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정수명에 관한 제안
[ 라라 ]
:: 에브리데이 테라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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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몇 살에 생을 마감할지 생각해 본 적이 있으신지요? 0, 7, 13, 42, 68. 이 숫자는 간접적으로 혹은 직접적으로 제가 아는 사람들이 죽음을 맞이한 나이입니다. 죽음의 원인은 출생 시 의료사고, 가습기 피해사고, 교통사고, 자살, 암입니다. 죽음의 원인을 단순화하기 어렵지만 그들은 수명이 다해 죽었습니다.
에피쿠로스는 죽음을 걱정할 것이 아니라 삶에 집중하라고 했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죽지 않았으면 아직 살아있는 것이고 죽으면 이미 죽었기 때문에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죽음에 대한 태도는 삶에 많은 영향을 끼칩니다.
‘작은 것이 아름답다’라는 책으로 알려진 에른스트 슈마허는 그 시대의 문화, 경제, 물질적 수준을 감안한 적정기술에 대해 언급했습니다. 적정기술이란 한 공동체의 문화·정치·환경적인 면들을 고려하여 만들어진 기술을 말합니다. 예를 들어, 속도와 효율에서는 화석에너지가 유리하다 할지라도 경제, 문화, 환경 등을 고려한다면 태양광에너지가 적정기술이 됩니다. 멀리 화력발전소에서 에너지를 가져다 쓰는 것보다 적은 에너지라도 자급해서 쓰는 것이 적정하다는 것입니다. 대세를 이루는 기술보다 적정기술은 더 적은 자원을 사용하므로 유지하기 쉽고 환경에도 적은 영향을 미칩니다. 한 마디로 자신이 몸담은 공동체(지구)에 나쁜 영향을 덜 끼친다는 것입니다.
적정기술에서 저는 적정수명이라는 말을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과연 얼마나 어떻게 살면 적당히 살았다고 말할 수 있는 걸까요? 서두에 말한 사람들의 죽음이 더 슬픈 것은 그들에게 적정한 죽음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기술을 논할 때처럼 수명과 죽음에 대해 ‘적정함’을 명확하게 하려는 노력들이 있습니다.
기대수명이라는 것도 그렇습니다. 올해 우리나라 기대수명은 여자 85.7세, 남자 79.7세라고 합니다. 기대수명이란 현재 0세 출생자가 앞으로 생존할 것으로 기대되는 평균 생존연수를 말합니다. 10년 전보다 2.7년이 늘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단순히 생존으로 삶을 재단하는 것은 무리가 있어 보입니다. 실제로 활동을 하며 건강하게 산 기간만을 일컫는 건강수명이라는 것도 정하여 발표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건강수명은 2012년 66세, 2014년은 65세였습니다. 우리나라의 기대수명은 세계 1,2위를 다투지만 건강수명은 50위 밖입니다. 우리나라 건강수명은 지역과 계층에 따라 최대 21년의 차이가 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는 우리에게 적정한 수명은 어떤 것일까요?
우리나라의 사망원인 1위는 10대, 20대, 30대가 자살입니다. 40대는 암입니다. 10~30대를 잘 보낸다고 하여도 40에 암에 걸리기 쉽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이 지난 10년 넘게 지속되고 있음에도 달라진 것은 거의 없습니다. 건강하다는 것은 신체적·정신적·사회적·영적으로 건강한 것인데 우리나라는 아주 소수만이 건강할 뿐입니다.
적정수명(appropriate lifespan)은 적당한 수명이라는 의미도 있지만 자신만의 ‘특유의’, ‘꼭 맞는’ 수명이라는 의미도 갖고 있습니다. 타고난 유전적 요소와 함께 세대, 지역, 계층, 결혼, 부양가족 등 환경을 고려한 수명입니다. 자신의 의지도 포함해서 말입니다. 유기농 음식을 먹으며 첨단 공기청정기를 설치한 집에서 산다면 건강수명은 늘릴 수 있겠지만 나에게 ‘꼭 맞는’, ‘특유의’ 적정수명이 늘어날지는 알 수 없습니다. 자기실현의 과정을 경험한 35세와 하루에 10시간씩 생계나 가사를 위한 노동을 하고 있는 70세 중 누가 적정수명을 살고 있는 것일까요?
자신만의 적정수명을 인식하고 점검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삶의 자유뿐 아니라죽음의 자유까지 침해받을 수 있습니다. 전문가는 그 시대의 보편적인 지식에 기반하기 때문에 환자의 여러 상황(경제적, 문화적, 정치적)을 참고하지 않습니다. 전문가와의 충분한 상의는 필요합니다. 그러나 자신이 경험하는 수명은 자신만이 겪는 것이고 누구나 한 번 뿐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적정수명을 위해 구체적인 실천방안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첫째, 나의 몸을 구성하는 물질이나 생리활성에 도움이 되는 물질을 먹는 것입니다. 현대의학은 대부분 세포의 구성성분이 아닌 세포의 효소기능을 조절하는 화학합성물질을 질병치료에 사용합니다. 그렇기에 근원적 치료가 어렵습니다. 조절효과에 의한 일시적 개선은 기대할 수 있지만 근원적 문제해결법인 ‘구조화를 통한 기능 정상화’와는 거리가 있습니다. 현대의학의 한계이기도 합니다. 둘째, 나를 설명하는 옷과 말과 글을 가져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자신의 존재에 대한 이유를 잃어버릴 수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자기만의 시간과 같이 할 수 있는 공간을 찾아야 합니다. 모두를 위한 공동체는 없지만 자신만을 위한 공동체는 분명히 있습니다. 없다면 만들어야 합니다. 셋째, 타인의 적정 수명에 도움이 되도록 게으름을 피우는 것입니다. 지나친 열정과 성실은 본인뿐만 아니라 타인에게 죄의식이나 피로를 심어줍니다. 타인의 행복이 나의 돌봄(테라피)에 도움이 된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실험자들 회원, 전)마을지원활동가,
수치화되지 않는 건강을 탐구하는 약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