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분자분류학 VS 분기분류학 8장 분자생물학자들은 전통 분류학의 감각적 기반을 흔들기 시작했다. 이들은 맨눈에 보이지 않는 분자에 초점을 맞춰 유기체를 완전히 새로운 방식으로 이해하려 했다. 라이너스 폴링은 DNA 변이 연구에서 분자 진화가 생명 분류에 유용하리라 생각했고, 에밀 주컨칸들이 이를 연구했다. 연구자들은 고릴라와 인간의 베타헤모글로빈 단백질이 거의 동일하다는 충격적인 유사성을 발견했다. 이들은 다른 동물의 동일 단백질을 연구하면 진화적 관계를 화학적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봤다. 눈에 보이지 않는 단백질은 모든 생물에 공통으로 존재해, 전혀 다른 생물들도 비교할 수 있는 문을 열었다. 1967년 마골리아시와 피치는 사이토크롬C 단백질을 이용해 이전에 비교 불가능했던 생물들을 포함하는 진화 계통수를 만들었다. 이는 분류학의 큰 도약이었고, 인간 감각의 한계를 넘어 보이지 않는 세계로 들어간 것이다. 놀랍게도 분자에 기반한 이 계통수는 여러 부분에서 전통 분류학자들의 결과를 재현했다. 이전의 분류학은 오직 눈에 보이는 외양에 의존했지만, 분자생물학자들은 이제 보이지 않는 단백질과 DNA가 가장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진정한 진화적 관계를 찾으려면 유전 물질 자체를 사용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본다. 그러나 이러한 분자 분류학은 분류학자들이 움벨트의 주관성과 감각 의존성을 포기하고 보이지 않는 것에 더 의존해야 한다는 의미였다. 칼 워즈는 메탄생성균의 RNA가 너무 독특하여 기존 박테리아 범주에 속할 수 없음을 발견했다. 그는 생명은 세균, 고세균, 진핵생물이라는 세 개의 역(domain)으로 구성된다는 '3역 체계'를 제안했다. 이는 박테리아에 두 역을 할당하고 나머지 모든 생물을 하나의 역에 몰아넣은 것으로, 전통 분류학자들에게는 움벨트의 비전에 대한 정면 도전이었다. 워즈의 제자 소긴 팀은 RNA 비교를 통해 균류가 식물보다 동물과 더 가까운 관계임을 밝혀냈다. 이는 진균병 치료의 어려움에 대한 이해를 제공했으며 아스파라거스가 난초과에 속하고, 아메리카 너구리가 레서판다와 사촌이며, 레서판다는 자이언트판다와 관련 없다는 등 여러 분류학적 재조명이 이루어졌다. 분자 분류학은 모든 생명의 다양성이 진화 역사로 인한 것이라는 답을 제시했다. 9장 벨리 헤니히는 진화 계통수 연구에서 직관을 배제하고 명확한 방법을 목표로 삼았다. 그는 진정한 계통을 나타내는 유사성은 일부에 불과하며, 공통 조상에게서 유전된 **새롭고 특유한 형질(공유하는 진화상의 새로움)**만이 친척 분류군을 식별하는 기준이 된다고 봤다. 헤니히는 생물에 대한 전문 지식이나 직관 없이도, 오직 이 공유된 진화적 새로움이라는 논리적 기준만으로 가장 중요한 특징을 판단했다. 그는 한 조상의 모든 후손만 포함하고 다른 것은 배제하는 분류군만을 인정하고 명명할 것을 요구했다. 인간은 본성적으로 움벨트 중심적이어서 세계를 진화적으로 보지 않으며, 눈에 보이는 것에 의존한다. 그러나 헤니히는 생명의 외양이 어떻게 보이는지는 중요하지 않고, 오직 진정한 진화적 질서만이 의미 있다고 주장했다. 진화적 분류가 우리의 움벨트 시각과 충돌할 때 문제가 발생하는데, 분기학자들은 이러한 충돌을 자주 일으켰다. 이들은 공통의 새로움만을 사용하고 인위적인 분류군을 거부하며 모호함을 용납하지 않는 경직된 사고방식을 고수했다. 헤니히의 방법으로 분류학자들은 오비랍토르가 알 도둑이 아니라 새처럼 자기 알을 품었던 공룡임을 밝히는 등 많은 수수께끼를 풀었다. 분기학자들은 전통 분류학의 약점과 수리분류학의 실수를 지적했고, 진화적 새로움과 다른 유사성을 명확히 구분했다. 이들은 진화적 관계가 분류학에서 최우선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분류학은 이제 인간의 직관이 아닌 진화사의 진실이라는 관점에서 자연을 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는 분류학이 인간의 움벨트와 연결된 끈을 완전히 끊어버린 셈이다. 감각과 완전히 결별하며, 눈에 그럴듯해 보이는 것들에 방해받지 않고 오직 진화의 실마리만을 쫓는 자유를 얻게 된 것이다.