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에서도 헛짓거리

[ 기픈옹달 ]

:: 경치는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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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 이야기. 본디 꿈을 꾸어도 금방 잊어버린다. 보통 얼토당토않은 꿈을 꾸는 것 같은데, 아침에 주변 사람에게 이야기를 해주면 다들 피식 웃고 만다. 며칠 전 꿈은 생생한 데다 뒤숭숭하여 혼자 찝찝함을 곱씹어 보았다.

꿈에는 또렷이 아는 얼굴 둘이 나왔다. 둘이 승용차를 타고 어디로 가는데, 그만 주변 차에 흠집을 내고 지나갔다. 그걸 지켜본 나는 어쩌나 하는 마음에 움푹 찌그러진 그곳에 포스트잇을 붙였다. 연락처를 적어야지. 헌데 누구 연락처를 적을까?

내 연락처를 적자니 당사자가 아니고, 그렇다고 그이의 연락처를 적자니 그것도 적당치 않은 행동처럼 느껴졌다. 참, 꿈속 사고의 당사자는 뭇사람들에게 숭상받는 인물이라는 점을 짚어두자. 나 역시 그가 그깟 자질구레한 일에 얽힐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었다. 보험사 전화번호를 적으면 되겠지? 차량이니 보험이니 멋도 모르는 주제에 기특한 생각을 했더랬다. 꿈속에서.

그러나 또 문제가 있는데 그의 보험사 연락처를 내가 알 수 없는 노릇이라는 점이다. 결국 그에게 전화를 걸어 보험사 연락처를 물었다. 이래저래 일이 벌어져 연락처를 적으려 하니 알려달라며 공손하게. 꿈이라는 것이 본디 끝맺음이 흐지부지되는 법이라 어떻게 되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찝찝한 뒷맛을 느끼며 잠에서 깨었다.

멍하니 바닥에 앉아 그 정체를 헤아려보았다. 당최 무엇 때문에 뒷맛이 좋지 않은지. 우선 그리 반갑지 않은 얼굴을 보았다는 점. 나는 꿈에서 아는 얼굴을 만나는 일이 극히 적다. 그래도 가끔 누군가 만나곤 하는데, 나름의 맥락과 사정이 있는 인물들이다. 헌데 그이는 갑자기 툭 튀어나왔다. 별로 만나고 싶지 않은 얼굴이. 한때 매일 얼굴을 보는 관계였으나 지금은 영 마주치기 꺼려는 인물인데 꿈에서 보았다니. 잠이 달콤하지 못한 것이 당연하지.

한 톨의 반가움도 없는 만남도 있다니. 피식 웃어넘기는데 뒤통수를 때리는 것이 있다. 그래, 퉁명스러웠어. 아니, 고마워하지 않았어. 꿈속이라 수화기 넘어 그의 목소리가 또렷이 들리지는 않았지만, 꿈속이라 그의 표정이 잔상으로 남았다. 뭘 그리 귀찮게 하느냐는 식의.

뭐 그럴 수도 있지 하며 생각을 접으려는데, 그 불쾌감의 맨 얼굴을 불현듯 또렷이 보았다. 내 또 쓸데없이 남의 뒤치다꺼리해주었다는 자각. 배려가 배려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순간의 당혹스러움. 부질없는 짓을, 그것도 환영받지 못할 부질없는 짓을 했구나 하는 생각. 그래서 아침부터 한숨을 삼켰다. 남 좋은 짓을 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꿈에서도 뒤치다꺼리라니. 꿈에서도 헛짓거리를 했구나…

올해는 새해의 다짐 따위를 하지 않았다. 지난 다짐도 채 이루지 못하고 허송세월 했는데 새해라고 새로운 다짐을 할 건 무어냐는 생각에. 이루지 못한 다짐이란 속물 지식인이 되겠다는 거였다. 제 잇속을 채우고, 제 호주머니를 채우고, 배를 든든히, 얼굴에 기름때가 낄 때까지 화폐와 자본의 노예가 되어야지. 암!

나름 진지한 다짐이었는데 바뀐 건 별로 없었다. 돈 안 되는 일을 여럿 했고, 그나마 몇몇 일도 경제적이지 못한 것이 대부분이었다. 이것저것 바쁜데도 이렇게 주머니가 텅텅 비는데 뭇 잘 사는 사람들의 근면, 성실, 열정, 의욕, 그리고 체력은 얼마나 대단할 것인가 따위의 생각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이런 넋두리를 늘어놓는 것은 며칠 동안 끙끙대며 번역 원고에 매달려 있었기 때문이었다. 낯선 외국어와 씨름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밀물처럼 반복적으로 몰아치는 작업에 대한 불만족이 아니었다. 제 부족한 실력에 꺼억꺼억 한숨을 내쉬었지만, 그보다 더 답답했던 건 이걸 해서 무엇하느냐는 질문이 내내 끈질기게 물고 늘어졌기 때문이다.

