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

제목[푸코] 어떻게 내가 되는가2025-01-06 0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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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셸 푸코: 권력의 꼭두각시로 살지 않기 위해들어가는 글, 1장 권력은 유혹한다

 

많은 이들이 권력을 말할 때 국가권력이나 특정 정치인, 고위 관료의 얼굴을 떠올린다. 몇몇 특정 인물이 권력을 독점하며 다수를 지배한다는 믿음도 널리 퍼져있다. 이런 믿음을 가진 이들은 저항을, 권력의 지배를 벗어나기 위한 노력으로 이해한다. 권력을 소유한 이가 부정한 방식으로 권력을 행사하는 일을 막기 위한 대비책으로 높은 도덕성을 개인에게 요구하며, 저항을 부패한 권력과 대결 구도에 놓는다.

 

푸코가 말하는 권력은 이런 모습과는 다르다. 권력뿐 아니라 국가와 정치도 마찬가지다. 물론 푸코가 살았던 지역과 시대는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지역이나 시대와는 다르다. 푸코 역시 자신의 견해가 보편적이라 주장하지 않는다. 푸코에게 모든 지식은 보편적 지식이 아니라 특수한 지식일 뿐이다. 그럼에도 지금 우리가 겪는 사건을 해석하고 국면을 전환하며 우리가 변화하는 데 필요하다면 그 지식을 활용할 수 있다.

 

지난해 123일 밤 대통령이 계엄을 선포하면서 사건은 시작되었다. 이제 우리는 그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음을 안다. 이 사건 속에서 우리가 변하는 중이기 때문이다. 계엄은 의회의 원활한 작동으로 사실상 실패했으며, 이후에 내란혹은 친위 쿠데타로 규정되고 있다. 그렇다면 주모자가 처벌되어야 하지만, 계엄을 선포한 대통령은 자신이 통치행위를 했을 뿐이라고 주장하며 사실상 조사나 처벌을 거부하는 중이다.

 

법조인 출신 대통령이 법적 절차를 거부하는 일에 사람들은 놀라고 불쾌해한다. 법의 권위를 존중하며, 그 권위는 논리적 엄밀성에서 나온다고 믿기 때문이다. 법이 얼마나 허술하게 작동하는지 알고 나면 모두가 놀란다. 법은 항상 어떤 사건 이후에 사후 처방을 할 뿐이며, 그마저도 허점이 많아 법조인들의 이해관계와 싸움에 휘둘린다. 법은 권력 다툼을 중재하지 못하며, 오히려 권력 다툼의 결과가 법리적 해석으로 나타난다.

 

이런 법의 허술함을 누구보다 법조인들이 가장 잘 안다. 권력은 법 바깥에 있을 때, 법의 적용을 받지 않을 때 가장 잘 드러난다. 흔히 말하는 국가권력이 이런 형태이다. 국가는 법을 통해 폭력을 금지하고 처벌하면서 합법적 폭력으로 자신을 드러낸다. 우리가 국가를 가장 크게 실감하는 때는 계엄처럼 국가의 폭력성이 극대화될 때다. 통치자들은 폭력장치로 국가의 힘을 이용하는 일과 통치행위를 구분하지 않는다.

 

권력을 이렇게 국가권력으로만 이해할 때 우리는 저항의 방식으로 자신을 주체화한다. 권력이 정당하지 못한 방식으로 행사될 때 이의를 제기하며, 정당한 방식으로 행사되기를 요구한다. 요구가 관철되었다고 여겨지면 저항을 멈추고 다시 국가의 신민으로 살아간다. 저항은 반복되지만, 점차 대의제 민주주의 체계 안에서 온건한 저항의 한계는 명백하다고 느끼게 된다. 동시에 권력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감정도 생긴다.

 

푸코는 우리가 권력관계를 벗어날 수 없다고 말한다. 권력이란 누군가가 소유하거나 일방적으로 행사할 수 없는 관계의 문제이다. 관계는 비대칭적이지만, 고정되지 않으며 언제든 반전될 수 있다. 푸코는 국가권력처럼 거시적이고 단일한 권력이 아니라 미시적이며 복수인 권력을 설명한다. 특히 이 권력관계는 개인과 개인을 촘촘하게 엮어 사회 전체를 치밀하게 구성하며 구성원의 삶 전반에 영향을 미친다.

 

우리가 겪는 젠더, 섹슈얼리티, 인종, 장애, 비인간, 생태 등의 문제도 이 미시적 권력관계의 문제와 연결된다. 푸코가 말하는 권력은 위에서 아래로 작용하는 억압적인 형태의 권력이 아니다. 권력은 금지하기보다 무엇인가를 유도하고 생산하며, 특정한 답을 말하게 만드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모두가 비슷한 방식으로 살아가면서 자신들이 원해서 그렇게 살아간다고 여기게 만드는 방식이 권력의 작동 방식이다.

 

그렇다면 권력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일은 불가능하지 않은가? 저항도 권력을 약화할 수 없지 않은가? 어쩌면 우리는 저항하기 위해 권력으로부터 자유로워질 필요가 없다. 권력관계 안에서 우리 역시 권력을 이용해야 하기 때문이다. 권력을 이용해서 무엇을 해야 하는가? 필요한 일은 우리 자신이 되는 일이다. 권력의 작동 방식으로 구축된 주체였던 ’, 바람직한 대답 속에 신민으로 길든 가 아닌 다른 를 드러내는 일이다.

 

대통령 탄핵과 체포를 요구하는 현장에서 많은 이들이 2030 여성들에게 주목했고,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구조적 성폭력이 없다고 주장하며 여성가족부를 없애겠다는 공약을 내걸고 당선된 대통령을 성토하는 자리에서 그들은 자신이 누구인지를 말했다. 여성이고 성소수자이며 비정규직이자 장애인, 스스로 동물의 일원이라 여기며 부모의 선택을 부끄러워하는 이들. 폭력을 통해 자신이 강함을 드러내려는 존재들과 동일시하기를 거부하는 이들.

 

미처 예상하지 못한 사건을 겪으며 우리는 변화하고 다른 존재가 되어간다. 어떤 존재가 되어야 할까? 어쩌면 가장 급진적인 존재란 장애인, 유색인, 성소수자, 동물의 일원임을 숨기지 않으며 자기 자신으로 살고자 하는 존재가 아닐까. 오래도록 우리가 버리기를 요구당했거나 멸시받았던 이름으로 살아가기를 기꺼이 선택하는 존재들. 차별과 혐오라는 폭력의 내면화를 거부하는 존재가 바로 우리가 원했던 저항의 주체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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