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우리는 제한된 시야가 아닌 지구 생명 전체의 역사를 통해 생명을 바라볼 수 있게 되었고, 이는 순수한 합리성을 추구하는 과학 덕분이었다. 과학자들은 지금도 모든 생명의 진화 계통수를 밝히는 원대한 목표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 하지만 이 모든 진보가 나머지 우리를 어디에 남겨둘까? 예전엔 평범한 사람들도 생명 분류에 작은 역할이라도 할 수 있는 듯했지만, 이제 그 자리는 완전히 사라졌다. 과학이 생명의 세계를 독점적으로 지배하는 수준에 이른 것이다. 이제 누가 생명의 세계에 신경을 쓸까? 사람들이 생명의 중요성을 더 이상 느끼지 못하는 이 문제의 핵심에는 과학자들이 있을 수도 있다. 과학이 모든 생명에 대한 지배권을 주장하며 스스로를 생명 세계의 유일한 수호자이자 소유자, 분류자, 명명자라고 선언하는 과정에서 움벨트를 저버렸고, 그 결과 나머지 인류가 생명 세계에 무관심해지는 상황을 초래했다는 것이다. 수리분류학자, 분자생물학자, 그리고 분기학자들은 차례로 움벨트를 점점 더 밀어내며, 생명 세계에 대한 인간의 감각적 인식이 완전히 불신당할 때까지 싸움을 멈추지 않았다. 결국, 우리가 생명의 아름다움이나 존재 자체를 알아보지 못하고, 심지어 그 세계가 사라져가는 사실에조차 철저히 무관심해진 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 2. 인간을 이해하려는 노력 역시 과학의 발전과 더불어 지속적으로 진화해 왔다. 혈액형에 따른 원초적인 분류부터 시작하여, MBTI 성격 유형 검사, 다양한 성격 및 기질 검사, 개인의 행동 패턴을 네 가지 기본 유형으로 나누는 DISC 검사, 집-나무-사람(HTP) 그림 검사, 불완전한 문장을 완성하는 SCT 검사 등 수 많은 도구들이 인간의 심리와 성격을 파악하는 데 활용되어 왔다. 이 모든 검사들은 결국 사람이라는 존재를 이해하기 위한 수단이지만, 이러한 과학적 검사들만으로는 그 사람만의 고유하고 주관적인 세계를 온전히 이해하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모든 존재는 자신의 감각과 경험을 통해 세상을 재구성하며 자신만의 의미를 부여한다. 과학적 검사들은 인간의 성격이나 심리를 정량화하고 유형화하려 하지만, 검사를 통해 얻어지는 데이터는 특정 틀 안에서 추출된 정보일 뿐, 그 사람이 세상을 어떻게 지각하고 그에 따라 어떻게 반응하는지에 대한 총체적인 경험을 담아내지는 못한다. 한 사람을 진정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숫자나 유형에 가두는 것을 넘어, 직접 그 사람을 만나고, 함께 경험하며, 감각을 활용하여 교감할 때이다. 그 사람의 표정, 말투, 행동, 그리고 그 속에 담긴 미묘한 감정 변화를 직접 느끼고 반응할 때 비로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한 사람의 깊은 내면과 그가 살아가는 세계를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결국 인간 대 인간의 직접적이고 감각적인 교류와 소통이 중요할 것이다. 생명의 계보를 밝히고 질서를 부여하는 분류학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과학 발전과 함께 진화분류학, 수리분류학, 그리고 분기학 같은 다양한 자연 분류 방식이 발전해 왔다. 이들은 눈에 보이는 외형 대신 DNA나 유전적 특성 같은 보이지 않는 영역에 집중하며 더욱 객관적이고 논리적인 분류를 시도했다. 하지만 이런 과학적 발전이 인간 본래의 감각과 경험으로 인지하고 이해하는 주관적인 세계, 즉 움벨트(Umwelt)를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고 그 생명의 세계를 진정으로 이해하려면, 과학적 분류의 엄밀함만큼이나 우리 자신의 감각적인 연결과 공감이 필수적이다. 단순히 데이터를 통해 규정하는 것을 넘어, 생명의 다채로운 현상과 존재 방식을 오감으로 느끼고 받아들일 때, 우리는 비로소 그들과 더 깊이 소통하고 조화를 이룰 수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