책을 낸다 한들 읽어줄 사람은 몇일까. 날개 돋치듯 세상에 팔려나갈 책은 아닌 게 분명하다. 헤아려보니 이 책을 세상에 내놓는다 하여 내 주머니에 들어올 돈도 얼마 없겠다. 있어도 쨍그랑 한 푼 두 푼이 들어오겠지. 그렇다면 무언 이유로 밤을 새 가며 퍽퍽이는 눈을 비벼가며 이 고생을 하고 있는 것일까?

대학시절 은사는 번역이란 지식인의 날품팔이 노동이라 하기도 했다. 헌데 사정은 더 나빠진듯하다. 날품팔이는 일당이라도 받지. 이건 투자도 아니며 투기도 아니고, 계산기를 두드려봐도 답이 안 나오는 일을 꾸역꾸역 해대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가슴에 빚더미가 차곡차곡 쌓여가고 끙끙대며 이러고 있는 것이지.

그나마 숨통이 트일 구석이 있다면 이른바 지식인 입네 하는 허명일 테다. 사실 처음에 이 일에 스스로 뛰어든 것은 지식인의 연회장에 들어가, 나도 나름 지식인 입네 하며 무어라도 들이밀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딱딱하고 어려운 책을, 글 꽤나 읽는 사람에게나 의미 있을 법한 책을 골랐다. 그러나 돌아보면 어디에도 써먹지 못할 짓을 했다 싶다.

요새 나는 그런 꿈이 나와는 영 어울리지 않는 허깨비 같은 것은 아니었나 생각하곤 한다. 아무렴, 지식인의 무대는 다른데 있는 것이지. 내가 연마한 지식은 낡은 구닥다리인 데다, 희귀한 취미가 있는 몇몇을 제외하고는 영 관심 없는 것 소재다. 삶의 기술이건, 긍정의 철학이건, 혹은 새로운 나를 만나는 변혁이건 하는 것 따위와는 영 상관이 없다.

어느 문인처럼 하릴없이 비문이나 베껴 쓰고 한적하니 있으면 좋은데 내 일상이란 그런 한적함과는 영 거리가 멀다. 탁본이나 챙기고 골동품이나 닦으며 소소하게 사는 삶도 영 거리가 먼 호사일 뿐이다. 추적추적 질척질척 아둥바둥 살아가는 삶인데 무엇을 꿈꾸랴.

새벽까지 원고를 붙잡고 있다 잠깐 눈을 붙인 뒤에 저런 꿈을 꾸었으니 뒷맛이 영 개운치 않다는 게 정상일 테다. 허나 꼭 그런 것만 있었던 건 아니다. 하나 덧붙이면 신기하게도 꿈속에서 그이를 비꼬는 칼럼을 읽었다. 옛날 모모와 모모의 후원이 있었기에 넉넉히 연구와 학술을 할 수 있었으리라는 내용의 글을 읽었다. 꿈에서 내심 반갑게 그 글을 읽었다. 한편 연이어 읽은 글, 도무지 내용이 기억나지 않는 글을 읽곤 그래 저렇게 바닥부터 헤아리는 법을 배워야지. 건강한 생존의 셈법을 배워야지 하며 또 헛짓거리 다짐을 했더랬다.

그러나 다짐은 다짐일 뿐. 흘러내리는 삶은 동경했던 것을 아스라이 멀어지게 만들 뿐이다. 어디까지 미끄러지며 흘러내릴지는 모를 일이다. 흘러가고, 흘러가며, 흘러가버렸을 뿐이다. 기왕 이렇게 되었으니 하나를 덧붙여 두자. 꿈속에 나온 그는 무릇 지식인의 표상으로 회자되는 인물이다. 헤아려보면 그렇기에 더욱 헛헛했던 것이다. 누가 누구를 배려하며, 신경 써 줄 일인가. 꿈에서도 헛짓거리를 해댔으니 그토록 또렷하게 씁쓸한 뒷맛이 목구멍에 지금까지 결려 있는 것이지.

기픈옹달

독립연구자.
黥치는 소리 혹은 經치는 소리, 
아니면 磬치는 소리 뎅뎅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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