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잉된 낙인과 소거된 목소리 : 사라진 ‘양공주’를 다시 호명하기
그레이스 M. 조의 『유령 연구』 제3장 「사라진 양공주를 찾아서」는 무수한 호명 뒤에 숨겨진 거대한 침묵의 장막을 걷어내는 작업으로 출발한다. 저자는 기지촌 여성을 가리키던 많은 호칭을 나열한다. ‘양공주’, ‘양갈보’, ‘양색시’, ‘유엔 마담’, ‘바 걸’, ‘위안부’, ‘타락한 여성’, 그리고 ‘미군 신부’에 이르기까지, 이 범람하는 기표들은 한 가족과 사회 전체의 역사를 지배하면서도 발설해서는 안 되는 금기의 단어이자 유령을 먹여 살리는 언어적 양식으로 기능한다. 여기서 3장이 파고드는 핵심 역설은 과잉 표상과 완전한 망각의 공존이다. 한국전쟁 이후 100만 명이 넘는 한국 여성이 미군을 상대로 성노동에 종사했고, 그중 10만 명 이상이 미군과의 결혼을 통해 태평양을 건너 미국으로 이주했다. 하지만 한국과 미국의 공식 역사 그 어디에서도 이 거대한 인구 이동과 존재의 실체를 구체적인 인간의 얼굴로 마주하기 어렵다. 이 여성들은 한국에선 민족적 순결을 더럽힌 오염물로 낙인찍혀 기억에서 추방당했고, 미국에선 냉전의 온정주의와 이민자 동화 서사 속으로 흡수되어 지워졌다. 저자가 제기하는 질문은 단순한 통계의 확인을 넘어선다. “그 많던 여성들은 다 어디로 사라졌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조는 잊힌 존재들이 남긴 공백을 추적한다. 이 사라짐은 자연스러운 망각이 아니라 국가 권력과 제국주의, 가부장제가 합작하여 만들어진 ‘유령’의 결과물에 해당한다. 이 장에서는 양공주라는 존재가 단일한 고정체가 아니라 세 번의 역사적 파열 속에서 물질적·담론적으로 축적된 구성물임을 밝힌다. 저자는 1945년 9월 미 군정의 한반도 주둔, 1950년부터 1953년까지 이어진 한국전쟁, 그리고 1990년대 초, 성노동자들과 페미니스트 활동가들의 공적 발화라는 세 개의 결절점을 중심으로 기지촌 여성의 계보를 직조한다. 첫째, 1945년 미군의 점령과 해방 공간에서 일본군 ‘위안부’ 제도의 잔재는 미군을 위한 성매매 기제로 빠르게 재편된다. 식민지 해방이라는 정치적 환희의 이면에서 여성의 성은 점령군의 질서 유지와 통제를 위한 완충재로 전락한다. 둘째, 한국전쟁이라는 전면적 파괴의 공간 속에서 양공주라는 형상이 일본군 위안부와는 구별되는 새로운 전쟁 생존자의 모습으로 본격적으로 탄생한다. 이들은 폐허 속에서 가족의 생계를 짊어지고 미군 부대의 식당이나 클럽에 진입하면서 미국적 풍요와 접촉하는 동시에 도덕적 타락이라는 양가적 혐의를 뒤집어쓴다. 셋째, 1992년 윤금이 살해 사건과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공론화로 이어지는 1990년대의 정치적 전환이다. 이 시기에 이르러서야 기지촌 여성들은 비로소 스스로 목소리를 획득하거나 인권 운동의 주체로 호명되기 시작한다. 그러나 조는 이 저항의 역사를 기록하면서도, 국가주의 운동이 양공주를 민족적 수난의 피해자로 전유할 때 또 다른 차원의 탈각이 일어난다는 점을 경계한다. 이처럼 1945년 이래 축적된 폭력의 상흔들이 디아스포라의 무의식 속에서 어떻게 세대를 넘어 유령의 형상을 빚어냈는지 치밀하게 서술한다. 저자는 기지촌 여성이 존 네이글(Joan Nagle)이 말한 미국과 한국의 “글로벌 방위와 전쟁 시스템의 부수적인 창조물인 (…) 군사화된 인종적-성적 변방에서 출현했다.”는 점이다. 1960~70년대 박정희 정권은 미군의 이탈을 막고 외화를 벌어들이기 위해 기지촌 정화 운동을 펼치며 여성들을 ‘달러를 벌어들이는 애국자’이자 ‘민간 외교관’으로 추켜세웠다. 