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혀 ‘힙’하지 않은 글
[ 미미 ]
:: 루쉰 잡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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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천성이 좀 게으르고 한량끼가 있어 먹고 놀면서 취미생활이나 하며 살면 되는 사람이었다. 어쩌다 책은 좋아해서 작은 서점이나 하나 하면서 읽고 싶은 책이나 실컷 읽으며 한평생을 보내면 더없이 좋겠다는 생각을 한 적도 있었다. 애석하게도 그런 생각은 동네 서점이 망해나가는 것을 지켜보면서 자연스럽게 사라졌다.
어쩐지 동네 서점을 생각하면 늘 겨울이다. 우리 집 길 건너에 있던 서점을 겨울에만 갔을 리도 없는데. 지금은 이름도 잊어버린 그 동네 서점을 생각하면 일종의 폐기될 수 없는 마음이 있다. 난로에 주전자가 끓고 있고 젊은 나이에도 흰머리가 많았던 주인아저씨와 사방을 둘러싸고 있는 책 냄새. 당시 우리 집에서 같이 살았던 이모는 초등학생이던 나를 데리고 꼭 서점에 갔다. 요즘 좋은 책 없어요? 이번 신춘문예 당선작 나왔나요? 요즘 좋은 책, 신춘문예라는 말이 뭔지도 모르면서 이모를 따라 덩달아 마음이 부풀어 오르곤 했다.
요즘 ‘힙’한 책
요즘 좋은 책들이 모여 있는 곳에 갔다. 그곳에는 255개의 독립출판사의 제작자들이 각자의 부스를 가지고 자신의 독립출판물들을 전시하고 있었다. 몇 년 전부터 독립출판에 대한 얘기는 종종 들어왔는데 어쩐 일인지 한 번도 독립서점이란 곳에 가본 일이 없다. 책과 글을 가까이 한다면서 이상한 일이었다.
갑자기 어른. 유부녀가 간다. 딸의 정석. 판타스틱 우울백서. 계간 홀로. 無. 톡톡 튀는 제목들과 표지들 일러스트들을 보자 막 신이 난다. 과거 칙칙했던 동네 서점의 이미지가 사라지고 이렇게 산뜻한 제목과 표지를 한 책들이 멋스럽게 진열돼 있는 북 스토어를 상상해본다. 난 거기서 커피 한잔을 들고 이런 책들을 진열해놓고 누군가에게 요즘 힙한 책들을 소개한다? 그런 행복한 상상으로 뱃속이 간질간질하다.
정신을 차리고 찬찬히 보자. 요즘 ‘힙’한 책들이라잖아. 간단한 그림만 조금 들어있는 책. 몇 문장의 글과 그림이 같이 있는 책. 사이즈도 손바닥만 한데다 종이도 갱지를 썼으며, 가내수공업으로 한 땀 한 땀 만든 책, 한 장짜리 책. 그야말로 형식파괴 내용파괴다. 어느 날 고양이가 3미터로 커지면서 벌어지는 이야기. 수영을 배우기로 결심하는 시점부터 수영복을 사러가는 길, 수영을 배우는 과정에서 일어난 일들이 지극히 사적으로 쓰여 있다. 이런 글을 써 뭐 어쩌자는 걸까하고 조금 화가 나는 느낌이 지나가고, 한 시간 후 나는 그 시끄러운 북새통을 시무룩하게 보고 다녔다.
전적으로 ‘힙’하지 않은
그러니까 ‘힙하다’는 말은 개성이 강하고 트렌디하다는 말이겠다. 오늘 뭐했고 뭘 느꼈고 뭘 먹었고 하는 일련의 세세한 행위들을 알고 싶지 않아서 모든 SNS를 안 하고 있었는데, 이건 SNS 게시물의 실사판이다. 모든 것이 책이 된다. 뭐라도 책이 된다. 책이 안 될, 못 될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이들에게 책은 단지 글이 아닌, 자기표현의 수단이었다.
불과 한 시간 전만 해도 이런 말들은 내게 힘이 되는 말이었다. 내 글이 책이 안 될 이유가 어딨어. 책 쓰는 사람이 따로 있나 쓴 것을 내면 책이지. 전문적인 지식도 없고 글빨도 그저 그렇지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 한 글 쓰는 일이 좋았던 한 시간 전의 나는 이제 없어졌다. ‘이런 글을 못 쓰지만 이런 글을 파는 서점은 할 수 있지 않겠어?’ 혹시나 하는 나의 질문에 같이 갔던 친구가 한 마디 던진다. ‘힙한 걸 힙하게 느끼질 않는데 어떻게 독립 서점을 해?’ 요즘 ‘힙’한 것과는 멀어도 너무 먼 내 글. 전혀 ‘힙’하지 않은 내 글이 떠오르는 순간, 나는 그만 잔뜩 주눅이 들고 말았다.
