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험실 생활

제목[서평] 이소연 저 <마블 영웅들이 세계를 구하는 방법> 2024-11-18 1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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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레혼 | 중국 문학 연구자/우리실험자들 작가 


히어로 영화에 대한 인상을 처음 심어준 작품은 《엑스맨 2였다기억할  있는 가장 오래전극장에서   히어로물이었기 때문이다날카로운 발톱을 자랑하는 울버린과 날씨를 조종하는 스톰도 멋졌지만나는 매그니토와 찰스 자비에의 설정에 더욱 관심을 가졌다돌연변이와 인간의 공존을 이야기하는 찰스그리고 돌연변이를 탄압하는 인간을 배척하는 매그니토 캐릭터의 대립은 영화  어떤 영웅들의 특수한 능력보다 흥미진진하게 다가왔다.

나중에야 깨달았다엑스맨 이야기 구도가 다수 사회  소수자들에 대한 우화로 읽힐  있다는 사실을애초에 내가 히어로 영화에 끌렸던 이유는 감각적인 미장센이나 컴퓨터 그래픽보다는영웅들의 ‘특별함 다르게   있는 영화적 다양성 때문이었다그래서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Marvel Cinematic Universe, MCU) 자연스럽게 관심을 갖게 되었는지도 모른다누군가는 MCU 세계관의 무궁무진함에 매력을 느끼고 누군가는 수많은 영웅들의 협업 액션에 마음이 끌렸을 것이다하지만 나는 MCU 영웅을 해석하는 방식이 삐딱해서 좋았다.

이런 기호 때문에 《마블 영웅들이 세계를 구하는 방법 읽고 기쁜 마음을 감출  없었다 책은 내가 그동안 살펴본 마블 영화나 시리즈에 대한 해석이 채워주지 못하는 부분을 충실하게 채워주었다. MCU 팬을 자처하는 이들은 현재의 MCU 근본을 잃었다며과거의 영광을 찾으려면 현재의프로젝트를 중단해야 한다고 외친다.

MCU 최근 부진이 "정치적 올바름때문인지영화 자체의 문제인지는 여기서 논외로 하겠다중요한 것은 MCU  점차 ‘소수자 서사 강화하는 선택을 했는지그리고 이것이 영화에서 어떻게 형상화되었는지를 밝히는 일이다.

마블 영웅들이 세계를 구하는 방법 바로 이러한 변화를 포착한 책이다책의 목차만 봐도 MCU 변천사와 그들이 추구하는 방향에 대한 작가의통찰력을 확인할  있다책은 다섯 파트로 구성되어 있다먼저 과거 역사로 남은 캐릭터들(<엔드 게임 이후사라진 영웅들>) 다룬 영웅 서사에 대한 대중의 시선 변화에 따라 설정이 조정된 캐릭터들(<변화 속에서 살아가는 영웅들>) 다룬다.

이어서 MCU에서 빼놓을  없는 ‘악당의 행동 패턴을 보여주는 영웅들(<영웅과 악당 사이악당이  영웅들>) 조명한다그리고 우주마법과학적 세계관 속의 영웅들(<새로운 세계관을 보여주는 영웅들>) 다룬다마지막으로 저자는 MCU 미래를 책임질 영웅들(<소수성을 무기로 삼는 영웅들>)에게 시선을 돌린다.

특히 인상 깊었던 부분은 <변화 속에서 살아가는 영웅들파트였다여기에는 블랙 팬서와 헐크토르에 대한 해설이 등장한다저자는 《블랙 팬서 시리즈에서 유색인종 서사 변화의 조짐을 읽어낸다아프리카와 메소아메리카의 문명이 ‘ 노멀  사회그곳에서는 유색인종 간의 갈등과 여성 영웅의 등장이 두드러진다블랙 팬서 기존의 ‘1세계 남성 위주의 서사물 갖는 인물 구도와 스토리 라인을 유색인종 기반으로 재구축한다“《블랙 팬서 시리즈는 흑인들의 문제를 백인과의 갈등으로 풀어가지 않는다는 점에서 우리의 예상을 벗어난다백인들이나 그들의 사회도 비중 있게 등장하지않는다블랙 팬서에서는 먼저 와칸다 내부의 갈등이 불거진다…… 《블랙 팬서와칸다 포에버에서도 와칸다는 백인 사회가 아닌 메소아메리카의유색인종 사회와 대립한다. (본문 53)

