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

제목[푸코/권력] 광기를 현실과 연결하는 정신의학의 힘 ('정신의학의 권력' 7,8강 발제)2024-05-10 09:47:46
작성자
첨부파일정신의학의 권력_7, 8강_발제.hwp (150.5KB)

정신의학의 권력7. 8

 

이 강의에서 푸코는 초기 정신의학에서 실제로 치유 행위가 이루어지지 않았음을 여러 번 강조한다. 그럼에도 정신의학은 의학의 영역에 속해있는 듯 보인다. 푸코가 예로 드는 19세기 초반 프랑스의 정신요양원 치료에도 유명한 의사의 이름과 그들이 쓴 의학서적이나 치료 관련 기록이 존재한다. 치료하지 않았다면 왜 의사가 필요했으며, 의사는 치료가 아닌 무엇을 했을까? 푸코는 이 물음의 답을 현실과의 관계에서 찾는다.

 

정신의학의 권력은 현실과의 관계에서 광기를 다룰 때 드러난다. 정신의학은 현실을 조작하며, 광기의 곁에서 현실을 강화한다. 나아가 현실을 거부하는 광인에게 현실을 자각하게 한다. 19세기 초 광인의 치료 여부를 판가름하는 관건은 노동에 있었다. 스스로 노동하게 만드는 일은 곧 광인이 현실의 규율 체계를 얼마나 받아들이고 수행하는가의 문제였다. 광인을 현실의 노동으로 들여보내는 일, 정신의학의 권력은 여기서 비롯된다.

 

이 강의의 7강과 8강에서 푸코는 19세기 초반 프랑스의 정신요양원에서 뢰레가 광인을 현실로 들여보내기 위해 어떤 방법을 사용했는지 자세히 설명한다. 뢰레의 술책은 크게 네 가지로 분류된다. 권력의 불균형화, 언어의 재활용, 욕구의 조정과 조직화, 진실 언표의 장치이다. 당시 정신의학은 광기에서 용납되기 힘든 절대적 권력의 주장을 포착했다. 이 주장에 타격을 입혀야만 광인을 현실로 끌어들일 수 있었다.

 

광인은 어떤 면에서 자신을 왕이라고 믿는 사람이다. 망상 속에서 광인은 자신만의 언어를 사용하고 노동하려 하지 않으며, 다른 이들을 하찮게 여긴다. 당시 정신의학은 광인의 이런 특성을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광인이 아닌 의사가 더 큰 권력을 행사할 수 있음을 끊임없이 강조하고, 결핍된 상황에서 노동하게 만들며, 명령하는 언어와 규율의 위계를 이해하도록 강요한다. 뢰레가 강조한 도덕요법의 실체가 여기에 있다.

 

정신요양원에서 환자들이 겪는 궁핍함은 현실의 돈 문제 및 노동과 곧바로 연결된다. 광기 때문에 돈 문제를 이해하지 못했던 환자는 자신이 광기로 인해 궁핍해졌음을 받아들인다. 곧 의사가 자신을 치유해 주는 대가 역시 돈이라는 사실까지 받아들이면 환자는 치유와 더 가까워진다. 이제는 환자가 진실을 말해야만 할 차례다. 이 진실은 옳은 말이 아니라 고정된 정체성으로 귀결되는 개인사적 진실이며 구성된 현실이다.

 

뢰레의 요법에서 독특한 점은 그가 환자를 치료한다기보다 광기에 저항하는 듯 보인다는 점이다. 뢰레는 자신의 환자가 정신요양원에서 치료받으면서 쾌락을 느낀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환자를 퇴원시켜 버린다. 뢰레는 환자의 쾌락을 해체하기 위해 노력하며, 심지어 자신이 치료가 아닌 처벌을 하고 있음을 환자에게 강조한다. 광기와 대결하는 정신의학의 이런 양상은 이후에 탈의학화된 형태로 더 분화되어 나타난다.

 

광기의 치료는 결국 광인이 자신의 절대적 권력을 부정하고 사회에 순종하도록 만드는 일이다. 정신의학의 권력이 곧 현실이 광기를 통제하도록 부여한 추가적 권력이라면, 치유의 기준 역시 현실에 있을 수밖에 없다. 정신요양원은 현실과 격리되어 있지만, 현실의 식민지·작업장·학교·감옥과 유사한 곳이다. 정신요양원의 규율은 현실의 규율과 같은 형태이며, 정신의학의 힘 역시 현실에 바탕을 둔 힘이다.

 

정신의학이 스스로 권력을 정당화하는 힘도 현실을 재생산하는 능력에서 나온다. 정신요양원 안에 침투한 현실의 네 가지 요소를 푸코는 다음과 같이 요약한다. 타자의 의지, 결정적으로 타자 쪽에 놓인 초권력 정체성, 이름, 개인사의 멍에 광기를 소거시키는 욕망의 현실 욕구·교환·노동의 현실이다. 이 네 요소는 정신의학의 실천과 역사 속에서 치유라는 이름으로 신체적 예속화의 절차를 구성한다.

 

정신요양원에서 이루어지는 신체적 예속화의 정점에 선 의사는 환자를 치료한다기보다 지도한다. 지도는 종교개혁을 전후하여 카톨릭의 내부 개혁과 함께 자기 영역을 규정했으며, 19세기에도 종교적 영역에 속했다. ‘지도의 개념은 정신요양원이 정신의학적 지식보다 규율 체계를 중시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왜 종교인이 아닌 의사가 지도해야 했을까? 환자를 현실과 연결하는 존재가 바로 의사의 신체이기 때문이다.

 

정신과 의사의 신체는 정신요양원이라는 장소(건물)와 동일시된다. 의사는 신체로도 기능하지만, 지식의 표식이기도 하다. 의사를 의사로 기능하게 하는 표식이 병원 전체와 함께 작동한다. 의사와 학생 간에 이루어지는 임상교육도 마찬가지다. 환자는 학생 앞에서 공개적으로 병자가 되며, 진실의 주인이 의사임을 받아들인다. 정신요양원 권력의 미시물리학은 광인의 신체와 정신과 의사의 신체 사이의 작용에서 포착된다.

 

정신의학은 탈의학화하거나 분화하지만, 현실을 강화한다는 점에서 일관된 모습을 보인다. 푸코는 8강의 후반부에서 권력이 현실을 강화해야 할 필요가 있을 때 심리학자가 특정 영역에 개입한다고 설명한다. 이런 권력은 지식의 내부에 개인의 공간을 마련한다. 예속화된 개인이 무력하게 보일 수도 있지만, 푸코는 19세기 정신의학의 역사 전체에서 의사의 지식과 환자의 위장이 투쟁의 형태로 전개되었음을 잊지 않고 언급한다.

댓글

(자동등록방지 숫자를 입력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