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

제목[과학읽기] 우리는 생존 기계이다 <이기적 유전자> 1~3장 2024-08-27 10:46
작성자

[과학읽기]<이기적 유전자> 1~3장 0827 발제


우리는 생존 기계이다


1. 사람은 왜 존재하는가?

지구의 생물체는 자신들 중의 하나가 진실을 밝혀내기 전까지 30억 년 동안 자기가 왜 존재하는가를 모르고 살았다. 진실을 밝힌 이름은 찰스 다윈이었다(종의 기원, 1859). 그러나 진화론은 지금까지도 오해로 범벅되어 있다. 진화론은 분명 하나의 이론이다. 그러나 “생명이 왜 존재하는가”라는 질문에 맞닥뜨렸을 때, 가장 이치에 맞는 답을 주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2024년 지금, 1976년에 출간된 <이기적 유전자>를 읽는다. 이 책도 50년 가까운 세월만큼이나 수많은 오해로 범벅되어 있다. 이 책이 주장하는 바는 사람을 비롯한 모든 동물이 유전자에 의해 창조된 기계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이 사실은 유전자에 특별한 성질이 있다는 것을 기대하게 한다. 성공한(이 책에서 이 의미는 ‘살아남음’이라는 의미다) 유전자의 특질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이기주의’이다. 여기서 이기주의와 이타주의는 ‘생존 가능성’을 기준으로 생각해야 한다. 어떤 존재의 행위 결과가 자신의 생존 가능성을 낮췄다면 그 행위는 이타주의로 해석되고, 생존 가능성을 높였다면 그 행위는 이기주의로 해석된다. 

예를 한 가지만 들어보자. 대부분의 작은 새는 매와 같은 포식자가 날아가는 것을 보면 독특한 ‘경계음’을 내는데, 이 소리를 듣고 무리 전체가 위험을 피하게 된다. 경계음을 내는 새는 포식자의 주의를 자신에게 끌게 하므로 특히 위험에 처할 수 있다. 그것은 다른 새들보다 위험에 더 처해지는 것이나 이 또한 이 책의 정의에 따른 이타적 행위에 포함된다. 

자연 선택은 ‘최적자’의 차별적 생존이다. 그렇다면 ‘최적자’의 단위는 개체일까, 품종일까, 종일까? 아니면 다른 무엇일까? 종끼리 생존 경쟁을 한다면 개체는 장기판의 졸로 볼 수 있다. 졸은 종 전체의 더 큰 이익을 위해 필요하다면 희생할 수 있는 것이다. 세계는 자기희생을 치르는 개체로 이루어진 집단이 대부분 점령하게 될 것이다. 이것이 ‘그룹 선택설’이다. 이는 진화론의 상세한 내용을 모르는 생물학자들에 의해 오랫동안 진실이라고 전해졌다. 그룹 선택설이 오랫동안 지속된 이유는 우리가 갖고 있는 도덕적 이상이나 정치적 이상과 조화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개체 선택설’이나 ‘종의 이익론’도 유사한 설명이 가능하다. 리처드 도킨스는 선택의 기본 단위, 즉 차별적 생존의 기본 단위가 종도 그룹도 개체도 아님을 밝힌다. 그가 택한 단위는 유전의 단위인 유전자이다. 


2.자기 복제자

다윈의 ‘최적자 생존’은 실제로 ‘안정자 생존’이라는 보다 일반적인 법칙의 특수한 예이다. 세계는 안정된 것들로 유지된다. 안정된 것이란 이름을 붙일 수 있을 만큼 지속적이거나 보편적인 원자 집단이다. 원자들은 서로 만나 화학 반응을 일으키고 결합하여 많든 적든 간에 안정된 분자를 형성한다. 현재 생물은 매우 복잡한 큰 분자들로 구성되며 그 복잡성에는 몇 개의 단계가 있다. 

우리의 혈액 중의 헤모글로빈은 전형적인 단백질 분자이다. 그것은 아미노산이라는 더 작은 분자의 사슬로 되어 있으며, 각 아미노산에는 정확한 패턴으로 배열된 수십 개의 원자가 함유되어 있다. 헤모글로빈 분자 모형은 일정불변의 구조를 가지고 있다. 인체 내 어디에서나 똑같은 형태로 평균 6x10²¹개나 존재한다. 헤모글로빈 분자는 오늘날 볼 수 있는 분자이고, 원자가 안정된 패턴으로 되려는 경향이 있다는 원칙을 설명해준다. 이는 지구상에 생물이 생기기 이전에 분자의 초보적인 진화가 물리나 화학의 일반 과정에 의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설계나 목적이나 지시를 생각할 필요가 없다. 에너지가 있는 곳에 한 무리의 원자가 안정된 패턴이 되면, 그것은 그대로 머물러 있으려고 한다. 최초 형태의 자연 선택은 단순히 안정된 것을 선택하고 불안정한 것을 배제하는 것이었다.