헐크 시리즈에 대한 해석 역시 흥미로웠다저자는 기존의 헐크가 야성적인 자아 '헐크' 소멸시켜야  존재로 그려졌다면, MCU 헐크는 다중적자아와의 공존을 이야기한다는 점에 주목한다또한 책에서는 '쉬헐크' 등장이 여성 차별과 혐오에 대한 MCU 비판이라는 점도 지적한다영웅의삶에 관심이 없었던 제니퍼는 헐크의 힘을 갖게 되었다는 이유로 영웅처럼 살기를 원하지도 않고…… 지적인 과학자의 친절 뒤에 자신이 언제나 화가 있다는 사실을 감추며 살아가던 브루스의 비법은 제니퍼에게 소용이 없다제니퍼는 자신이 이미 화를 참는  전문이라고 말한다.(본문 66)

이처럼 《마블 영웅들이 세계를 구하는 방법 MCU 색다른 눈으로 바라보게 한다특히 시대가 변화함에 따라 영웅 캐릭터가 어떻게 변화했는지를설명하며 '지금-여기에서 MCU 바라볼  있도록 돕는 저자의 관점이 탁월하다기존의 MCU 영화나 시리즈물에 대한 해석은 '떡밥'이나 숨은 복선찾기에 급급했다이러한 상황에서 《마블 영웅들이 세계를 구하는 방법 등장은 반가운 소식이다 책은 MCU 영웅들이 우리 시대에 어떻게 소화될  있는지를 분석한다는 점에서 기존의 마블 해설 콘텐츠와 차별화된다.

또한 책은 마블 영화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추천할 만하다마블 영화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은 단순히 영웅 서사의 웅장함과 숭고한 모습만을 강조한다는 편견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하지만  책을 읽고 나면 MCU 세계관이 단순히 '영웅들이 사는 세상'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을  있을 것이다

다른 모든 존재가 그렇듯 영웅도 늙고병들고죽는다우리는 영웅들이 겪는 거대한 고난뿐 아니라 생애주기에 따른 노화와 질병죽음 앞에서 깊은동질감을 느낀다. (본문 158)

MCU 《아이언맨 이후 히어로를 소재로 하되다양한 삶의 이야기를 그려내고 있다. MCU 단순히 자본과 물량으로 구축된 세계관이 아니라는 사실을히어로 영화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도  책을 통해서 이해할  있기를 바란다.

MCU 2010년대의 ‘스타워즈 시리즈이자 ‘드래곤볼 시리즈다스타워즈와 드래곤볼이 20세기 관객과 독자들에게 즐길 거리를 제공했다면지금은마블의 영웅들이 우리와 발맞추어 살아가는 시대다마블 팬들은 영웅의 퇴장과 죽음에 영화  등장인물처럼 슬퍼하고, MCU 흥행 성적에 마치 자신의 일처럼 심각한 토론을 벌인다.

물론 최근 MCU 향한 불만 섞인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여성유색인종소수자사회적 약자 코드를 지나치게 강조하여 영화의 완성도를 해친다"불만이  커뮤니티에서 제기된다하지만 MCU 이러한 변화는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MCU 미국과 유럽을 넘어  세계에서 사랑받게 되면서백인 남성 중심의 세계관에서 벗어나는 것은 필연적인 선택이었다마블 영웅들이 세계를 구하는 방법 제목처럼 마블 영웅들이 각자의 방식으로세계를 구하는 이야기를 다루지만콘텐츠 회사 마블 다원화된 시대에 어떻게 적응하며 캐릭터를 변화시키는지 분석하는 책이기도 하다.

MCU 변화와 앞으로의 행보를 응원하는 입장에서새로운 영웅의 등장을 조롱하는 반응을 보면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다수의 생각과 다른 관점으로 콘텐츠를 받아들이는  생각이 특별한 것이라고오만한 우월감(?)에 빠지기도 했다하지만 《마블 영웅들이 세계를 구하는 방법 읽고 나서 응원군을 만난 듯한 기분을 느꼈다이제는 기계적 비판과 ‘개연성 타령에서 벗어나 MCU 영웅들을 깊이 있게 이해할 새로운 시각이 필요하다마블영웅들이 세계를 구하는 방법 바로 그러한 역할을 하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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