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티카> 제4부 인간의 예속 또는 감정(정서)의 힘에 대하여를 읽고 있습니다. 지난 시간에는 제4부 정리 40부터 정리 47까지 읽었습니다. 여름 휴가를 핑계 삼아 2주 간 쉬고 왔더니 그 사이 스피노자와 많이 멀어졌습니다. 다시 스피노자의 개념과 스타일에 익숙해지기 위해 노력 중입니다. 스피노자는 인간과 공동체에 이익이 되는 좋음과 그렇지 않은 나쁨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우리가 선과 악이라고도 부르는 이 좋음과 나쁨은 비교로 인해 생겨나는 사유양태의 개념일 뿐 그 자체로 절대적인 개념은 아닙니다. 특수한 상황이나 맥락에서 좋음(선)이 되고, 나쁨(악)이 될 뿐입니다. 스피노자는 우리에게 무엇이 유익한지 아는 것이 선이고, 그 선을 방해하는 것이 악이라고 말합니다. 물론 이 좋음과 나쁨, 선과 악은 상황에 따라 조금씩 맥락이 달라집니다. 우리 신체의 모든 부분을 균등하게 변화시키는 유쾌함은 선이 되지만, 특정한 부분만 자극하는 쾌감은 때로 악이 될 수 있습니다. 고통은 주로 악이지만, 나쁜 쾌감으로 인한 신체의 역량 감소를 방지하는 한에서 선이 됩니다. 신체의 역량을 감소시키는 슬픔에 해당하는 고통은 악이 될 때가 많지만, 이 수동의 감정이 무한한 외부의 원인에서 온다는 사실을 상기해야 합니다. 외부의 원인은 언제나 강도와 양에서 우리를 능가합니다. 사랑 역시 과도할 수 있어서 탐욕이나 야심, 음욕과 같은 과도한 상태를 불러올 수 있습니다. 증오, 인간에 대한 미움은 우리를 수치스럽게 만들고 공동체에도 해롭습니다. 우울에서 벗어나는 일은 중요하지만 웃음과 비웃음의 차이에 대해서도 고려해야 합니다. 미움으로 자극 받아 변화되지 않기 위해 맛있는 음식과 음료, 향기, 식물, 예술로 몸과 마음의 원기를 북돋우며, 신체와 정신에 영양분을 제공하여야 합니다. 이성의 힘을 통해 미움의 순환을 끊는 사랑으로 이행하도록 노력해야 하며, 정신의 무력을 드러내는 변덕스러운 기쁨과 슬픔인 희망과 공포를 경계해야 합니다. 공감과 나름의 거리 두기 속에서 스피노자의 윤리학을 찬찬히 곱씹으며 가고 있습니다. 이번 시간에는 제4부의 정리 48을 읽기 시작합니다.
매주 모여 스피노자의 윤리학을 소리 내어 조금씩 읽습니다. 서양철학 공부에 기초가 없는 분도 참여 가능합니다. 《에티카》를 다시 한번 여유롭게 음미하며 읽고 싶은 분들의 참여도 기다립니다. 시간: 1/14~ / 매주 금요일 오전 10시 방법: 돌아가며 읽고 토론하기 (발제 없음, 미리 책 읽어올 필요 없음) 교재: 《에티카》, 스피노자, 비홍
반장: 삼월 (소수자의 철학에 관심이 많은 프로 잡학러. 최근 관심 주제는 포스트휴먼과 좀비, 공부하는 습관만이 공부를 가능하게 해 주며 세미나가 곧 공부 습관을 만들어준다고 믿는 사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