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픈옹달 | 《아싸장자》《공자왈 제자왈》작가/우리실험자들·와파서당 운영자
온 세상이 <어벤져스>에 열광하던 시절, 난 털끝만큼도 관심이 없었다. 마블 시리즈 가운데 처음 본 영화가 <어벤저스: 엔드게임>이었다. 첫 시작이 <엔드게임>이었다니! 함께 영화관에 간 아이는 주절주절 설명을 해주었는데 다 따라가기 힘들었다. 인물의 서사를 전혀 알지 못하니. <엔드게임>을 시작으로 아이와 함께 마블 시리즈 후속작을 몇 개 보았다. 그러나 여전히 흥미를 붙이지는 못했다. 뒤늦게 마블 시리즈를 만났기 때문일까? 사람들은 마블 시리즈의 기세가 꺾였다고, 예전 같지 않다고 했다. 그런가 보다 했다.
<마블 영웅들이 세계를 구하는 방법>을 읽고 알았다. 재미를 붙이지 못했던 것은 보고 감상할 입구를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역설적으로 책을 읽고 영화를 보고 싶어졌다. 나처럼 뻔한 히어로물에 시큰둥한 사람에게 반가운 책이다. 좋은 책은 호기심을 불어넣어 징검다리가 되는 까닭이다. 다른 것을 검색하게 만들고, 일부러 찾아보고 싶게 만든다. 제일 궁금했던 것은 <블랙 위도우>였다. 호오, 이런 이야기가 있다니.
사람들은 자신의 욕망을 충족시켜 주는 이야기를 사랑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힘 있는 이야기는 그런 평범한 욕망에 굴복하지 않는다. 조금은 삐딱한, 비스듬한 이야기가 더 흥미 있고 신선하다. 저자는 마블의 영웅들을 '결함 있는 개인'으로 소개한다. 마냥 위풍당당한 영웅이 아니라 저마다 고충과 아픔, 극복과 성장의 서사가 있기 때문에 사랑받는다는 점을 알려준다. 영웅이 영웅인 까닭을 소개하는 글이며, 영웅적인 삶을 설득하는 책이다.
밑줄을 그어가며 뚝딱 읽었다. 물론 태반은 모르는 이야기라 상상하며 저자의 이야기를 따라갔다. 사실 방관자였던 나는 낡은 코믹스의 캐릭터를 재탕한다며 속으로 비아냥댔었다. 그러나 캐릭터의 변화에 어떤 시도가 있었는지, 서사에 새로운 무게를 부여하기 위한 성찰이 있었는지 책을 통해 엿볼 수 있었다. 사람들이 열광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었구나 하는 뒤늦은 깨달음. 저자의 말마따나 새로운 영웅들이 필요한 시대에 신선한 해석이 반가운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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