즉, 미군 기지촌을 안보 동맹의 물질적 거점으로 삼았다. 그러나 국가가 부여한 이 애국자의 지위는 기만적인 허상에 불과했다. 국가는 미군의 안전한 성소비를 위해 여성들의 신체적 통제를 자행하면서도, 대중적 담론 속에서는 이들을 민족의 순결을 팔아치운 부정한 존재로 방치하고 멸시했다. 미국이 가한 신체적 착취와 한국 민족주의가 가한 도덕적 파문이라는 이중 구속 속에서, 양공주는 국가의 부와 안보를 지탱하면서도 결코 공동체의 일원으로 인정받을 수 없는 ‘사회적 시체’이자 유령의 자리로 밀려난다. 강간 담론에서 가해자가 외부인일 때만 민족주의 담론에서 받아들여진다는 점에서 민족으로서, 땅으로서, 재산으로서의 여성이라는 민족주의 판타지는 문제적이다. 그리하여 양공주는 내부자와 외부자의 경계를 복잡하게 만들고 이로써 스스로를 민족주의의 가변적인 상징으로 만든다. 사라 아메드(Sara Ahmed)의 주장처럼 “감정은 몸과 기호 사이를 순환하는 다양한 방식을 통해 개인의 몸과 집단의 몸을 표면화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감정은 단순히 내부에 있거나 없는 게 아니다. 감정은 몸과 세계의 표면이나 경계라는 바로 그 효과를 만들어 낸다.” 조는 에이버리 고든의 유령 이론을 경유하여 이 공백 자체를 강력한 역사적 징후로 전환한다. 기록의 결여는 존재하지 않았음을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존재를 조직적으로 지워버린 국가 폭력의 깊이를 방증한다. 저자는 실증적 문서가 침묵하는 자리에 문학적 서사, 다큐멘터리 영상, 구술 증언의 조각, 그리고 가족 내부에 억압된 트라우마의 징후들을 끌어들여 상호교차시킨다. 여기서 제시하는 사라진 양공주를 찾는 여정은 잃어버린 과거를 단순히 발굴하는 행위가 아니다. 침묵과 공백이라는 구조적 부정의의 틈새로 직접 걸어 들어가, 삭제를 명령한 권력의 담론을 역으로 해체하는 능동적이고 전복적인 ‘역사적 개입’을 실행한다. 3장의 서사는 여성이 스스로 말할 수 없었던 역사를 드러낸다. 그들은 성적 낙인에서 벗어나 탈성애화된 ‘할머니’가 되고 나서야, 즉 존중받아 마땅한 노인의 자리에 도달하고 나서야 비로소 뒤늦게 자신의 목소리를 사회에 드러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외세의 폭력에 강제로 동원된 ‘무결한 피해자’는 죄를 사함받는 동시에 그들의 수치심이 반제국주의 운동의 정당한 동력으로 승화되어 가시성을 획득할 수 있었다. 그러나 생존을 위해 제 발로 기지촌에 걸어 들어갔던 여성들의 처지는 전혀 달랐다. 이국의 점령군에게 성적 서비스를 제공하며 그들이 이 낯선 땅을 ‘내 집처럼’ 편안하게 느끼도록 도왔고, 점령군이 자국을 우호적으로 대하며 자유를 위해 싸울 사기를 불어넣어 주는 냉전의 완충재 역할을 했던 그들, 이 성노동자들은 민족주의 역사 서술에서 철저한 배제의 심연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저자는 ‘사라진 양공주’를 찾는 여정을 지워진 여성들을 무력한 피해자로 박제하거나 손쉬운 동정의 시선으로 소비하는 것을 단호히 거부한다. 저자는 이들을 민족주의 서사나 제국주의 온정주의로 봉합할 수 없는 균열의 존재로 호명한다. 사라진 자들의 유령을 마주한다는 것은 우리가 누리는 일상의 평온이 어떠한 야만과 침묵 위에 위태롭게 서 있는지를 자각하고, 그 유령의 목소리에 현재의 자리를 내어주는 정치적·윤리적 애도를 완성하는 길임을 드러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