이런 추론을 해 볼 수 있겠다. 생명 탄생 이전의 원자들은 안정성을 희구하며 느리게 분자를 형성했다. 이 분자들 가운데 놀랄 만한 분자가 우연히 생겼다. 이를 ‘자기 복제자’라 불러 보자. 자기 복제자는 최대의 분자도 아니고 가장 복잡한 분자도 아니었으나 스스로의 복제물을 만든다는 특성을 지녔다. 매우 불가능한 일이었지만 수억 년이라는 세월을 고려해 볼 때 가능성이 없지는 않다. 또한 그것은 단 한번만 생기면 충분하다. 이 분자는 자기와 같은 종류에 대하여 친화성이 있다고 생각해 보자. 친화성이 있는 것들과 만나게 되면 들러붙으려고 할 것이다. 이렇게 해서 들러붙어서 단계적으로 안정된 사살을 만들 수 있다. 이는 결정체들이 형성되는 방법이기도 하다. 복제자는 태어나자마자 복제자의 복제물들이 해양 속에 빠른 속도로 퍼졌음이 틀림없다. 

복제 과정에 수반되는 중요한 특성이 있다. 그것은 이 복제 과정이 완전하지 않다는 것이다. 즉 오류가 생길 수 있다. 그러나 사본에서 사본을 만들고 그 사본에서 또 다른 사본을 몇 번씩 만들 경우 오류는 누적되어 심각한 상태가 된다. 우리는 잘못된 사본을 나쁜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 더욱이 인간의 문서인 경우에는 오류가 개선으로 이어진다는 사례는 생각하기 어렵다. 그리스어 판본 구약성서를 만든 학자들이 ‘젊은 여성’이라는 히브리어를 ‘처녀’라는 그리스어로 오역하여 “보라 처녀가 아들을 잉태하여...”라는 예언을 했을 때는 오류는 개선되지 않고 새로운 진실을 창조했다. 여하튼 어떤 오류가 생기는 것은 생명 진화의 진행을 위해서 필수적이었다. 진화를 가능케한 것은 결국 ‘잘못’이었다. 

이처럼 복제 과정에서 ‘선조’는 같으나 형태를 달리한 몇 개의 ‘변종 자기 복제자’의 개체군이 만들어졌다. 이런 형태는 숫자가 많았을 것이다. 이는 ‘장수’의 직접적인 결과가 되었고 이 분자의 개체군은 더 오래 살아남는 쪽으로 진화하는 ‘경향’이 있었을 것이다. 또 중요한 특성은 복제의 속도, 즉 ‘다산성’이었다. 복제의 ‘정확도’도 중요했다. 이렇게 최초의 살아 있는 세포가 나타날 수 있었다. 자기 복제자는 단순히 존재하는 것만이 아니라 스스로의 용기(그릇), 즉 계속 존재하기 위해 운반자까지 만들기 시작했다. 살아남은 자기 복제자는 자기가 사는 ‘생존 기계’를 스스로 축조한 것들이다. 최초의 생존 기계는 아마도 보호용의 외피 정도였을 것이다. 그러나 더 우수하고 효과적인 생존 기계를 갖추 새로운 경쟁 상대가 나타남에 따라 살아가는 것이 점점 더 어려워졌다. 이와 같은 환경 속에서 생존 기계는 더 커지고 더 정교해졌으며 이 과정은 누적되고 전진적이었다. 

오늘날 자기 복제자는 외부로부터 차단된 로봇 속에서 안전하게 거대한 집단으로 떼지어 살면서, 복잡한 간접 경로를 통하여 외계와 연락하고 원격 조정기로 조작하고 있다. 그것은 당신 안에도 그리고 내 안에도 있다. 또한 그것은 우리의 몸과 마음을 창조했다. 그리고 그것들의 유지야말로 우리가 존재하는 궁극적인 이론적 근거이기도 한다. 자기 복제자는 기나긴 길을 걸어 여기까지 걸어왔다. 이제 그것들은 유전자라는 이름으로 계속 살아갈 것이며, 우리는 그것들의 생존 기계이다. 


