 트라우마는 사라진 듯 보이지만, 무의식을 통해 전수된다. 저자처럼 ‘자기 자신의 삭제에 맞서는 지식 생산자’가 된 ‘양공주’의 자식들은 미국 사회의 동화 요구 과정에서 생겨난 비판적 주관성으로 다시 ‘양공주’라는 인물을 대면하게 된다.(43쪽) 그 과정에서 저자가 주목하는 힘은 불확실성의 힘이다. 비밀은 발설되지 않아도 힘을 가진다.(46쪽) ‘양공주’는 자신의 삭제를 통해 한인 디아스포라의 무의식에 침투한 인물이다. 유령처럼 배회하는 그 인물은 학문과 서사를 통해 무시된 동시에 창조되었다.(47쪽) 인식론적 폭력에 의한 트라우마로 창조된 이 인물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까? 같은 폭력을 재생산하지 않기 위해 저자는 새로운 읽기와 쓰기 방식을 제안한다. 비선형적인 시간성, 반복, 판타지, 픽션이 유령의 배회를 전달하는 방법으로 제시된다. 저자에게 양공주라는 유령은 우울한 과거를 연상시키는 존재이면서 동시에 현재에도 미치는 강력한 생산적 힘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48쪽) 이 기획은 트라우마에 관한 기억이면서 동시에 텍스트 자체에 트라우마를 입히려는, 유령의 흔적과 트라우마로 인한 불안에 생명을 불어넣으려는, 유령을 미래에서 온 목소리로 대하고자 하는 글쓰기 실험이다.(49쪽) 보고 듣는 행위의 무능력으로 발현되는 트라우마는 이렇게 새로운 지각을 짜맞추는 힘이 된다.(58쪽) 이제 유령을 연구하는 일은 단지 한 여성과 그 가족의 서사를 재구성하고 한인 디아스포라를 이해하는 일을 넘어선다. 학문의 범위를 넘어서는 방식으로 학문을 변형하며, 세계를 새롭게 바라보는 일이 유령을 통해 가능해진다. ‘유령 연구는 우리가 통상 사회 세계라고 생각하는 것을 변형하고 그 경계를 부드럽게 만든다.’(66쪽) 유령의 배회를 감지하는 일은 ‘모더니티’로 구현되지 못하는 존재를 부각하여 세계가 학문으로 환원되지 않음을 받아들이는 일이다. 왜 유령을 연구해야 하는가? 유령이 명시적으로 드러나지 않는 우리 사회의 진실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유령은, 폭력이 부재하는 듯 보이는 상황이 예속이나 명시적 삭제와 같은 또 다른 폭력의 산물임을 보여준다.(69쪽) ‘양공주’는 사회적 억압을 내면화하면서도 완전하게 감춰지지 못한 존재이다. ‘양공주’를 통해 (비)/가시성이 단순하지 않은 문제임이 드러난다. 가시성 안과 밖을 옮겨 다니는 존재에게서 창조적 가능성이 발견될 수 있다.(73쪽) 이 책의 저자에게 유령 연구는 개인적 서사에서 시작되지만, 유령은 단지 개체적 존재가 아니다. 유령은 ‘망자나 억눌린 것의 정신적 재현’인 동시에 트라우마적 기억이나 ‘생산을 욕망하는 힘을 전달하기 위해 조립된 몸’이다. 저자는 이 ‘여러 물질적‧비물질적 힘으로 이루어진 허깨비 같은 행위자성을 가진 아상블라주’에 살을 입히려 한다.(84쪽) 버틀러의 표현을 빌려 ‘회복 불가능성을 정치적 행위자성의 조건으로 만드는 몸들’의 생성을 바라기 때문이다.(97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