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

제목[푸코+] 푸코와 아렌트, 생명정치와 전체주의 (<호모 사케르> 3장 일부 발제)2026-05-22 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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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 사케르: 주권 권력과 벌거벗은 생명3장 근대 생명정치의 패러다임으로서의 수용소 (생명의 정치화, 인권과 생명정치, 살 가치가 없는 생명, “정치란 달리 말해서 인민의 생명에 일정한 형식을 부여하는 것이다”)

 

3장에서 아감벤은 푸코와 아렌트를 언급하며, 나치즘을 본격적으로 다루기 시작한다. 푸코는 정치의 쟁점이 되는 생명에서 근대의 특징을 발견했으나, ‘생명정치적 관점으로 유대인 수용소를 분석하지는 않았다. 반면 아렌트는 전체주의를 분석하며 인권의 허구성을 지적했으나, ‘생명정치라는 근대 정치의 특징에는 무관심했다. 아감벤의 작업은 이제 이 두 사람의 사유를 결합하며 근대 정치를 새롭게 분석하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아감벤의 작업은 고전 정치학을 전복하면서 진행된다. 생명을 쟁점으로 삼는 근대 정치는 법적·정치적 토대의 인식 가능성을 잃어버리기 때문이다. 먼저 그는 전체주의와 민주주의의 인접성을 강조한다. 생명을 중요한 장소로 삼으며 의회(대의제)민주주의와 전체주의는 서로 신속하게 호환된다. ‘좌파/우파, 자유주의/전체주의, 사적/공적같은 전통적인 구분은 명료함을 잃을 뿐 아니라 인식 혹은 식별조차 불가능하게 되었다.(240)

 

근대 정치의 새로운 주체(대상)는 신체이다. 1679년 영국의 인신보호법에서 특권과 지위를 넘어 보호의 대상이 된 신체를 발견할 수 있다. 비오스가 아닌 조에를 내세우는 새로운 민주주의에서 신체는 예속의 대상이자 자유의 담지체가 된다.(244~245) 홉스가 말하는 공동체의 필요성도 신체에서 야기된다. 누구나 신체를 살해당할 가능성을 가지고 타인을 죽일 수 있다는 점에서 인간은 서로 평등하다. 근대 정치는 여기서 시작된다.(246)

 

한나 아렌트는 인권 문제를 제기하는 난민의 존재에서 인권개념이 한계에 부딪힌다는 사실을 설명했다. 1789년 프랑스대혁명의 산물 <인간과 시민의 권리 선언>은 애초부터 인간시민의 개념이 모호했음을 보여준다. 그 이후 계속된 인권선언문들 역시 별 의미 없는 선포에 그칠 때가 많았다. 오히려 인권보다는 생명, 조에와 벌거벗은 생명이 국가 구조 속에 진입하고 국가의 정당성과 주권의 세속적 토대가 되었다.(248~249)

 

근대인에게 권리의 원천은 출생이다. 출생을 통한 자연 생명은 근대에 와서 시민의 형상으로 대체되었다. ‘국민에게 주권이 부여되는 일은 출생이 정치공동체에 중요해졌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런 의미에서 아감벤에게 파시즘/나치즘은 인간과 시민의 관계에 대한 재정의이다.(253) 내부/외부의 경계선을 구분하고 끊임없이 재정의하는 생명정치의 특징을 이해할 때 비로소 국민국가에서 주권과 인권 개념이 허구적임을 받아들이며, ‘난민을 사유할 수 있다.

 

그 자신이 프로이센에서 국적이 박탈된 난민이었던 아렌트에게 난민개념이 중요했던 이유는, 아렌트가 난민을 통해 근대 국가와 인권의 한계를 보았기 때문일 수 있다. 그에게 난민은 곧 나치의 수용소와 연결된다. 유대인을 절멸수용소로 보내는 일은 먼저 국적을 박탈한 이후에 이루어졌다. 아감벤은 아렌트의 사유에 생명정치를 결합하며, 나치가 안락사처럼 개별 생명의 가치/무가치를 결정하는 일에 집중했음을 지적한다.(273)

 

아감벤은 나치가 자신들의 정치적 목표를 위해 과학 개념들을 이용하고 왜곡하는 수준에 머무르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국가사회주의와 당대의 사회학, 생물학, 유전학은 은밀하고 복합적인 관계를 맺으며 발전했다.(280) 아감벤에게 나치즘은 인종주의가 아니며, ‘생명에 대한 배려가 우생학을 중심으로 절대화된 문제이다.(281) ‘생명에 대한 보살핌이 곧 적에 대한 투쟁이 되는 일’, 아감벤은 유대인 말살의 의미를 이렇게 읽어낸다.(282)

 

이제 적과 우리의 관계는 생물학적 조건을 통해 태어날 때부터 정해진다. 우리는 국가에 소속된 채 태어나며, 태어남과 동시에 국민이라는 정치적 임무를 짊어진다. 생명은 주권의 기초를 넘어 국가 정치의 주체이자 대상이다.(283) 전체주의를 생명정치와 함께 이해할 때 비로소 우리는 근대 국가와 정치, 나치즘의 관계를 새롭게 사유할 수 있다. 생명을 정치적으로 만드는 하이데거의 실존, 그 무조건적 수용에서 벗어나려는 사유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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