3. 불멸의 코일

우리는 생존 기계이다. 여기서 말하는 ‘우리’란 인간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모든 동식물, 박테리아 그리고 바이러스를 포함한다. 생존 기계는 종류에 따라 그 외형이나 체내 기관이 다양하다. 문어는 생쥐와 전혀 닮지 않았으며, 이 둘은 참나무와는 또 다르다. 그러나 그들이 기본적인 화학 조성은 오히려 균일하다. 특히 그들이 갖고 있는 자기 복제자, 즉 유전자는 박테리아에서 코끼리에 이르기까지 기본적으로 모두 동일한 종류의 분자이다. 우리 모두는 자기 복제자, 즉 DNA라고 불리는 분자를 위한 생존 기계이다. 

DNA분자는 뉴클레오티드라고 불리는 소형 분자를 구성 단위로 하는 긴 사슬이다. 단백질 분자가 아미노산의 사슬인 것과 같이 DNA분자도 뉴클레오티드의 사슬이다. DNA분자는 나선형으로 맞물린 한 쌍의 뉴클레오티드의 사슬인 ‘이중 나선’으로 ‘불멸의 코일’이라고 불린다. 뉴클레오티드를 구성하는 단위는 단지 네 종류 밖에 없다. 그 이름은 A, T, C, G이다. 이것들은 여러 동식물에서 동일하다. 다른 점이 있다면 그것들이 연결되는 순서이다. 

DNA는 우리의 몸 속에서 살고 있다. 몸에 한 곳에 집중되어 있는 것이 아니고 각 세포에 분포해 있다. 세포 모두에는 그 사람 신체의 완전한 DNA사본이 포함되어 있다. 그것은 마치 거대한 빌딩의 모든 방에 그 빌딩 전체의 설계도를 넣어 둔 ‘책장’이 있는 것과도 같다. 세포 내의 이 책은 핵이라고 불린다. 인간의 설계도는 46권이나 되며 이 수는 종에 따라 다르다. 우리는 각 ‘권’을 염색체라고 부른다. 현미경으로 보면 염색체는 기다란 실처럼 보인다. 유전자는 그것을 따라서 질서정연하게 줄지어 있다. DNA는 두 가지를 일을 한다. 자기를 복제하고, 단백질의 제조를 간접적으로 통제한다. 자기 복제자는 무리지어 사는 성질이 강하다. 개개의 특질을 구별하기 힘들 정도로 협력 관계를 이루고 있다. ‘유전자 복합체’라고 불려도 무리가 없다. 다만… 

자연 선택에 있어서 최적의 단위는 무엇일까라는 질문을 다시 해보자. 자연 선택이란 가장 일반적인 형태에서 각 실체의 생존에 차이가 있다는 것을 뜻한다. 생존하는 것이 있으며 죽는 것이 있다. 이 선택적인 죽음에는 부수적인 조건이 있다. 일단 수많은 사본이 존재해야 하고, 의미있는 기간 동안 사본형으로 생존할 수 있는 잠재 능력이 있어야 한다. 

유성생식을 하는 종은 그 개체가 자연 선택의 중요한 단위로서 자격을 얻기에는 지나치게 크고 수명이 짧은 단위이다. 그룹은 더 큰 단위이다. 유전학적으로 말하면 개체와 그룹은 하늘의 구름이나 사막의 모래 바람 같은 것이다. 그들은 일시적인 집합 내지는 연합이다. 진화적 시간의 척도로 보면 그들은 불안정하기 이를 데 없다. 개체군은 장기간 계속되지만 다른 개체군과 끊임없이 배합되고, 그 때문에 그 자체의 정체성을 잃어 간다. 또한 내부로부터 진화적 변화를 겪는다. 자연 선택의 단위가 될 수 있을 만큼 독립된 존재는 아니다. 즉 다른 개체군보다 좋은 것으로 ‘선택될’ 정도로 안정성과 단위성을 갖고 있지 않다.

유성생식은 자기복제가 아니다. 개체군이 다른 개체군에 의해 오염되듯이 한 개체의 자손은 성적 파트너에 의해 오염된다. 당신의 자식은 당신의 절반밖에 안 되고, 당신의 손자는 당신의 1/4밖에 안 된다. 개체는 안정된 것이 아니다. 염색체 또한 트럼프 놀이의 카드처럼 즉시 섞이고 곧바로 잊어버리게 된다. 그러나 섞인 카드 자체는 살아남는다. 바로 이 카드가 유전자이다. 자연 선택의 실제 단위를 발견하고 싶다면 자연 선택에 성공하는 단위가 가져야 할 특성을 먼저 확인해야 한다. 그 특성은 앞서 언급한 장수, 다산성, 복제의 정확도이다. ‘유전자’가 적어도 이와 같은 특성을 갖는 실체라는 데 이견이 없을 것이다. 이제 유전자가 생존 기계 자체를 어떻게 제어하는지 살펴볼 차례다.

댓글

(자동등록방지 숫자를 입력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