괜찮아, 나도 그래
인생의 어느 부분, 일생에서 한 번이 아니고 부분 부분 찾아오는 어떤 시기들이 있다. 학교에서 조퇴하고 하루 종일 자전거를 탄다든가, 어딜 가는 길이었는데 경복궁에 들러 목적지도 잊어버리고 하염없어한다든가, 바로 오늘 같이 시무룩해진 기분으로 북새통 속에 앉아 있는다든가 하는. 그런 때 세상은 멀었다.
‘힙’하게 쓰지도 못 하고 ‘힙’한 걸 보는 눈도 없으면 책과 글의 시장에 발도 들이지 못하고 영영 도태되는 것일까. 이런 생각을 하며 아래층에 마련되어 있는 카페에 털썩, 앉았다 그 청년을 보았다. 씨에프 속 세련되고 ‘힙’한 점심이 아닌, 분명한 그의 점심이었을 커피 앤 도넛. 덥수룩한 머리. 계절과 영 맞지 않는 두꺼운 점퍼 차림의 그는, 전적으로 ‘힙’한 그곳에서 전적으로 ‘힙’하지 않게 앉아있다.
그 옆 자리의 ‘힙’하지 않은 나도 앉아 있다. 우리가 앉은 자리는 벽을 마주보고 앉는 자리여서 고개를 들면 벽, 고개를 돌리면 남을 보게 되는 구조다. 징하다. 한 시간 가까이 있는 동안 핸드폰 한 번 보지 않는 사람은 나와 그 청년뿐이다. 나야 늙기도 늙었으니 요즘 사람도 아니고 요즘 책도 못 쓰는 그런 사람이지만, 젊은이 당신은 왜 이런가. 괜찮아. 나도 그랬어. 이 나이에 지금도 그래.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는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험난했다. 시위로 교대역 근처 서초동 일대가 마비됐다. 택시기사들은 하나같이 나의 승차를 거부했고 천신만고 끝에 집에 도착하니 팔십만이 모였다 백만이 모였다는 뉴스로 시끄럽다. 밖에서 들리는 마이크 소리 때문에 뭐 하나 집중할 수 없다. 글을 써야 하는데. 아, 글을, 글을 써야 하는데 말이다. 열어둔 창 저쪽으로 뭐가 번쩍, 한다. 불꽃놀이다. 지척에서 시위가 한창인데 한강은 불꽃으로 축제로구나.
괜찮아, 그도 그랬어
전혀 ‘힙’하지 않은 루쉰을 펼쳐본다. 이런 구절이 나왔다.
일체의 사물이 변화하는 가운데 어쨌든 중간물이라는 것이 다소 있다고 생각한다. 동물과 식물 사이에, 무척추동물과 척추동물 사이에 모두 중간물이 있다. 아니 진화의 연쇄 고리 중에서 일체의 것은 다 중간물이라고 간단히 말할 수 있다. 최초에 문장을 개혁할 때에는 이것도 저것도 아닌 작자가 몇몇 생기는 것은 당연하며, 그럴 수밖에 없고 또 그렇게 할 필요도 있다. 그의 임무는 얼른 깨달은 다음에 새로운 목소리를 질러대는 것이다…. 오히려 살아있는 사람들의 입술과 혀를 원천으로 삼아 문장이 더욱 언어에 가깝고, 더욱 생기 있도록 해야 한다. ( 『무덤』, 「무덤 뒤에 쓰다」. 그린비, 416쪽 인용)
이것도 저것도 아닌 중간물. 루쉰은 자신을 이렇게 평가했다. 고문(古文)이라는 전통 글과 백화문(白話文)이라는 신식 글 사이에서 “이것도 저것도 아닌 작자”는 생겨나기 마련이고, 이런 작자는 고문도 백화문도 아닌 어정쩡한 글쓰기를 하게 될 것이다. 백화문을 잘 쓰려면 고문을 잘 읽어야 하는 예로 자신이 소개되어 있는 잡지를 보고 루쉰은 진저리 친다. 고문의 망령에서 벗어나려 몸부림 친 흔적이 자신의 글인데.
우리는 모두 무엇이 되어가는 도중이다. 무엇이 되어 가는지 아무도 모르지만 ‘도중’이 할 수 있는 일이 있다. ‘도중’의 글을 쓰는 것. 이것도 저것도 아닌, ‘클래식’할 수도 ‘힙’할 수도 없으니 중간물로 중간물의 글을 쓰는 것. 루쉰이 그랬어. 내 옆자리에 있던 청년아. 그리고 그 젊은이 옆자리에 있던 나야.
이게 뭐가 책이야, 하던 심술이 좀 잦아든다. 어제 255개의 부스는 살아있는 사람들의 입술과 혀다.
2019. 10. 1. 해방촌에서 미미 씀.
야매 루쉰 연구자이자 야매 철학자. 아무튼 야매.